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현(북한) (문단 편집) === 전쟁 이후 === 1955년 12월, 민족보위성 부상에 임명, 1956년 4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58년 1월 21일, [[리권무]], [[최종학]], [[김봉률]], [[류경수]], 김철우, [[최용진]], 리림, 리방남, [[지병학]], 김화천, 정병갑, 전우, [[김창봉(북한)|김창봉]], [[김대홍]], [[한일무]], [[유성철(1917)|유성철]], [[최광]], [[김창덕]], [[허봉학]], [[오진우]], 정화준, 박창림, [[전문섭]]과 함께 조선인민군 창건 10주년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1958년 4월 2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림업상으로 이동한 [[고준택]]의 뒤를 이어 체신상에 임명되었다. 1958년 11월, [[류경수]] 장의위원장, 1962년 9월, [[김경석]] 장의위원을 지냈다. 체신성 대표단장으로 1958년 6월에 체코, 1959년 6월에 동독을 다녀왔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으며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는 한편 상임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체신상 자리는 [[박영순(1905)|박영순]]에게 물려주었다. 1962년 12월, 군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에는 조선올림픽협회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63년 5월, [[강진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66년 10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2차 대표자회에서는 집행부 성원을 지내는 한편 정치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이때 군사부장에도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7년 3월, [[리봉수]]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67년 5월 6일, 환갑을 기념하여 [[공화국영웅]] 칭호, 금별메달,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1967년 12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에 재선되었다. 이후 불분명한 시점에서 비서국 비서에 선출되었다. 1968년 3월, [[홍명희]] 장의위원을 지냈고 1969년 1월, [[김창봉(북한)|김창봉]]이 숙청되면서 후임 민족보위상에 임명되었다. 1969년 8월, [[리주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정치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으나 비서국 명단에 없는 걸 봐서 비서에서는 해임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또한 민족보위성이 인민무력부로 개편되면서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되었다. 1973년 1월, [[정준택]] 장의위원, 1974년 2월, 장길부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6년 5월 14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진우]]에게 인민무력부장을 넘겨주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만 남기면서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왔다. 1976년 3월, [[남일]] 장의위원, 1976년 5월, [[홍원길]] 장의위원,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77년 12월,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재선되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82년 3월, [[전창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2년 4월 5일,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중앙인민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재선되었으나 불과 4일 후인 4월 9일 14시 5분에 75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와 중앙인민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최현동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실한 혁명전사, 친근한 혁명전우, 훌륭한 혁명동지이며 우리 당과 인민의 충직한 아들이다. 최현동지는 계급적원쑤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한생을 바쳐온 견결한 혁명투사이며 미일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전쟁의 로정우에 커다란 공적을 쌓은 용감하고 재능있는 군사지휘관이다. 최현동지는 일찌기 혁명활동을 시작한 때로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실하였으며 우리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 최현동지는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성으로 하여, 확고한 혁명적원칙성과 고결한 품성으로 하여 언제나 우리 당원들과 인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최현동지의 전생애는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적으로 투쟁한 견결한 공산주의혁명가의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그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혁명가적풍모는 우리당원들과 근로자들의 모범으로 되여왔다. 지금 전체 인민은 당과 국가의 탁월한 활동가를 잃은 커다란 슬픔에 잠겨있다. 최현동지의 서거는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큰 손실로 된다."라고 북한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의 찬사를 바쳤다. 이후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되었으며 반신상이 제작되었고 아내인 김철호도 그의 묘에 합장되었다. 이후 북한 정권의 충신으로 거듭 언급되고 있으며 2022년 8월 25일자 조선중앙통신 기사 <우리 혁명무력의 핵심골간을 키운 위대한 동지애의 품>는 "우리 당을 무장으로 옹호보위하여온 최현동지의 값높은 혁명생애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믿고 아끼시는 로투사의 생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뜨겁게 어려있다. 절세위인의 극진한 신임과 사랑을 심장깊이 간직한 최현동지는 당의 령도를 변심과 가식이 없이 충직하게 받들었으며 총대로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이룩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 한생을 다 바치였다."라고 최현을 칭송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