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각 (문단 편집) === 고대 === [[파일:external/www.abc.se/olympram.jpg]] >곧바로 배와 배는 그 놋쇠 뱃머리를 부딪치며 전투에 들어갔다. 그리스 배가 먼저 공격하여 페르시아 [[갤리선]]을 산산조각냈다. > -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에서 묘사된 충각전술 이 충각의 등장은 현대로 보면 [[화약]]무기가 발명된 것 만큼이나 혁명적이었는데, 이유는 충각의 등장으로 인해 '''적의 배를 직접 박살내는''' 전술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 당시 배는 작고 좁은 데다가 당연히 [[화포]] 따위는 없고 적함을 파괴하려면 기껏해야 불화살로 태우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이 충각이 달린 배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적함의 측면에서 전속력으로 돌진하면 두쪽을 내줄 수 있다. 배에 전투원을 태워 바다에 내보낸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배 자체가 무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무식한 질량과 추진력으로 때려박는 전법이니만큼 [[F=ma]]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당연히 제대로 된 파괴력을 내려면 일단 배가 크고 ~~[[크고 아름다운|아름다워야]]~~ 무거워야 하고(=자원이 많아야 함), 적어도 적함보다는 장갑이 강해야 하며(=기술력이 좋아야 함), 속도가 나야 한다(=노를 젓는 등의 가속을 위한 인원이 많아야 함). 그래서 충각전함을 소유한 나라는 많은 자원, 뛰어난 기술력, 많은 인구를 가진 몇몇 강국뿐이었고, 곧 충각전함 보유국 =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해전사에 있어 [[전열함]] → [[전함]] → [[항공모함]]으로 이어지는 크고 강력한 전투함 = 강대국의 상징이란 이미지가 고대부터 있었던 셈이다. 더불어서 무엇보다 이로인해 가장 큰 변화는 군함과 상선의 분화로, 그 이전까지는 적당한 속도에 다수의 병력이 탑승가능한 선박이라면 아무 배나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수 있었다. 때문에 평시에는 상업적인 용도로 운용하던 선박을 전쟁이 발발하면 전투원을 싣고 전투함대의 일원으로 편성하는 식이었으나 충각의 등장 이후부터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할 선박은 필수적으로 충각을 보유해야만 했기에 건조 당시부터 충각을 위한 설계와 적 충각을 방어할 내구력을 요구하게 되어 전투용 함선과 상선용 함선의 구분이 시작되었다. ~~[[조선|??]]: [[조운선|화물선]]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전투용으로 쓰면 되지~~[* 내구성이 강한 한선의 특성상 전투와 운송을 겸용하는 맹선을 사용했으나, 조선 초기가 지나면 이것도 한계에 부딪히고 전투용의 판옥선이 등장한다.] ~~본격 무장상선과 사략함대~~ 거기에 충각의 발명으로 고대 해전의 양상 또한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체로 쌍방이 접근해서 화살 등을 날린 뒤 상대방의 배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힌 교전 양식은 무대가 물 위라는것만 제외하면 실상 육상에서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허나 충각이 발명되고 나서는 적 함선의 후미나 측면을 향해 빠르게 항진해서 적함을 들이받고 다시 새로운 표적을 찾기 위해, 그리고 적 함에 박혀있어 움직일수 없어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군함에 빠른 기동력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충각 등이 모두 뱃머리 부분에 위치했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않기 위해 가로로 늘어선 횡렬진 형태의 포진이 기본적인 진형이 되었다. 또한 그 이전과 달리 배에는 백병전을 위한 전투원들보다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노를 젓는 노잡이들이 더 많이 요구되었으며[* 이를테면 고대 아테네의 3단 노선에 탑승하는 승무원은 약 200 명 정도였으나 그 중에서 전투를 위한 전투 병력은 20 명 남짓이었으며 함장이나 갑판장 등의 일반 선원들이 10 명이었고 그 외의 나머지 170명은 노를 젓는 노잡이였다고 한다.] 역시 더 많은 노를 탑재하기 위해 [[트리에레스|3단 노선]]이 개발되었다. 또한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무엇보다 능숙하고 노련한 승조원들이 필요했기에 서로 숙련된 노잡이 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으며 심지어는 적국에 복무하다 포로로 붙잡힌 노잡이들의 경우 오른손을 잘라버려서 만약 해방되더라도 다시 적국 군선에서 복무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이 당시의 충각은 발전과정이 매우 복잡한데, 일단 내 배는 안부서지면서 다른 배를 박살내야 하고,[* 충각돌격은 적선에 주는 피해도 크지만 [[뉴턴의 운동 법칙|자신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배를 지지하는 구조가 약하다면 충각돌격을 건 배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세키부네]]가 충각도 못하고 끔살당한 것도 이 이유다.] 일단 구멍을 뚫었으면 쉽게 빠질 수 있도록 해서 내 배와 상대방의 배가 얽혀서 같이 침몰하는 것을 막는다는 복잡한 것이라서 다양한 종류의 충각이 발달한다. 초기 [[페니키아]]와 [[그리스]] 갤리선들은 단순히 뾰족한 뿔 같은 형상의 충각을 달았지만 뿔 형상은 다시 빼내는 것이 어려워, 타격은 타격대로 주고 아예 박혀버리지는 않도록 끝부분이 넓적한 망치 형상으로 개량되었고 재료도 목제에서 청동제로 변화되었다. 위 사진의 배는 1980년대에 [[살라미스 해전]] 당시의 그리스 [[트리에레스|3단층 갤리선]]을 복원한 그리스 해군의 올림피아스 호로, 저 사진의 충각이 최종 개량형 충각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이집트의 경우 고대부터 충각이 아래 중세시기의 충각과 비슷하게 배의 직접 파괴가 아니라 적선의 선원들의 교란/물에 빠뜨리기가 주력인 용도로 사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