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항(조선) (문단 편집) === [[집현전]]의 또 다른 [[용자]] === 젊은 시절에 비범한 에피소드를 하나 남겼다. [[게으른 천재|굉장히 머리가 비상하긴 했는데 공부가 귀찮았는지]] [[기여입학제|기부금 입학]]을 통해 무시험으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얼마 후 과거 시험에서 '''편입생은 시험 자격 없음'''이란 공고가 붙었는데, 이에 '''[[세종대왕]]에게 항의문을 보냈고 결국 시험 응시 자격을 따냈다.''' 그렇게 얻은 시험 자격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섰는데 이 학사의 당돌함이 시험관들에게도 전해졌는지 어떤 시험관이 최항에게 "어디서 굴러쳐먹던 '''피랑자'''[* 皮狼子. '가죽 불알 새퀴' 정도의 의미다.]가 시험장에서 소란을 부리는 건지"라고 [[디스]]를 걸자 최항은 '''"그쪽 불알은 쇠로 만들었수?"'''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결국 그 시험에서 장원까지 거머쥔 건 덤이다. --과연 세종 때는 개성 넘치는 신하들이 많다.-- 그리고 훗날 바로 그 성균관의 교장인 대사성에 취임했다는 사실도 어찌보면 아이러니. [[박팽년]]·[[신숙주]]·[[성삼문]] 등과 함께 [[훈민정음]]의 창제를 도왔으며, 운회(韻會)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용비어천가]]를 짓는 일에 참여하고, 이어 동국정운, 훈민정음해례 등을 찬진하였다. 잠시 [[문종(조선)|세자]]의 교육을 맡기도 하였으며,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기도 했다. [[문종(조선)|문종]] 대는 [[세종대왕|세종]] [[실록]] 편찬과 고려사의 열전 부분을 집필하였다. [[단종(조선)|단종]] 대는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출세가도를 달리는 문관 A에 불과했지만 1453년(단종 1년)에 덜커덕 [[계유정난]]이 일어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