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출애굽기 (문단 편집) === 학계 담론 === >'''이집트 탈출이라는 사건의 역사성에 관한 문제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중대한 난제는 우리가 가지고 이는 자료의 주요 원전 편집이 ㅡ 탈출기가 ㅡ 사건들이 저술되고 난 다음 몇 세기가 지나서 이루어졌다는 데서 유래한다. 탈출 기사에 반영된 '지리' 역시 한참 후대에 와서 중요하게 취급된 장소에 접근시킬 수 있다. 비록 이러한 사실이 본문이 제공하는 자료의 정확성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하더라도, 기사가 어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이집트 탈출에 관련된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회상은 궁극적인 문학 형태를 취하기 전에 백성들의 전승 안에서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 >'''성경외적 문헌, 특히 이집트 문헌은 성경 기사를 확증해주거나 기사에 등장하는 이러저러한 인물들을 정확하게 확인해주는 어떤 자료도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건이 전개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시기에 주요 주민 집단이 시나이 반도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어떤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기원전 16세기와 11세기 사이의 이집트에 관하여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셈족 가운데 한 집단이 팔레스티나를 향하여 도주했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에 부합하는 틀이 제시된다. 이 시기 동안 이집트는 시리아-팔레스티나 대부분을 장악했고 종으로 전락한 셈족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탈출기의 역사적 핵심을 구성하는 사건들에 대하여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수 있다.''' 셈족이었던 힉소스족의 이집트 추방은 기원전 1550년경에 일어난 사건으로, 역사가들이 성경 기사와 접근시키는 데 주저하는 편이다. 1열왕 6,1은 이집트 탈출이 솔로몬 성전 건립을 480년 앞선다고 언급하며, 이는 탈출 연대를 기원전 1450년경으로 잡게 한다. 한편, 480이라는 수는 분명 후대의 신학적 산술의 결과로{{{-2 (아론과 차독 사이의 12사제에 40년을 곱한 수)}}} 그 역사적 기초는 의심스럽다. 학자들 대부분은 탈출을 13세기의 사건으로 보고자 한다. 사실 바로 이 시기에 이집트 제19왕조는 {{{-2 (람세스 2세 치하에)}}} 나일강 삼각주에 수도를 세우며 그곳에 건축을 위한 대공사를 실시한다. 이 시기의 이집트 본문들은 피톰과 라메세스 성읍들을 확인해준다{{{-2 (탈출 1,11)}}}. 나아가 이 연대추정은, 가나안에 살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집단과 맞서 {{{-2 (기원전 1220년까지)}}} 이집트의 군주 메르네프타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비문의 언급과 일치한다. 끝으로, {{{-2 (기원전 1187년까지의)}}} 제19왕조 말에 이집트 조정에서 전해진 일화를 기초로 이보다 뒤늦은 시대가 고려될 수 있다. 타우스렛 여왕의 비호 아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베야라는 이름의 셈족 사람이 미래의 파라오 세트나케에 의해 권력에서 쫓겨나 이집트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베야를 모세와 동일시하는 근거는 광야로 도망하였다는 일화뿐만 아니라, '모세'라는 이름이 '···에 의해 태어난 자'를 뜻하는, 이집트어로는 흔한 접미사를 히브리어로 표기한 형태라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2 (예를 들어 프타모시스는 '프타에 의해 태어난 자'를 의미한다)}}}. > >'''우리는 위에서 고려한 여러 일자의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자문할 수 있다. 사실, 탈출기의 편집 작업에서 기초 역할을 했던 회상들은 훨씬 다양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 의해 묘사된 대로의 탈출이 특정한 한 사건이라기보다 오랜 전승 과정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Thomas Römer · Jean-Daniel Macchi · Christophe Nihan 등 공저,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3960637&orderClick=LAG&Kc=|《구약성경 입문》]]{{{-2 [[https://www.amazon.fr/Introduction-lAncien-Testament-Thomas-R%C3%B6mer/dp/283091368X|(''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한국어 역서는 가톨릭 신학교 출반부에서 나왔으나, 원서인 [[https://www.amazon.fr/Introduction-lAncien-Testament-Thomas-R%C3%B6mer/dp/283091368X|《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는 가톨릭 유무와 무관하게 불어권(일부 독어권) 주석학자들이 공저자로 참여한 본격 주석학 개론서이다.]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67-369쪽 >'''작금의 논쟁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들은, 성경 본문이 성경 밖의 신뢰할만한 원전과 상관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역사적인 사실들을 고려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철저한 극소주의의 입장, 이와는 달리 고고학과 금석학의 자료에 의해 직접 상반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성경은 늘 역사적인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극대주의적 입장 사이에서 주저한다.''' >---- >-Thomas Römer · Jean-Daniel Macchi · Christophe Nihan 등, 같은 책 71쪽 기본적으로 "성경외적 문헌, 특히 이집트 문헌은 성경 기사를 확증해주거나 기사에 등장하는 이러저러한 인물들을 정확하게 확인해주는 어떤 자료도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건이 전개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시기에 주요 주민 집단이 시나이 반도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어떤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는다."[* Thomas Römer · Jean-Daniel Macchi · Christophe Nihan 등, 같은 책 366-468쪽. 