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추축국 (문단 편집) === [[이탈리아 왕국]] === ||<-2> [[이탈리아 왕국|[[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width=100%]]]] || ||[[국왕]]||[[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두체]]||[[베니토 무솔리니]]|| ||[[총리]]||[[베니토 무솔리니]][br][[피에트로 바돌리오]]|| ||가입 목적||[[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적은 영토를 받은 것에 대한 불만[br][[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내부 불만 및 경기 침체로 인한 불만을 수용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나타났다. 국가 파시스트당은 새로운 [[로마]]를 주장하며 지중해 지배를 목표로 하였다. 1936년까지,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으로 에티오피아를 합병, 파시스트 정부는 [[이탈리아 제국]]을 선포했다. 1937년에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같은 해에 [[방공 협정]]에 일본, 독일과 함께 서명했다. 1939년에 이탈리아 군대가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하여 [[이탈리아령 알바니아|합병하였다]]. 이탈리아는 1940년 6월 10일에 참가했다. 1940년 9월에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삼국 동맹 조약에 서명했다. 그런데 1941년에는 이탈리아 군대가 대패하며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스-이탈리아 전쟁과 이탈리아의 [[이집트 왕국|이집트]] 침공의 패배의 결과였다. [[유고슬라비아 침공]]과, [[그리스 침공]] 등 독일의 개입을 통해 이탈리아 군사의 붕괴와 도시 함락을 막기 위해 노력했었다. 결국 1943년에 [[파시즘]]에 정나미가 떨어진 이탈리아 사람들은 무솔리니에 대한 신뢰를 잃고, 더 이상 전쟁을 지원하지 않았다. 연합국은 북아프리카를 5월에 점령하고 [[시칠리아]]를 [[시칠리아 상륙작전|7월에 침공했다.]] 1943년 7월 25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피에트로 바돌리오]] 내각을 출범시켰으며, 무솔리니를 체포하며 연합국과 비밀 협상을 시작했다. 1943년 9월 8일에 연합국에 가입하고, 연합국과 휴전하며 정전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1943년 9월 12일, [[오토 스코르체니|떡갈나무 작전]]으로 그랑삿소 습격[* 두체의 위치는 독일 측이 찾지 못하도록 시시각각 옮겨졌으나, 스코르체니는 첩보를 이용해 그랑삿소의 경비병 증강 징후를 포착하고 글라이더를 이용해 친두체 성향의 이탈리아 장군의 거짓말을 통해 두체를 구출했다.]이 성공함에 따라 두체는 탈출했다. 이후 두체는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며 종속국의 상태에서 약간의 권력만 가지고 삼국 동맹 조약에 따라 모양만 추축국의 일원으로 다시 참가한다. 하지만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고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역시 붕괴된다. 그리고 1년 후 1946년 이탈리아의 왕정이 폐지되고 이탈리아는 공화국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