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치원 (문단 편집) ==== 신라출신 백수의 구직활동기 ==== 이렇게 백수가 돼버린 최치원은 산에 들어가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라는 중국 내국인 대상 시험을 준비하는데, 이는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승진시험으로 조선시대 과거의 중시(重試)에 해당한다. 그러나 당시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가 혼란스러워[* 880년에는 황소가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할 정도로 이 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박학굉사과는 열리지 않았다. 결국 관직에 있던 시절 나오던 녹봉이 떨어져 배를 곯을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후, [[양양(중국 도시)|양양]]의 이위라는 사람의 문객(門客)으로 들어가서 시험 준비를 하던 중, [[황소의 난]]이 일어나며 당해 시험은 물론 앞으로의 시험 일정마저 불투명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최치원은 2년만에 시험을 포기하고, 23세 나이인 879년에 대신 구직활동에 나섰다. 당시 절도사 중 1인으로 이름을 떨치던 회남절도사 [[고병]][* 변 자는 한자에 두 가지 음이 있으며, [[고변]]이라고도 알려져 있다.]의 문객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 시기 최치원은 동년배인 고운을 통해서 고병에게 자신의 소개와 관직청원인 자천서를 2회에 걸쳐서 올려서 결국 고병의 문객이 되었고, 고병의 추천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이라는 비교적 높은 벼슬을 얻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