그 외에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 소장인 [[곽민수]] 역시도 이집트 탈출에 관한 문헌사학적/고고학적 증거가 이집트에 없다고 말한다.[[https://m.blog.naver.com/theegypt/220206654802|#]]] 그러나 출애굽기의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에는 신화적 모티프와 역사적 사건들이 혼합(mingled)되어 있으며,[* 'Much of the Bible, especially in the early part, is traditional literature that took shape gradually over the centuries, and contains material that is much older than the final redaction. Collective memory has come into vogue somewhat in biblical studies in recent years, in part because of the influential work of Jan Assman, Moses the Egyptian." Some scholars have tried to salvage a measure of historicity from the Exodus story in this way. Ronald Hendel argues that "certain actions and policies of the Egyptian empire in Canaan may be discerned in the portrait of the Egyptian oppression. A devastating epidemic in the late fourteenth century, interpreted as an act of divine punishment, may be distantly recalled in the story of the Egyptian plagues. A historical figure named Moses may have been transformed into the savior and mediator of all Israel, perhaps generalized from the memory of a smaller group." Baruch Halpern finds echoes of the Hyksos in the story of the descent into Egypt, and notes that the brickmaking described in Exodus "reflects close knowledge of conditions under the XIXth Dynasty." But as Hendel readily admits, "historical events are the most difficult to isolate." "Each aspect of this complex tale may contain traces of historical events and persons, mingled together with mythic motifs, themes, and structures — the stuff that makes the past truly memorable." '{{{[}}}성경의 대부분은 특히 초기 부분의 경우 수세기에 걸쳐 점점 모양을 갖춘 전통 문학이며, 최종 편집보다 더 훨씬 오래된 원천들을 포함한다. '집단 기억'이 근래 성서학에서 다소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어느정도는 얀 아스만{{{-2 (Jan Assman)}}}의 영향력 있는 저작인 《이집트인 모세》{{{-2 ''Moses the Egyptian''}}}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출애굽기 이야기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성 측량을 인양하려고 한다. 로널드 헨델{{{-2 (Ronald Hendel)}}}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집트의 억압에 관한 묘사로부터 이집트 제국이 가나안에서 한 어떤 행적과 정책들이 식별될 것이다. 천벌로 해석된 14세기 후반의 파괴적인 전염병은 훗날 이집트의 역병으로 회고되었다. 모세라는 이름의 역사적 인물은 ㅡ아마도 소그룹으로부터ㅡ 온 이스라엘의 구원자 및 중재자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바룩 할펀{{{-2 (Baruch Halpern)}}}은 이집트로의 이주 이야기에서 힉소스의 메아리를 발견했고, 출애굽기에서 묘사된 벽돌 제작이 제19왕조 치하에 대한 면밀한 지식을 반영함을 알아냈다. 그러나 헨델이 기꺼이 인정하였듯이, "역사적 사건들은 분리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이 복합적 이야기의 각각의 국면들이 역사적 사건 및 인물들의 흔적을, 신화적 모티프 및 주제 및 구조ㅡ과거를 진실로 기억되게 하는 것ㅡ와 혼합된 채로 포함할 것이다."{{{]}}}, {{{-2 John J. Collins, 《The Bible After Babel: Historical Criticism in a Postmodern Age》}}}] 이스라엘을 형성한 집단 중 이집트 출신의 유이민들이 있었을 개연성은 회의적인 학자들도 부정하진 않는다. 따라서 이집트 탈출 사건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담론은 ||1. '''이집트 탈출 사건을 무엇으로 정의하냐의 여부. 예컨대 이집트에서 건너온 소규모 유이민 집단들의 점진적 팔레스티나 정착을 '이집트 탈출(Exodus)'로 부를 수 있는가'의 여부''' 2. 다른 교차 증거가 없을 경우, 성경의 서술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학적 명제를 판별해야 하는지에 관한 '성서주석학적 담론'|| 을 그 핵심으로 한다. 특히 일반인들은 1번을 눈여겨 봐야 하는데, '''어떤 학자가 이집트 탈출을 긍정하고 다른 학자가 부정한다고 해도, '이집트 탈출'의 정의(definition)가 다를 뿐 둘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 곧, 전자의 학자는 '이집트 출신 유이민이 이스라엘 정체성의 주요 요인이었다'라는 의미에서 이집트 탈출을 긍정하고, 다른 학자는 '그런 유이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출애굽기의 서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란 의미에서 이집트 탈출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 곧, '역사'냐 '신화'냐의 슬로건 단어에 집착하기보다는 학자가 말하는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게 좋다.[* 예를들어서 아래의 발췌문에서 보듯 Roux는 출애굽기에서 "충분한 개연성이 있고 역사적이며 어림잡아 연대를 정할 수 있는 사건들이 이 전설의 외투 아래에 있다{{{-2 (Roux, 《La Mésopotamie》)}}}"고 보지만 출애굽기의 서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2 (Roux. 같은 책)}}}고 말한다. 반면 Collins는 "이집트 탈출 및 가나안 정복의 기본 이야기는 신화로서 가장 잘 이해된다 ... 