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춘추시대 (문단 편집) ==== 초나라의 몰락 ==== [[오자서]]는 초나라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초나라의 명문가였다. 필 전투에서 활약한 오삼이 같은 집안 출신이며 그의 할아버지 오거는 초나라의 명신이었으며 아버지인 오사는 태자 건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오사 대에 이르러 오자서의 가문은 몰락하고 만다. 그 이유는 비무기 때문인데 당시 초평왕은 진(秦)에 공주를 보내어 태자 건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사신으로 간 비무기가 공주가 아름다우니 공주는 왕이 취하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주자고 건의하였고 평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비무기는 태자가 이 일로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평왕에게 태자를 헐뜯었고 동시에 오사와 그 두 아들에게도 마수가 뻗친다. 결국 태자 건이 먼저 도망쳤으며, 오사와 큰아들 오상은 처형당했으며 오자서는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친다. 이후 어찌저찌 정나라에서 태자 건과 오자서가 만났고 정나라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태자 건은 오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나라를 먹어치워 초나라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이는 들통나 태자 건은 아내와 함께 처형당하고 오자서는 그의 자식들만 데리고 이번에는 오나라로 망명한다. 오나라로 망명한 오자서는 초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당시 오나라 정세를 파악하고 야심도 능력도 충분하지만 입지가 약한 공자 광에게 붙는게 낫다고 판단해 그의 사람이 되었고 계략을 써 오왕 료를 죽이고 그가 왕이 되게 하는 데 협조한다. 이렇게 해서 즉위한 공자 광,즉 합려는 오자서의 기대대로 선대 왕들이 그랬듯 계속해서 초나라를 공격했고 결국 기원전 506년, 초나라는 수도를 점령당하는 대치욕을 겪는다. 거기다가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서 그의 시신에 채찍질을 하였으며 당시 초나라 왕인 소왕은 수나라로 달아날 정도로 굴욕을 겪었다. 물론 이대로 무너질 초나라는 아니었다. 공자 신이 본토에서 합려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으며 이 때문에 합려는 시간을 질질 끌었으며 신포서가 진(秦)으로부터 간신히 구원병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으며 오나라 내에서도 합려의 동생인 부개가 반란을 일으켜 오나라도 더 전쟁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오군은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오자서가 계획했던 것보다는 작은 결과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초나라 역시도 이 과정에서 수도가 큰 피해를 입어 기존의 수도인 영에서 약으로 천도하게 되며 소왕은 남은 기간 동안 약소국들과의 전쟁만 이어나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