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추축국 (문단 편집) === [[나치 독일]] === ||<-2> [[나치 독일|[[파일:나치 독일 국기.svg|width=100%]]]] || ||[[퓌러]]||[[아돌프 히틀러]]|| ||[[독일 대통령|국가대통령]]||[[카를 되니츠]]|| ||[[독일 총리|국가수상]]||[[파울 요제프 괴벨스]][br][[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루츠 폰 크로지크]]|| ||가입 목적||[[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빼앗긴 땅 수복[br][[레벤스라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시민들은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로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독일의 영토와 인구, 식민지를 전부 상실한 사실에 매우 모욕감을 느꼈다. 또한, [[독일 제국|군주제]]와 [[군국주의]]에 익숙해져 있던 독일 국민들과 주요 정치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협상국]]의 강요에 의한 산물, 즉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카프 폭동|전복을 시도하기도]] [[뮌헨 폭동|했다.]] [[1920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독일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배상금으로 인해 부담이 커졌다. 그러던 중 아돌프 히틀러가 뮌헨 폭동으로 유명 인사가 되어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하고, [[프로이센 쿠데타]]와 [[쿠르트 폰 슐라이허]]와 [[프란츠 폰 파펜]]의 좋지 않은 사이를 이용해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수권법|합법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여당이 되었다.]] 1936년 3월에는 재군비 선언과 [[라인란트 재무장]]을 함으로써 독일은 [[로카르노 조약]]에 이어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했다. 1938년에는 [[안슐루스|오스트리아를 병합]],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의 주데텐란트([[뮌헨 협정]])와 [[리투아니아]]의 메멜란트[* 1차 대전 이전에는 [[독일 제국]]의 영토였다.] 1939년에 얻었다. 독일은 이어서 체코슬로바키아를 1939년에 점령하고, 곧 분할하여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은 독일에 합병하고,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을 만들었다. 1939년 8월 23일에는,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 조약]]에 서명하고, 독일은 조약에 따라 [[폴란드 침공|폴란드를 침공한다.]] 1941년까지 독일은 유럽의 많은 부분을 점령했으나 [[독소전쟁]] 시작 후, 독일군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패배하고 [[스탈린그라드 전투]]과 [[쿠르스크 전투]][*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회고록에서 '잃어버린 승리'라고 표현한 전투이다. 히틀러의 갖가지 개입과 잘못된 명령이 패전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게 만슈타인의 회고록의 주 논조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므로 이 책은 매우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에서 독일군 대부분의 군력을 잃게 되었다.[* 결국 척탄병까지 편성하고, 히틀러는 [[펠릭스 슈타이너|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부대를 이끌고 공세에 나서라는 명령]]까지 내리기에 이른다.] 그리고, 서방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프랑스 상륙]]과 [[시칠리아 상륙작전|이탈리아 상륙]]을 전개했으며, 히틀러가 1945년에 [[퓌러붕커]]에서 자살하자 항복하였고 연합국에 분할점령된 독일은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을 폴란드와 소련에 할양했고 동서독이 분단되는 운명을 맞았다. [[독일 재통일|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기적적으로 통일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