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치킨 (문단 편집) === 한국에서의 역사 ===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닭고기]]를 주로 삶거나, 끓이거나, 쪄서 먹었다. 튀김은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흔하지 않았다. 지금의 [[프라이드치킨]]이란 요리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졌다.[[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6/14346273783ULro62X7MkRTkTB4RHJnb8g.jpg|#]] 해방 이후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 각 부대 근처를 중심으로 미국 지역들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프라이드 치킨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960년대]]~[[1970년대]]엔 시장 통닭이 유행했다. 치킨 가게들이 생기기 전엔 이런 시장 닭집에서 생닭 뿐만 아니라 닭튀김 요리도 같이 팔았다. 그리고 [[1970년대]] 말 한국 최초 프라이드 치킨 브랜드가 생겨난 이래 양념치킨이 개발된 [[1980년대]] 이후 지금 같은 한국식 치킨 요리가 발전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실제 한국식 치킨 요리 선봉장이라 할 수 있는 [[양념치킨]]이 본격 판매된 [[1985년]] 이후 쯤부터 오늘날 치킨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시장을 이끄는 유명 치킨 프렌차이즈 브랜드 다수가 이 때부터 [[199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다. 삼겹살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고기를 먹으며 외식하는 분위기와 맛을 낼 수 있어서 국내에서 빠른 속도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장 통닭의 아성마저 확실하게 넘은 [[1990년대]] 치킨 황금기 이후 2천년대에 들어서는[* 크게 2번의 변혁기가 있었다. 하나는 [[1997년]] [[IMF]] [[외환위기]](퇴직자들이 대거 치킨집 개업), 그리고 하나는 [[2002년]] 축구 월드컵 특수.] 치킨판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게 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영양쎈타.png|width=100%]]}}}|| 양념통닭이 사실 현대식 K-치킨의 출발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을 따져보면 [[1960년]] 최초의 [[전기구이 통닭]] 전문점인 서울 [[명동]] 영양센타가 개업했다. 당시 [[영화]]나 [[소설]]에 심심치 않게 명동 영양센타가 등장할 정도로 영양센타의 전기구이는 유명세를 타던 음식이였고, 이는 [[1970년대]] 중후반 전기구이 통닭 열풍이 사그라들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런 통닭은 돌아가는 철봉에 꽂아 니크롬 열선으로 익히는 방식이었기에 전기구이 통닭으로 불렸다. 영어로는 돌려가며 굽는 것을 로티서리라고 하며, 서울 돈암동의 온달통닭(현 온달 왕 돈까스), 서울 혜화동의 명동치킨(폐업) 등 여러 곳에서 팔았다. [[2020년대]]에는 1톤 트럭에 히터를 싣고 돌아다니며 파는 2마리 15,000원쯤 하는 [[맥반석]] 통닭이 (뱃속에 찹쌀, 대추 등이 들어가는 것을 빼면) 옛날의 전기구이 통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971년]]에는 해표 [[식용유]]가 한국 최초로 출시되면서 닭과 기름의 양산화 여건이 갖추어졌고, [[1977년]] 한국 최초의 프라이드 치킨집인 [[림스치킨]]이 [[신세계백화점]]에 개업했다. [[1979년]]에는 [[롯데리아]]에서 조각 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들어 영세규모의 프라이드 치킨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4년]], [[두산]]을 통해 [[KFC]]가 서울 [[종로구]]에 들어왔다. 당시 KFC의 치킨 가격은 비쌌지만 청춘들의 미팅 장소로 각광받으며 특유의 매콤하고 기름진 맛이 차츰 국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대구의 [[멕시칸치킨|계성통닭]]과 대전의 [[페리카나]]에서 [[양념치킨]]을 선보이며 소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치킨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멕시칸치킨]] (1986), [[처갓집 양념통닭]] (1988), 이서방 양념통닭 (1989), [[스모프 양념통닭]] (1989), [[멕시카나]] (1989), [[사또치킨]] (1990), [[교촌치킨]] (1991), [[지코바]] (1994), [[BBQ치킨|BBQ]] (1995), [[네네치킨]] (1999)[* 본래는 1995년에 혜인유통이라는 이름의 계육 가공업체로 출발.], [[호식이 두마리치킨]] (1999), [[부어치킨]] (2005) 등이 이시기 줄줄이 등장하며 치킨 열풍을 이어갔다. 한편, [[1990년대]]부터 양념치킨의 대중화와 대중매체를 통한 치킨 체인점 광고의 본격화 등으로, 전기구이 통닭은 뭔가 밋밋하고 촌스러운 메뉴로 위상이 추락해 시장점유율을 내주게 되었고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 극소수의 전문점을 제외하면 [[1993년]]부터 등장한 트럭 장작 구이 및 [[숯불]] [[바비큐]] 치킨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1995년]] 등장한 [[BBQ치킨]]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자, 이에 영향을 받은 치킨집들이 이전의 [[호프집]] 이미지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월드컵]] 특수를 맞이하였다. 요즘 말하는 대중이 축구 경기 보면서 [[치맥]] 뜯는 원조격 되는 시절이었던 셈. 실제 치맥이란 단어가 대중화된 것이 이때쯤부터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선전하면서 당시 사장님들은 대표팀이 한 경기 한 경기 이길 때마다 이겨서도 기쁘지만 매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 쌍쾌재를 불렀다[[카더라]]. 그리고 이런 특수에 힘입어 치킨 전문점들이 이전과도 차이가 날 정도로 우후죽순 들어서게 되고, 브랜드들도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치킨업계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바로 찜닭 열풍과 [[교촌치킨]]의 [[간장치킨]] 열풍이였다. [[북한]]에선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2216013?sid=101|2008년 6월]],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b0a8bd81ad50b958c640-c0acb78cb4e4/fe-nj-07032013112638.html|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이 북한에 문을 열면서 [[https://blog.naver.com/nuacmail/221795781826|남한식 치킨]]이 진출하게 되었으며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평양시]]와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치킨집이 어느 정도 성업하고 있다. 참고로 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은 남측 사업가의 제안으로 북한 무역회사와 합작해서 문을 열게 되었다고 하며, [[https://blog.naver.com/gounikorea/222937968466|2020년대 기준]]으로도 장사는 잘되고 있다고 한다. 단지 남측 사업가가 2010년 이후 [[5.24 조치]]로 정산을 못하게 되는 바람에(...) 돈이 허공에 뜨면서 [[http://www.snk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67|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 문제일 뿐이라고.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파닭]], 오븐치킨 등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한 곳에서 시작하면 다른 경쟁 업체에서도 비슷한 메뉴를 내놓는 식으로 대응하며,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특색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치킨 가격이 비싸졌다는 지적과 함께 [[2010년대]] 들어선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사건을 계기로 중저가, 특히 두 마리 치킨들이 강세를 보이며 프랜차이즈 별 가격 경쟁을 벌이게 되어서 가격이 싸졌다. [[2015년]]에는 시즈닝을 이용한 가루 양념치킨이 인기인데, 이것 역시 서로 따라하면서 특색을 잃고 있다. [[허니버터칩]]의 영향으로 꿀을 넣은 치킨들도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안 파는 곳이 없다. [[https://blog.naver.com/don_jjin/222912602389|한국치킨의 변천사 간략정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