실증적 관점의 역사에 해당하지 않는다"{{{-2 ("the foundation stories of exodus and conquest are best understood as myths ... they cannot be taken as history in any positivistic sense.", Collins 같은 책)}}}고 보지만 동시에 "역사적 사건 및 인물들의 흔적을, 신화적 모티프 및 주제 및 구조와 혼합된 채로 포함할 것이다"{{{-2 ("contain traces of historical events and persons, mingled together with mythic motifs, themes, and structures", Collins 같은 책)}}}고 본다. 이 둘은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오히려 일정한 합의의 틀을 제시한다.] 현재에 와서, 일부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하면 이집트 탈출에 대한 성경 본문을 글자 그대로의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문서로 보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Lester L. Grabbe, 류광현, 김성천 역, <고대 이스라엘 역사> (CLC, 2012), p. 155.][* 오경의 최종 편집은 BC 400년경에 이뤄졌으며, 요시야 임금 이후의 신학적 사고를 반영한다. 물론 오경의 출전들은 그 이전으로 올라가며 일부 본문{{{-2 (예: 신명기 33장의 운문)}}}에서는 후대의 세련된 유일신론과 비교할 때 매우 투박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은 '페르시아 치하 시대에 이전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회고한 기억'으로 읽는 게 '저자가 동시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 1차적인 문필적 이해'에 부합한다.] 성경의 역사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맥시멀리스트 학자들도 성경 본문만으로는 이집트 탈출과 관련된 역사 서술에 필수적인 특정한 시간과 연대를 확정할수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탈출기는 아무런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미니멀리스트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출애굽기의 성경 본문이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는 주장과 '전혀 반영하지 않는 후대의 창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의 양 극단 사이 어디쯤에 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는 현대 학계의 대다수 학자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이 대규모로 엑소더스를 하여 광야를 방랑했다는 이야기의 역사성은 입증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집트 출신이 아닌 팔레스티나 토착민들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학자들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이집트 탈출의 기억[* 시편, 예언서 등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언급, 초기 히브리인들의 이름에 무수히 나타나는 이집트어의 흔적 등.]은 상당한 진실성을 가지고 있어, 쉽게 부정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정보들은 탈출기의 내용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입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초기 이스라엘을 구성한 이들 중 이집트에서 탈출해온 이들이 일부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Megan Bishop Moore and Brad E. Keller, Biblical History and Israel's Past: The Changing Study of the Bible and History (Cambridge, 2011), pp. 91-95] 이러한 소수 집단이 이집트를 탈출했으며, 이들의 기억이 이후 성경 전승의 일부가 되었을 가능성은 회의적인 학자들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 Grabbe, p. 155.] 그렇기에 오늘날의 학계 담론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1. 출애굽기의 서술이 문자 그대로 있었으리라는 극단적 최대주의 2. '이집트 출신의 유이민 집단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요인이 되었으며 이것이 성경에 이집트 탈출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극단적 최소주의|| 사이의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발췌된 조르주 루가 말했듯이, 출애굽기의 서술과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충분한 개연성이 있고 역사적이며 어림잡아 연대를 정할 수 있는 사건들의 존재는 거의 부정되지 않는다. >이집트 탈출의 전설은 순전히 역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전히 문학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 둘의 분리할 수 없는 혼합물이며, 우리가 지금 '다큐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쉽게 말해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한(때로는 허구도 추가하는) 사극 드라마처럼 사실을 신학적으로 표현한 게 출애굽기라는 의미다.] >---- >-Carol A. Redmount, "Better Lives: Israel in and out of Egypt", in Michael D. Coogan (ed.), Oxford History of the Biblical World (Oxford, 1998). >어린 시절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신성한 이야기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추억으로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중에 이집트로 내려간 [[요셉(창세기)|요셉]]과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모세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탈출, 발을 적시지 않고 홍해를 건넌 사건, 시나이산과 십계명, 약속의 땅 정복,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하고 제리코의 성벽을 나팔 소리로 무너뜨린 이야기 등이 있다. 