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측천무후 (문단 편집) == 가계 == * 부: [[무사확]] * 모: 양씨 * 언니: 한국부인 * 여동생: 무씨 * 남편: 태종 * 남편: 고종 * 아들들 * 장남: [[이홍(당)|의종 경황제]] * 차남: [[장회태자]] * 3남: [[중종(당)|중종 화황제]] * 4남: [[예종(당)|예종 흥황제]] * 딸들 * 장녀: [[안정공주]] * 차녀: [[태평공주]] 가족사가 조금 복잡한데 아버지인 무사확과 전처인 상리씨 사이에서 나온 형제 두 명인 무원상과 무원경이 있었고, 이후 무사확과 양씨가 재혼해 언니인 한국부인[* 이름이 한국부인인 것이 아니라 직위명이다. 본명은 불명이다.]과 여동생인 무씨가 있었다. 어머니 양씨는 수나라 관덕친왕 양웅의 조카딸이자 시안공후 양사달의 막내딸로 명문가 출신이었다. 훗날 무측천이 황후가 되자 '영국부인'에 봉해졌다가 죽은 뒤 '노국부인'으로 봉해져 시호를 받았고, 함양에 안치되었으며 무측천이 이미 죽은 아버지를 '태원군왕'으로 봉하면서 어머니를 그곳의 왕비로 올렸다. 고종과 측천무후의 아들들은 어머니에게 눌려 있었던 탓에 이후에도 기를 잘 펴지 못한건가 싶을 정도로 황제답게 혼자 정권을 쥐고 있었던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다. 장남인 '''이홍'''의 경우, 일설에 의하면 어머니의 뜻을 자주 거스르다가 독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차남 '''이현'''의 경우, 역시 어머니에게 밉보였다가 쫓겨났다. 3남 중종 '''이현'''은 예전부터 유약했다고 하며 복위한 뒤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정사를 처리하는데 아내 [[위황후]]에게 의지했다. 이런 아들들에 비해 중종의 딸이자 측천무후의 손녀인 [[안락공주]]나 측천무후의 막내딸인 '''[[태평공주]]'''는 권력욕이 강했다고 한다. 안락공주는 어머니 위황후와 손을 잡고 자기 친아버지인 중종을 [[만두]]로 독살했을 정도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태평공주는 성격이나 재능면에서 측천무후와 닮은 점이 많아서 측천무후가 특별히 아꼈다고 한다. 그러나 태평공주가 중종보다 자기가 황제에 어울린다며 황태녀의 자리를 요구하자 >"네가 뛰어나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또 여자가 황제가 되려면 신료들을 또 다시 대숙청해야 할텐데 나도 그렇게 황위에 올랐지만 그건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도는 남아 있어 4남 예종 '''이단'''이 복위한 건 여동생 태평공주와 후에 [[현종(당)|현종]]이 된 아들 이융기 덕이 크며 예종이 재위한 동안은 거의 태평공주가 정국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종이 건강에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이융기에게 빨리 선위한 것도 이런 정국을 뒤집어엎기 위함이었다.] 측천무후의 판단은 적중하여 태평공주는 결국 나중에 황제로 즉위한 조카와 암투를 벌이다가 져서 자신은 물론이고 일파까지 대숙청당했다('''[[선천정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