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지몽 (문단 편집) == 생애 == 아버지는 지방의 [[호족(한국사)|호족]] 원보 최흔(崔昕)이며 907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는데 최지몽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온화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대광 현일(玄一)에게서 유학과 [[역사]]를 배웠으며 [[천문]]과 점복(占卜)에도 능하였다. 태조 7년(924) 18세의 나이로 태조에게 불려가 태조의 [[꿈]]에 대해 장차 삼한(三韓)을 통일하게 될 징조라고 [[해몽]]하여 칭찬을 받고 지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태조의 측근에서 보좌하며 정치적 자문에 응하였다. [[혜종(고려)|혜종]] 대에는 사천대 공봉(供奉)의 직으로서 혜종의 시해 음모를 예측하여 혜종으로 하여금 여러 차례 [[암살]]의 위기를 모면케 하였다. [[정종(고려 3대)|정종]], [[광종(고려)|광종]]으로부터도 후대를 받았으나 [[왕권]] 강화를 적극 추구하던 광종 말년에는 술자리에서 일부러 주정하여 죄를 입고 귀양가게 되면서 관직이 박탈되었다. 결국 광종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황도에 돌아갈 수 없었다. [[경종(고려)|경종]] 5년(980) 내의령(內議令) 직으로 복귀하고 [[성종(고려)|성종]] 원년 좌집정(左執政) 수내사령(守內史令)의 직위와 홍문숭화치리공신(弘文崇化致理功臣)의 호와 함께 왕의 신임을 받았다. 성종 6년 당시로서 장수한 나이인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증직하고 [[시호]]를 민휴(敏休)라 하면서 경종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무려 6명의 왕을 섬긴 고려 초기 지방 출신의 문신 [[관료]]이며 주로 국왕의 측근에서 정치적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