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종준(1951)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야구 [[프런트]]이다. 1951년 [[경상북도]] [[경산시|경산군]]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 [[이광은]], [[노찬엽]] 등 배재고 출신들이 파벌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다.]와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였다. 1977년 [[LG그룹]] 공채로 입사하였다. [[LG상사]]에서 근무하다가 1990년 [[LG스포츠]]로 발령받으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LG 트윈스]] 창단 준비팀장과 운영부장을 6년간 역임하면서 상관이었던 [[어윤태]] 단장, [[이광환]] 감독과 함께 신바람야구의 돌풍을 불러왔다. 1996년에는 단장으로 승진했고, 배구단 단장까지 겸하면서 [[1990년대]] [[LG 트윈스]]의 전성기를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1996년에는 현 LG 트윈스의 단장인 [[차명석]] 단장의 은퇴를 막고 선수 생활을 연장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96년 군 생활을 마치고 복귀한 차명석이 야구가 뜻대로 잘 안 되자 은퇴를 결심해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혔는데, 이를 들은 최 단장이 2군 코치들을 대동하고 직접 차명석을 찾아가 돼지갈비를 사 주며 야구가 안 돼서 은퇴하겠다는 차명석의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동석한 코치들에게 "당신들이 어떻게 가르쳤길래 선수가 스스로 그만둔다고 말을 하는 거요? 이 선수 그만 두면 당신들도 옷 벗을 각오 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자 코치들도 차명석을 설득했고 결국 차명석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차명석은 1997년 순수 불펜으로만 120이닝을 소화, 11승에 WAR 3.51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찍어버리며 불펜투수 최초 연봉 1억이라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야구]](LG 트윈스 / SK 와이번스), [[축구]](안양 LG / 대구 FC), [[배구]](LG화재), [[씨름]](LG투자증권) 등 여러 스포츠 종목의 단장으로 일하면서,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512016002|직업이 단장]]"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후 2001년을 끝으로 단장 직에서 물러나 씨름연맹으로 옮겼고 다시 2003년에 SK 와이번스 단장, 2006년에 대구 FC 단장으로 옮겼다. 2009년에는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직을 맡게 되면서 제21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제30회 [[2012 런던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체육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후에는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와 대한바둑협회 상임부회장, 스포츠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