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추축국 (문단 편집) === [[유고슬라비아 왕국]] === ||<-2> [[유고슬라비아 왕국|[[파일:유고슬라비아 왕국 국기.svg|width=100%]]]] || ||[[국왕]]||[[페타르 2세]]|| ||[[총리]]||드라기샤 츠베트코비치[br]두샨 시모비치|| ||가입 목적||국가 보전|| 1941년 3월 25일, 추축국들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것을 두려워했던 섭정 [[파블레 왕자]]는 [[삼국 동맹 조약]]에 서명하였다.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추축국들과는 달리 독일의 전쟁을 군사적으로 도울 의무가 없었던 대신 추축국의 병력 이동을 허용할 의무는 있어서 독일은 말라타 작전으로 이탈리아가 먼저 [[그리스 침공|침공]]한 [[그리스 왕국|그리스]]을 점령하려 했다. 반대로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는 유고슬라비아의 [[달마티아]] 지방을 노렸기에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에 가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동맹을 체결한 지 이틀 후 [[페타르 2세]]가 친연합 장교들과 함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세르비아 정교회로부터 대관식과 세례를 받았다. 물론 페타르 2세는 단지 파블레 왕자의 독단과 전횡에 질려서 쿠데타를 일으켰을 뿐, 반파시스트 신념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기에 추축국에 계속 남아 있으려 했다. 하지만 이 쿠데타의 뒤에 영국이 있었던데다가 유고슬라비아 시민들이 독일의 국기와 외교관을 모욕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히틀러는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결심한다. [[나치 독일|독일]]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침공]]은 1941년 4월 6일에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베르사유 조약]] 이후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국가였으며 제대로 된 국가 정체성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기다 세르비아인들이 자민족 우선주의를 드러내며 권력을 독점하고 있어서 특히 이를 갈고 있던 크로아티아인들은 추축국의 침공 즉시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고, 군대는 지리멸렬하여 저항은 2주 동안만 지속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정부가 영국으로 달아나고 4월 17일에 항복, 나라가 분할되어 [[크로아티아 독립국]], [[세르비아 군정청]][* 산하에 [[세르비아 구국정부]]가 있었다.], [[바르다르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왕국(독일)|몬테네그로 왕국]], [[류블랴나 주]] 등 여러 [[괴뢰국]]이 수립되었다.[* 그 중에서도 [[크로아티아 독립국]]은 적극적으로 추축국과 협력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나머지 부분은 추축국이 분할 점령하였다. 슬로베니아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의해 분할되었으며 이탈리아는 중부 달마티아 지역과 코소보를 점령했다. [[헝가리 왕국(1920년~1946년)|헝가리]] 역시 슬로베니아의 한 귀퉁이와 보이보디나의 일부를 점령했으며, [[불가리아 왕국|불가리아]]는 세르비아의 일부와 [[바르다르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를 점령했다. 이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유고슬라비아는 해방되고 왕정이 폐지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들어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