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충 (문단 편집) == 후손 == 최충은 [[최유선]], 최유길(崔惟吉) 두 아들을 낳았다. 장남 최유선은 최사제(崔思齊)를, 최사제는 최용(崔湧)을, 최용은 최충의 고손자 [[최윤의]]를 낳았다. 차남 최유길은 [[최사추]]를, 최사추는 조선국공 [[이자겸]]의 아내 조선국대부인을, 조선국대부인은 [[예종(고려)|예종]]의 아내 [[문경태후]]를, 문경태후는 최충의 외고손자 [[인종(고려)|인종]]을 낳았다. 인종 이후의 모든 고려 국왕은 인종의 직계 후손이므로 그들은 최충의 방계 후손이기도 하다. [[여몽전쟁]] 당시 [[제1차 자모산성 전투]]에서 빛을 발한 [[최춘명]][* 아이러니하게도 최춘명을 구명한 것은 [[몽골]]의 [[다루가치]]였다. [[살례탑]]과 항복을 권유하러 갔던 고려 관료이자 [[대집성]]은 명령 불복종으로 사형을 주장하여 그대로 선고되었다. 그러나 정작 몽골이 파견한 다루가치가 그는 우리에게는 적이었으나 너희에게는 충신이요, 이미 강화를 맺고 우리도 그를 죽이지 않은 마당에 너희가 스스로 끝까지 성을 지킨 충신을 죽이는 것은 어찌된 일이냐?하고 꾸짖었다고.]은 최충의 8대손이며 [[훈민정음]] 반대 상소로 유명한 [[최만리]]는 12대 후손이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최경회]]도 그의 후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