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치원 (문단 편집) == 주요 사상 ==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실려있으니, 실로 (풍류는) 유·불·선 을 포함하면서 모든 백성들을 이어준다.[* 원문에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 쓰여져 있다. 접화는 이어준다. 군생은 모든 백성 또는 모든 생명을 뜻한다.] >'''집에 들어와선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공자의 취지이고 >'''억지로 일을 시키지 않고, 말없이 행동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노자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며, >'''악행은 만들지 않고, 선행을 높이는 것'''은 부처의 감화이다 >----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24 진흥왕 37년조 난랑비서에서- 최치원은 유불선의 가르침이 이전부터 전해오던 '풍류'라는 가르침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중국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한국에는 '''집에선 효도하고 나라에는 충성하며, 억지로 가르치지 않고 행동으로 따르게 하며,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을 칭찬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가르침에 '[[세속오계]]' 가 있는 것으로 볼 때, '풍류'라는 가르침이 실제로 화랑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치원은 이렇게 우리의 사상과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우리 스스로 제시하고 이를 표현하였기에 그 공로가 크다.[* 유교와 도교는 서로 비판하는 관계이며, 또한 유교와 불교는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른 가르침이다. 이를 조화롭게 합쳐 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최치원이 중국 밖에서 온 유학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신라는 이제 막 불교가 들어왔지만, 아직 유교와 도교는 생소하였다. 이에 최치원은 중국의 여러 가르침들 중 신라의 풍습에 맞는 것을 뽑아 신라의 사상을 제시하고 적절하게 표현하였으니 그 공로가 크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