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청북도 (문단 편집) == 역사 == 고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차지하여 [[삼국시대]]의 격전지였다.[* 단적으로 [[고구려]] [[장수왕]]이 세운 [[충주 고구려비]]와 [[신라]] [[진흥왕]]이 세운 [[단양 적성비]]가 모두 충북에 있다.] [[통일신라]] 때는 [[한주]], [[삭주]], [[웅주]], [[상주]]의 일부였고 [[고려]] 때 지금의 충남, [[경기도]]와 함께 [[양광도]]에 대부분 편입됐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양광도가 [[경기도]]와 [[충청도]]로 분리되었다. '''충청도'''의 명칭은 오늘날 충청북도에 해당되는 '''[[충주시|충주]]'''와 '''[[청주시|청주]]'''에서 유래되었다. 1896년 이전까지는 [[충청남도]]와 함께 [[충청도]]의 일부였다. 이 시기의 역사는 [[충청도]] 문서로. 1896년 남·북도로 분리되어 [[도청(행정)|도청]]이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1908년 청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때문에 가끔 충주 쪽에서 도청 이전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비슷한 바리에이션을 보이는 곳으로는 충청남도의 [[공주시]]가 있다. [[충남도청]]이 있었던 공주 역시 일제강점기 때, 도청 및 충남 제1의 도시 타이틀을 [[대전광역시]]에 넘겨주었다.] 1914년 충청남도로부터 문의군을 편입하여 청주군에 흡수하였다. 1917년 청주, 1923년 충주를 지정면(指定面)으로 한 다음 1931년 4월 1일 읍면제가 실시됨에따라 읍으로 하였다. 1940년 제천과 영동도 읍으로 하였다. [youtube(4Wb1m-Ml3DI)] 1946년 6월 1일 청주시 설치와 더불어 여타 청주군 지역을 청원군으로 하였다. 1949년 5월 20일 옥천읍과 증평읍이 설치되었다. 1950년 7월 [[영동군]] 황간면 일대에서 미군이 현지인과 피난민 수백명을 좌익으로 몰아 살상한 [[노근리 학살 사건|전쟁범죄]]가 터졌는데, 점령지 주민들에 대한 민심을 얻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전쟁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이 부족한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이 있다. 1956년 7월 8일 음성읍과 충주시가 설치되었고 충주군은 중원군으로 고쳤다. [[1973년]] [[7월 1일]] 진천읍과 보은읍, 금왕읍, 1979년 5월 1일 단양읍, 괴산읍, 1980년 12월 1일 매포읍이 각각 설치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시]]를 설치하고 여타 [[제천군]] 지역은 [[제원군]]으로 고쳤다. 1990년 증평출장소를 도 관할로 격상하였다. 1991년 제원군을 제천군으로 고쳤다. 1995년 제천군+제천시가 제천시로, 충주시+중원군을 충주시로 하고 동년 3월 1일 충주시 주덕읍, 제천시 봉양읍을 설치하였으며 청주시 상당구, 흥덕구의 일반구를 두었다. 2000년 1월 청원군 북일면을 내수읍으로 하고 2003년 9월 괴산군 증평읍, 도안면을 분리하여 [[증평군]]을 내왔다. 2010년 11월 1일 경부고속철도 2단계 개통과 함께 [[오송역]]이 영업을 재개했으며, 2012년 청원군 강외면 지역이 [[오송읍]]으로 승격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주·청원 통합]]에 따라 기존의 2구를 4구([[상당구]], [[흥덕구]], [[청원구]], [[서원구]])로 재편하였다. 또한 진천, 음성에 [[충북혁신도시]]가 설치되면서 진천군의 인구가 증가하여 진천군 덕산면이 2019년 7월에 [[덕산읍]]으로 승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