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박 (문단 편집) == 존속 여부 == 사실, 친박의 미래가 밝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대중적으로 비호감도가 너무 높은데다가 지지 세력 또한 노쇠해서 새로 유입될 신규 자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젊은 보수층만 하더라도 [[자유보수주의|개혁]][[보수자유주의|보수]]를 지향하는 보수 [[소장파]]나 [[친유]], [[남원정]]과 같은 [[비박]]계 지지가 더 많다. 심지어 강경보수에 가까운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원체 인물이 없다보니 딱히 친박계 인사를 대권 후보로 지지하고 있진 않다.] 게다가 친박과 비박이 손 잡고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엔 이미 탄핵이란 강을 건너 개개인이 어찌해보기엔 화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해버렸다. 결국 한쪽이 청산되지 않는 한 싸움이 끝나지 않을 판. 게다가 정치적 구심점인 박근혜는 이미 법적 판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상황이니 무슨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울 근거도 없고, 차기 대권주자 역시 씨가 마른지 오래다. 그나마 당권만 잡자는 거면 2017년 이명박, 박근혜가 같이 구속된 것으로 인해 친이와 친박 서로 간에 문재인의 정치공세에 대한 희생양이라는 그들만의 공감대가 생겼고, 이후 태극기부대의 입당을 바탕으로 친박이 제1보수정당에서 일정부분 세를 다시 얻긴 했다. 2018년 범 친박 세력이 결집하여 [[나경원]]이 [[원내대표]]에 당선시키면서 친박이 아예 죽진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물론 나경원 자체는 비박계 인사였기에 이후 나경원은 친박, 비박 서로 책임 공방을 하지 말고, 당내 계파 갈등을 종결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친박에 대한 청산도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2.27 전당대회]]로 친박으로 분류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황교안/생애#s-4.1.1|새로운 당대표가 되었는데]], 첫 인선에 대해 친박 색채가 강화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친박을 계승해 본인과 가까운 친황이라는 새로운 계파를 형성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83253|#]] [[https://news.v.daum.net/v/20190304120513332?rcmd=rn&f=m|#]] 이에 자유한국당이 도로 친박당 되는 것 아니냐는 당내 우려가 나왔고, [[김무성]] 같은 [[비박]]계들 또한 친박 중심 인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래도 여전히 친박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강해서 최소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 컷오프는 피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051086348975|#]] 2020년 1월,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통합하면서 친박, [[친황]]은 [[친유]], [[소장파]], [[친이]], [[친무]], [[친홍]] 등 비박계와 갈등을 갖게 되지만 그래도 [[우파 유튜버|극우 유튜버]]들의 친박에 대한 지지로 인해 친박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다만 21대 총선 이후엔 [[침묵하는 다수|목소리만 크지 실제 득표에선 아무 도움도 안되는 자들]]이란 비판도 당한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2/2020051203926.html|#]]] 그러나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패하며 이 모든게 '''[[신기루]]'''였음이 [[아시발꿈|다시 한번 밝혀졌다]]. 나아가 [[황교안]]을 비롯한 대부분의 친박 인사들이 낙선, 게다가 [[우리공화당(2020년)|친박]] [[친박신당|계통]] [[기독자유통일당|소수]][[친박연대(2017년)|정당]]도 분열 후 전멸하면서 친박 계파의 미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김선교]], [[유상범]], [[정점식]] 등 [[황교안]]과 가까운 [[친황]] 정치인들이 입성했다고는 했지만 과거와 달리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박정희]], [[박근혜]]의 고향인 [[대경권]]의 25개 의석 중 친박계인 국회의원 수가 [[추경호]], [[김용판]], [[곽상도]], [[윤두현]], [[이만희(정치인)|이만희]], [[김석기]], [[김정재]] 외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친박들은 경선 과정에서 밀려나 선거에 출마조차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동구 을]]에서는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친유|친유계]]인 [[강대식]] 전 대구 동구청장에게 밀리고 [[윤창중]]마저 낙선했다. [[동구 갑]]에서도 당시 현역이자 전직 [[행정안전부장관]]인 [[정종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이진숙(기자)|이진숙]]이 [[류성걸]] 전 의원에게 밀렸다. 심지어 그 보수적인 경북 북부에 속하는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에서 친박계인 천영식 청와대 비서관이 [[김재원(정치인)|김재원]]의 지원을 받고도 [[김희국]] 전 의원에게 밀렸다. 기존 현역 의원이었던 [[김재원(정치인)|김재원]]은 [[중랑구 을]]에서 [[친유|친유계]]인 [[윤상일]] 전 의원에게 밀렸다. [[미래통합당]] 내 친박 인사도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기준 20명이 채 안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반대측에선 비박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숙청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 직후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비박계 [[주호영]] 후보가 낙승하였다. 게다가 주호영과 경쟁한 상대 후보였던 [[권영세(1959)|권영세]] 의원도 범친박 출신이긴 했지만 [[친이]]-[[친유]]의 [[조해진]] 의원과 손을 잡으며 친박 성향이 옅어지고 개혁보수를 강조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권영세(1959)|권영세]] 의원은 정계 입문 당시만 해도 친박과는 거리가 멀던 인사로, 2천년대엔 [[남원정]]과 같은 당시 소장파들과 가깝게 지내던 인사였다. 그러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서 요직에 임명되며 범친박계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 즉, [[주호영]]이 되든 [[권영세(1959)|권영세]]가 되든 친박들의 약화는 이미 기정사실화가 된 것이다. 주호영이야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 [[컷오프]]로 애초부터 [[박근혜]]와 껄끄러운 관계인데다 원래 [[친이|친이계]]고, [[권영세(1959)|권영세]]도 친박과는 이미 거리를 두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향후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청년 인재들조차도 극우적 성향보단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중도우파]] [[비박|비박계]]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니 친박은 진짜 언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실제 몇 번의 선거를 거치고,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극우와 선을 긋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어 친박계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어갔고 [[2021년 재보궐선거]],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제1차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의 주도권이 [[중도우파]]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사실상 단일대오 계파로서의 친박계는 사라졌다. 원조 친박계인 [[김태흠]]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친박이라는 호칭에 대해 '''"[[박근혜|계주]]는 감옥 갔고 총무도 없는데 친박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라고 답하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2021년 12월 31일, [[특별사면]]되면서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대구로 낙향한 뒤, 박근혜는 옥중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보필했던 법률대리인 [[유영하]] 변호사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와 함께 유영하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하면서 본인이 이루지 못했던 정치적 소망을 대신 이어갈 것이라는 발언을 남기면서 이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지역인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펼치게 될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앞서 20대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홍준표]]가 대구로의 하방을 선언하면서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고 같은 친박이던 [[김재원(정치인)|김재원]] 역시 이를 견제하면서 출마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박을 내세운 둘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였고 결국 10% 페널티를 적용한 홍준표의 득표율보다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한 득표율이 더 낮게 나오면서 사실상 [[친황]] 몰락의 전철을 한번 더 밟은 셈인데다 대구에서마저도 '''박근혜 마케팅의 실효성이 전무함'''을 재차 증명한 꼴이 되어 버렸고 기껏 야심차게 준비했던 재기의 발판마저 말끔히 소멸했다. 현재는 [[친이]]와 함께 이미 수명이 다해 [[친윤]]으로 통합되어 구분의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시선이 주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