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추축국 (문단 편집) == 친추축국 성향 국가 == 한때라도 추축국과 협력했던 국가들이 기술돼 있다. 엄밀하게는 추축국이 아니며, 나중에 연합국이 된 국가도 많다.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발트 3국]]) - 1940년 소련의 침공으로 점령당했고, 일시적으로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라는 이름하에 나치 독일의 영토로 들어섰지만, 전후부터 소련 붕괴 시기까지 소련의 지배를 받아 소련에 대한 앙금이 크기 때문에 지금도 대체적으로 (국가나 개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연간하면 소련보다 나치 독일에 훨씬 호의적이다. * [[프랑코 정권|스페인국]] - [[유사 파시즘]] 정권.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 제2공화국]] 정권을 무너뜨리고 승리한 후 [[프란시스코 프랑코|프랑코]]가 정권을 잡으며 친독 성향이 강해졌으며, [[청색사단]]도 파병하였다. 그러나 내전 수습 등의 이유로 의용군 외에 공식 참전은 하지 않았고, 일본의 [[마닐라 대학살]]로 바로 등을 돌리고 연합군에게 항구를 개방하는 등 적극 협력하여 프랑코는 전쟁 후에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스페인은 프랑코 정권 초기 나치에 협력했던 친추축국 성향의 국가였음에도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의 반란 세력들을 도운 독일에 의해 전쟁 피해도 극심하게 입은 피해국이었기에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고 왕정복귀가 이뤄진 이후에 게르니카 폭격 등 프랑코의 반란군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에 파병된 나치 독일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독일로부터 과거사 사과를 받기까지 했다. * [[스웨덴]] - 유럽 온갖 국가가 독일에 공격받아 지배당하는 상황에 독일의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로 가는 군사통행권을 내주었으며, 독일이 필요로 하는 철광석 양의 절반 이상을 전쟁 기간 내내 퍼주고 일부 스웨덴인 자원병이 [[핀란드]] 전선[* 다만, 이도 소규모의 지원병 수준이라 나중에 핀란드에도 썩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친추축국 성향이라지만 당연히 소련 눈치도 본 결과이다. 여러모로 이 당시 스웨덴은 자기 앞가림 하느라 급급해서 그동안 스칸디나비아 맹주를 자처했던 것 치고는 꽤 초라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에 주변국들에서 약간의 원성을 샀다. 근본적으로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 2, 3위 사이에 끼어있어 어쩔 수 없었다.]에서 싸우기도 하는 등의 협력을 하였다. 이 때문에 스웨덴은 독일과 끝까지 싸우다 나라를 빼앗긴 [[노르웨이]]의 증오를 샀다. 다만 어느 정도 참작의 여지가 있는 게 스웨덴을 둘러싼 세 나라 중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독일에게 점령되었고, 핀란드는 독일의 동맹국이라 말그대로 사면초가인 상황이었다. 여기서 스웨덴이 독일에 맞섰다면 순식간에 무너졌을 것이다. 물론 스웨덴은 명목상으로 엄연한 중립국이었으며 독자적으로 [[전차]], [[잠수함]] 등의 군사 기술을 개발했다. 이와 별개로 독일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레벤스라움]]이 완성된다면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게르만인들은 [[합병|독일 국민으로 대우해주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이는 [[토사구팽|스웨덴도 결국 주권을 빼앗겼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 [[소련]] - 처음에는 독일을 경계하여 좋지 않게 보고 [[영국]]과 [[프랑스]]에게 친화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양국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소련을 무시했다. 결국 소련은 히틀러에게 접근, [[독소 불가침조약]] 이후 독일의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등을 용인하고 독일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대량 수출함은 물론 발트 3국 점령과, 핀란드 침공 같은 팽창 또한 꾀했지만, 어디까지나 [[독소전쟁]]이 터지기 전까지의 일이며,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선제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는 연합국의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하나가 되었다. * [[이란 제국]] - [[팔라비 1세]]는 추축국에 호의적이었고, 독일과 [[석유]] 거래도 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침공]] 이후 [[영국]]과 [[소련]]의 강압에 의해 연합국 측에 참전한다. * [[인도 제국]]의 일부 독립운동가 -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을 돕다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마하트마 간디]]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무반응,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인도 독립을 보장받고 중국과 미국이 인도 독립운동진영을 지지해 준 뒤 연합국을 지지했다. [* [[윈스턴 처칠]]은 '대영제국의 땅은 한치도 작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독립 이야기를 무르려고 했는데 총선에서 탈식민화를 주장하는 노동당이 이겨버려서 결국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킨다는 약속을 지킨다. 물론 노동당 정권 시기에도 케냐 등 일부 식민지에서 독립을 외치는 시민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다.] 