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이 (문단 편집) ==== 친이 6인회 ====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를 이끌었던, 이명박을 포함한 최고 지도부 인사 6명을 일컫는다. * '''[[이명박]]''' - '''친이계의 수장'''. 전직 재선 국회의원(14~15대), 민선 3기 서울시장,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 '''[[이재오]]''' - 전직 5선 국회의원(15~19대)으로, '''친이계 좌장'''이다. 2012년 즈음부터 꾸준히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투옥된 경력이 있으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늘푸른한국당]]의 창당을 주도하여 이 당의 대표를 역임했다. 늘푸른한국당이 자유한국당(이후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흡수된 지금은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있다. MB 정부 당시 최측근 중 거의 유일하게 지금도 MB 곁에 남아있는 인물로, 이명박의 검찰 소환 때도, 구속 직전에도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이자 재판에도 거의 매번 참석하였고, (그가) 사면된 현재도 이명박이 외부 활동을 할 시 항상 동행하는 인물. * '''[[이상득]]''' - 전직 6선 국회의원으로(13~18대), 17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 MB의 친형이자 '''영포회[* 이상득을 포함한 영일-포항 권역이나 그 인근 지역 출신인 친이계 인사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엄청난 권력을 누려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의 수장'''. 하지만 MB 집권 기간 말기에 비리로 구속되면서(...) 동생에게 제대로 민폐 끼친 주범이 되었다. * '''[[김덕룡]]''' - 전직 5선 국회의원(13~17대), [[상도동계]] 원로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부터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후 이재오, 이상득, 박희태, 최시중과 더불어 친이 6인회로 거론되었다. 그래서 상도동계면서도 친이계로도 분류된다. 다만,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민정•공화계의 후예인 [[박근혜]]와는 성향이 맞지 않기 때문. * '''[[박희태]]''' - 전직 6선 국회의원(13~18대), 제18대 후반기 국회의장. [[민주정의당]] 시절 명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내로남불]], [[총체적 난국]], 정치 9단 등 수많은 유행어를 창조했다. [[3당 합당]] 이후에는 민정당 출신임에도 [[김영삼]]과 [[경남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김기춘]]도 [[노태우 정부]] 사람이지만 김영삼과 [[거제시|동향]]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김영삼과 가까이 지냈다.] 김영삼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문민정부]]의 초대 [[법무부장관]]을 맡았다. 이후 한나라당의 중진으로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명박을 지원한 후, 한나라당 대표와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을 맡았다. 이후 18대 국회 말기에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이 터지면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한 이후인 2014년 가을에는 캐디를 성추행하여 물의를 빚었고,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더불어서 유죄 확정 전에 [[새누리당]]에서도 제명되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은 사망 시 [[국립묘지]] 안장 대상 중 하나인데, 박희태는 범죄 때문에 국립묘지에 매장되지도 못한다.]. 그리고 [[김형준(법조인)|둘째 사위]]도 부장검사를 지낸 인물이었는데, 뇌물수수가 까발려져서 검사직에서 파면되었다. * '''[[최시중(1937)|최시중]]''' - [[조선일보]] 출신 언론인으로, [[한국갤럽]]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신설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s-4|초대 위원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