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일 (문단 편집) ==== [[대한제국]] 이전 ==== * '''[[김옥균]]''' - [[일제강점기]] 이전에 등장한 [[홍영식]], [[권동진]], [[오세창]], [[유길준]], [[정병하]] 등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 [[개화파]]이다. * [[백제]] - [[백제]]는 [[한반도]]에 들어선 역대 정권들 중에서, 가장 친일 성향이 두드러졌던 나라다. 당시의 백제와 [[일본]]은 단순히 우호적이기만한 수준이 아니라 공식적인 [[혈맹]] 관계였다.[* 다만, [[일본]] 측에서 독자적으로 [[중국]] 측에 칭신하고 조공을 바치려 하자, [[백제]] 측에서 중국으로 가던 일본 사신을 납치해서 감금해버리고 외교 문서를 압수한 사례는 있다. 혈맹이고 뭐고 자기들 영향력을 이탈해서 독자 행보를 보이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백제의 역대 왕들 중 상당수는 태자 시절 볼모 등으로 일본에 있다가 선왕이 죽으면 백제로 돌아와 즉위하기도 했다.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던 백제 내부 정변에 일본이 개입한 적이 많았는데, 특히 왕족인 부여씨 측에서 강력한 외척이자 귀족 세력인 해씨, 진씨 등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군을 끌어들인 적이 많다. 또 백제는 삼국과의 항쟁에도 일본군을 여러차례 끌여들였는데, 관산성 전투 등 주로 신라와의 여러 전투에서 일본에 파병을 요청해와 일본군을 한반도 전쟁에 관여시켰다. 백제는 주로 신라와의 전투 때만 일본을 끌어들였는데, 일본 입장에서는 고구려의 전쟁에는 개입해봤자 얻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신 백제는 중국에 사신을 여러차례 파견하여 고구려 침공에 앞장서달라고 요청해 왔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해서 백제를 침공해 멸망시키자, 백제 귀족들이 소수나마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으며, 일본 측에서 구원군을 파병했다가 [[백강 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개발살이 난 적도 있다. 이런 문화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백제-일본 혼혈인도 많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황실]]'''. 실제로 일본 황실은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과 달리 한국에 우호적인 면이 있으며, [[아키히토]]가 [[천황|덴노]] 시절에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덴노]]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다시 주목을 받은 바가 있다. * [[신숙주]] - [[조선]] 초기의 인물들 중에서 몇 안되는 친일 성향 정치인이었다.[* 당연히도 [[친일반민족행위자]]나 [[일빠]]가 아니라, 이 항목에서 말하는 건전한 친일이다.] 그가 남긴 저서들 중 하나인 [[해동제국기]]는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일본]]의 문화와 [[일본어]]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료로 취급받으며, 일본과의 외교를 중시하여 [[성종(조선)|성종]]에게 남긴 유언도 대일외교에 대해 조언한 것일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