그러나 인도 내에서는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와 맞먹는 독립운동가인 [[찬드라 보스]]는 추축국과 협력하여 인도를 독립시킨다는 계획으로 추축국에 협력했다. * [[아르헨티나]] - 친독일 성향이 강했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나치의 남미 도주|도망쳐 온 나치 잔당]]들을 숨겨주었다. 그래서 1950년대까지 [[국가보안위원회|KGB]], [[영국 비밀정보국|MI6]], [[모사드]], [[UDBA]]를 비롯한 각종 첩보 기관들이 나치 잔당들을 찾기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아돌프 아이히만|그리고 그렇게 모사드는 기어코 잔당 중 아이히만을 체포했다.]] * [[중화민국 국민정부|중화민국]] - 중일전쟁 초기만 해도 독일은 일본보다는 중국의 편에 가까웠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도 1941년까지는 독일과 중국은 관계를 유지했다. 중일전쟁 이전까지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도 중국군을 지원했다. * [[칠레]] -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의 곡조를 이용해 만든 해병대 군가를 지금까지 사용할 정도로 이웃 국가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친독 성향이 강했다. 종전 이후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콜로니아|파울 셰퍼]], 발터 라우프, 안테 파벨리치 등의 나치 독일과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 구 추축국의 전범들을 숨겨주거나 도피 루트를 제공했다. * [[튀르키예]] - [[오스만 제국]] 시절 [[제1차 세계 대전]] 독일의 동맹이었으나, 같이 패전하여 나라가 멸망하는 일을 겪었다. 히틀러와 나치는 1차 대전의 동맹이었던 튀르키예를 꼬드겨 추축국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튀르키예는 [[방공 협정]]에 가담하고,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 등 친독 성향이 있었으나[* 특히 튀르키예의 희소자원을 독일에서 많이 수입했는데 전쟁 말 발칸 추축전선이 무너지자 육상무역로가 끊겨 극심한 부족에 시달렸다고 괴벨스는 일기에서 서술했다.], 과거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는 뼈 아픈 경험을 한 뒤라 2차 대전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튀르키예 공화국의 국부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이미 2차 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히틀러에 대해서 제 정신이 아닌 인물이라고 평해서 그 본성을 꿰뚫어 보았으며,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자기 국민의 손에 목이 매달릴 놈이지"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벌어질 세계 대전에 미국은 필연적으로 참전할 것이며, 미국에 의해 종결될 것이라 예언했다. 아타튀르크의 식견에 따라 튀르키예는 결국 마지막엔 연합군 측에 줄을 섰으며, 이후 줄곧 친미 국가의 길을 걸었다. *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 -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독일, 헝가리 등 추축국 국가들과 같이 [[뮌헨 협정]]으로 주테텐란트, 테신 등 [[체코슬로바키아]]가 차지하던 영토들을 합병하기도 했고, 나치 독일의 히틀러 역시 폴란드와의 동맹을 고려하기도 했으며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지만, 1939년 초 독일이 체코 전역을 점령하고 폴란드 회랑에 대한 영유권을 제기하자 연합국의 편에 섰다. * [[덴마크]] - 독일이 침공하자 하루만에 항복하고 독일의 보호령([[덴마크 보호령]])임을 선언했으며, 독일과의 협력 정책을 고수하였다. [[방공 협정]]에도 가담하여 사실상 추축국 가입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까지 보면 독일이 점령했으니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 5월 31일,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역사가 있다. * [[바티칸]] - 사실 교황 [[비오 12세]]는 개인적으로는 나치를 혐오하였고, 1937년에는 나치즘을 비판하는 독일어 회칙도 발표했으며 또한 유대인 난민들에 대해서도 협조적이었다. 다만 '종교로서의 가톨릭'이 아닌 '국가로서의 바티칸'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추축국의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무솔리니가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라고 스스로를 홍보하기도 했다. 따라서 [[만주국]],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비시 프랑스]],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 추축국의 괴뢰국들을 승인하기도 했다.[* 다른 중립국들은 스페인을 제외하면 이런 짓을 하진 않았다.] * [[스위스]] - 독일의 전시 은행 역할을 담당했다.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며 화폐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에 중립국의 화폐가 필요했고, 독일 마르크를 스위스 프랑으로의 환전해 무역에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전쟁 내내 나치와 협조했지만 독일이 강제병합 의사를 보이자 [[청야전술]]까지 꺼내며 강경하게 반발했다. [[타넨바움 작전]]을 실행하지 못한 이유. * [[엘살바도르]] - 후일 추축국이 되는 일본 제국이 세운 만주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 [[코스타리카]] - 위의 엘살바도르와 동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