위대한 서사시, 유대인 역사의 영웅 시대를 구성하는 이 일련의 이야기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충분한 개연성이 있고 역사적이며 어림잡아 연대를 정할 수 있는 사건들이 이 전설의 외투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학자는 오늘날 흔치 않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스라엘)에게서 기원한 일부 부족들이 이집트에 들어간 것과 요셉이 파라오의 왕실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것은 힉소스 중간기(기원전 1684~1567년)에 아주 잘 들어맞을 것이다. 학자 대부분은 출애굽이 람세스 2세의 치세인 기원전 1260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시나이 사막에 오래 거주하는 동안 모세라는 이집트 이름을 지닌 천재적인 인물이 아직 다신교적 성향이 있는 이 부족들로 하여금 유일신을 숭배하도록 인도했다는 사실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주적인 신에 관한 계시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신이 바로 야훼다. 훨씬 나중에 무함마드가 이와 비슷한 일을 하여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나안 정착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이 정착은 갑작스러운 정복이라기보다는 느리고 힘겹게 한 부족씩 이루어진 침투로서 거의 한 세기 동안 띄엄띄엄 이어진다. >---- >-조르주 루(Georges Roux),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68170850&orderClick=LAG&Kc=|《메소포타미아의 역사 II》]][* 원제: [[https://www.amazon.fr/Mésopotamie-Georges-Roux/dp/2020236362|《La Mésopotamie》]]. 영어판(불어판보다 먼저 출판됨) 제목인 《Ancient Iraq》로도 유명하다. 한국어판은 1995년 프랑스어판의 번역이다. Roux (1914 ~ 1999)는 이 책을 학자들이 아닌 문외한이나 학생들을 위해 썼다고 겸손하게 말했으나 고대근동학자에겐 메소포타미아{{{-2 (여기선 '아시리아학'의 동의어. 곧 레반트를 포함한 광의의 메소포타미아를 다룸.)}}}에 관한 대표작이자 권위작이며, 그는 학계의 리더 중 하나로 꼽힌다.("《Ancient Iraq》 was a major work, readable and authoritative, on the ancient history of the region formerly known as Mesopotamia ... His field researches, together with his Assyriological studies, placed him among the leaders in this sphere, in particular on the historical side, although with typical modesty he claimed to be only an amateur in Assyriology."[[https://amp.theguardian.com/news/1999/sep/08/guardianobituaries1|#]], by [[https://amp.theguardian.com/science/2005/oct/06/obituaries.guardianobituaries|Harry Saggs]])], 김유기 옮김 (서울: 한국문화사, 2013), 65-66쪽 >고고학적 증거는 엑소더스 이야기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일어났음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이야기에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자주 지적되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인들이 종살이와 탈출이라는 기원 설화를 완전히 지어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첫째로, 그것은 너무나도 볼품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지어낼 기회를 가진 그 누가 자기 조상들이 비천한 노예였다는 이야기를 날조해내겠는가? 이 이야기가 온전히 후대의 창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둘째 근거는, 악역의 아이덴티티이다. 이스라엘은 아람인,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등등 수많은 외국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아왔다. 엑소더스 이야기가 타국의 지배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그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라면 적어도 동시대 독자들에게 공감을 살만한 세력을 지배자로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집트는 특이한 선택이다. 이집트 역시도 앞서 언급한 제국들의 침탈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시리아 시대 이집트의 국력에 대해 이사야서의 "부러진 갈대"라는 경멸적인 표현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이스라엘이 존재하기도 이전인 초기 시대에 이집트는 가나안의 지배 세력이었다. (중략) 엑소더스 내러티브는 수 세기에 걸쳐 구전으로 전승된, 이집트의 가나안 지배 시절에 대한 문화적 기억을 보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또한 일부 셈족이 실제로 이집트에서 강제노역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집트에는 셈족 노역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종종 가나안으로 탈출 시도를 했다. 이는 출애굽기의 대서사시적 탈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수도 있겠지만, 성서의 이야기에 대한 핵심 알맹이를 제시해주고 있다. 한번에 걸쳐 일어난 이스라엘인들의 대규모 이집트 탈출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셈족 노예들이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주기적으로 탈출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가나안에 도착한 이 난민들은 자연스럽게 해안가의 도시들이 아니라 인구가 희박한 산악지대에 정착했으며, 이미 그곳에 정착해서 성장하고 있었던, 스스로를 가나안인과는 다른 정체성으로 설정해가던 집단과 합류했을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시작이었다. >---- >-Joel S Baden, The Book of Exodus: A Biograph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pp. 5-7. 위의 주장들을 "이집트 탈출"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의견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부분적인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합의 된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