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춘추시대 (문단 편집) ==== 장왕이 떨쳐 일어나다 ==== [[성복 전투]] 이후 초나라의 상승세는 꺾였지만 초나라는 여전히 중원을 포기하지 않아서 진(秦)과 연합해 진(晉)을 공격하기도 하였기에 조돈이 제, 송, 위, 진, 정, 허, 조 등과 동맹을 맺는 등 진과 초의 대립은 이어졌다. 그래도 초목왕 시기에는 중원보다는 장강 일대의 국가들을 정벌하였기에 직접적은 충돌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기원전 614년, 초장왕이 즉위하자 달라진다. 장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며 아버지인 목왕이 급사하였기에 초반에 투극이 반란을 일으켜 납치되기도 하는 등 초나라의 정세는 불안정했고 거기다가 정세가 안정되자 장왕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3년째 되는 해에 오거와 소종의 간언으로 국정을 돌보기 시작한다. 장왕은 먼저 3년 동안 신하들의 행적을 통해 간신을 내쳤으며 같은 해에 용나라를 정벌하고 기원전 608년에는 송나라를 공격했으며 기원전 606년에는 융나라를 정벌한다. 그리고 장왕은 주나라 근처를 지나다가 군대를 사열했는데 이때 나온 고사가 문정(問鼎)이다. 문정 고사에서 보듯 이 시기의 초나라의 야망과 국력은 크게 올라가 있었고 실제로 성복 전투로 인해 꺾여져 있던 초나라의 기세는 기원전 597년에 벌어진 필 전투의 대승으로 다시 올라가 있었다. 다만 아직 주나라 중심의 질서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었기에 초장왕도 패자 정도에서 만족하고 그 이상의 자리를 노리지 않은 것이었다. 한편 [[필 전투]] 이후 장왕은 노, 송, 정 등을 복속시켜 초나라의 패권을 세웠다. 다만 장왕 시대에도 초나라는 부침이 없지는 않았는데 재상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하희라는 여인을 두고 벌어진 스캔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제환공은 비참하게 죽고 진문공은 오래 재위하지 못한 것에 비해서 장왕은 23년이라는 짧지는 않은 재위기간과 안락하게 사망하여 춘추오패 중에서는 가장 끝이 좋았다. 이렇게 장왕이 세워높은 패권은 그 아들인 초공왕 때 [[언릉 전투]]에서의 패배로 흔들리며 [[초강왕]] 시기에는 패권을 완전히 잃는다.[* 이후 초나라는 한동안 왕위 계승 분쟁을 겪었고 초평왕이 이를 안정시켰으나 그 또한 간신 비무기에 휘둘리며 암군이 되었고 결국 초소왕 시기에는 오나라에 의해 수도가 함락당하는 치욕을 겪었고 초소왕 다음인 초혜왕 시기에야 비로소 국력을 회복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