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칠곡(대구) (문단 편집) === 고대~[[고려]] === 칠곡에서는 청동기 유적 등이 발견되는 등 오래 전부터 이 곳에 사람이 살아왔다는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팔달동 유적과 구암동 고분군을 합쳐 고고학계에서는 이 지역을 [[구암동 고분군]]으로 분류하고 이 지역에 살던 집단을 대구 지역 내의 유력 집단 중 하나로 규정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마을터와 특유의 돌무지돌덧널 무덤은 [[신라]]에 병합되기 전 원삼국시대에 이 곳이 상당한 세력권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 아래 항목에서도 나오겠지만 고분군 뿐만 아니라 산성([[팔거산성]]) 역시 존재한다. 마을터와 고분군, 성곽의 존재는 곧 그 지역에 군장급 이상의 지배자를 갖춘 집단이 살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라 시대에는 이 지역을 팔거리(八居里)또는 북치장리(北恥長里) 또는 인리(仁里)라고 하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팔리(八里)로 개칭하여 수창군(壽昌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는 팔거(八居)로 고쳤고 현종 때에는 [[성주군|경산부(京山府)]]로 이속하였으며, 별호로 칠곡(柒谷)이라고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