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축치인 (문단 편집) == 문화 == || [[파일:Chukchi_boats.jpg|width=90%]] || || 축치 전통 보트 "[[https://ru.wikipedia.org/wiki/%D0%91%D0%B0%D0%B9%D0%B4%D0%B0%D1%80%D0%B0|르그트벳(Лыгъытвъэт)]]". || 이들의 전통의상은 [[후드티]]와 흡사하며, [[에스키모]]들과 오랜 시간 접촉해온 탓에 의복이 서로 유사한 모습을 지녔다. 이들의 의복문화는 [[케레크]][* 축치인과 코랴크인 영역 사이에 살던 민족으로 현대에는 축치인들에게 거의 동화되어 사실상 사멸한 민족이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정주그룹 축치인들은 작살, 창, 가죽으로 만든 그물로 봄겨울에는 [[물개]], 가을에는 [[바다코끼리]]와 [[고래]]를 사냥했다고 한다.[* 물개 사냥의 경우 혼자서 잡고, 바다코끼리나 고래는 몇척의 배가 그룹을 이뤄서 잡았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총을 쓰기 시작했다.] 원통형 또는 원뿔형의 [[천막]] '야란가'(яранга)를 [[툰드라]]에선 [[순록]] 가죽으로, [[해안]]에서는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 또한 해안그룹 "안칼른"의 야란가는 유목그룹 "차우추"의 야란가와는 달리 [[굴뚝|연기를 빠져나가게 할 구멍]]이 없었다. [[19세기]] 말까지 "안칼른"은 [[에스키모]]의 고래 턱뼈로 만드는 집 '발카란'(валкаран)을 모방하여 고래뼈로 틀을 만들고 떼나 흙을 덮은 [[반지하]]에 살기도 했다. 해당 집은 여름에는 지붕을 통해서 드나들었고, 겨울에는 긴 터널을 만들어 드나들었다. 또한 몇 가닥의 줄에 추를 매달아 만든 방식의 [[볼라]]를 사용해 날아가는 [[새]]를 사냥하기도 하였다. 축치인들은 겨울철 이동을 위해 [[썰매]]를 타고 다녔는데 이를 위해 썰매를 끌던 견종이 바로 '''[[시베리안 허스키]]'''이다. [[노인]]들이 [[자살|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나를 죽여줘|친척이나 지인에게 자신을 창으로 찌르거나 밧줄로 목을 졸라서 죽여달라 청했던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축치인들이 [[툰드라|사는 곳]] 자체는 [[한대기후|환경이나 기후가 너무나도 춥고 척박]]하다보니 생활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그렇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도 노인들이 스스로가 쇠약해졌다고 생각하면 아사를 택하는 풍습이 있었다.] ~~어딘가 씁쓸해진다...~~ [[유빙]] 위에서 여름과 가을 동안 해양동물을 사냥하던 축치인들 중 유빙이 육지와 갈라지는 바람에 야쿠티야 해안가까지 떠내려간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옛 축치 전통에선 유빙에 의해 바다로 흘러들어간 순간부터 가족과 친척들은 해당 인물을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살아있어도 [[고향]]으로의 [[존재의 부정|귀환을 금지하는 풍습]]이 있었다. 때문에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 없던 축치인들은 [[잃을 게 없다|현지인들을 약탈하였고, 스스로를 망자라 여기고는 공포심을 더욱 조장하기 위해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거나 비명을 지르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야쿠티야 북부와 마가단에 거주하는 [[유카기르]] 전설에서 "떠도는 축치"라는 뜻의 '수키드제브레이 추프체(Сукиджэврэй чупчэ)'라는 존재가 있는데, 북부 사하인과 인디기르카와 야나 및 레나 강 하류 지역의 [[https://ru.m.wikipedia.org/wiki/%D0%A0%D1%83%D1%81%D1%81%D0%BA%D0%BE%D1%83%D1%81%D1%82%D1%8C%D0%B8%D0%BD%D1%86%D1%8B|러시아 거주민]]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전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사례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픽]]처럼 [[순록]]과 사냥하면서 얻은 바다코끼리같은 동물들의 모피나 뼈, 상아 등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문화가 있다.[* 주로 남자는 뼈나 상아에 문양 및 그림을 새기고, 여자는 순록 모피를 가공하거나 바늘꽃 섬유를 엮어 가방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학교 등록 및 이들에 관한 서류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축치인들에게 [[성씨]]와 부칭을 강요하기 전까지는 이들에게 [[20세기]]까지도 성씨라는 개념이 없었고, 오로지 [[이름]]밖에 없었다. 이름들은 남녀상관없이 대부분이 망자가 저승으로부터 되돌아온다는 전통적인 관념과도 관계가 있었다. 태어났을 때 일어난 자연현상에 따라 짓거나[*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동틀녘이 뜰때 태어났으면 이름이 동틀녘(Tynga-gyrgyn)이 되고, 어떤 여자가 봄에 태어났으면 이름이 봄(Gyrongav)이 되는 식이다.] 추코트카에 사는 동물의 명칭에서 가져와서 짓는 식이다. 또는 [[부모]]가 희망하는 자질에 따라 이름을 짓기도 했다.[* 딸이 예쁘게 크길 바라면 이름을 미녀로 짓는 식이다. 현대에는 러시아식 이름도 병행한다. [[https://www.everyculture.com/wc/Norway-to-Russia/Chukchi.html#ixzz6d7oVobHv|링크]]] 그외에도 체큠, 콰플레크, 콰티크, 페리 등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을 이름으로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