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청북도청 (문단 편집) === 중앙공원 시절 === 1928년 운주헌 앞에 단층 건물을 지어 도청 건물로 쓰기도 했다.[[http://cheo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eongju&dataType=01&contents_id=GC00201994|디지털청주문화대전 - 청주 충청북도청 본관]] 운주헌(運籌軒)은 오늘날 중앙공원에 있었다(위 청주읍성 링크).[* [[상당산성]] 내의 관아 역시 이름이 '운주헌'(運籌軒)이었다고 하지만[[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128031|#]] 도청을 산성 안으로 이전할 리 없으니 같은 이름의 다른 건물인 듯하다. 도심지의 운주헌이 병마절도사 건물이었으니 군사 관련 시설로서 산하 청사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순신]]의 서재 이름도 '운주당'(運籌堂)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실히 군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인 듯하다. 운주(運籌)는 "지혜롭게 계책을 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https://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885|#]]] 이 일대의 건물들은 본래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쓰던 건물이었는데, 위 37쪽의 인용 원문에서는 그 글이 쓰여지기 1년 전인 1907년 (8월 1일)에 [[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어 오늘날의 중앙공원에 있는 병마절도사 건물들도 비어있으니 청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애당초 청주로 도청을 옮길 때부터 이 부지와 건물들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 아마 청녕각이라는 편액이 병마절도사 영문으로 간 것은 이 시기인 듯하다. 1911년 청주읍성을 철거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의도적인 문화 말살의 일환이라는 설도 있다(위 충북inNEWS 기사). 1937년 현 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는 병마절도사 영문(營門)만 남고 철거되었기에 지금은 모습을 찾기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