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칠종칠금 (문단 편집) == 연의에서 == 남만과 전쟁을 하는데 [[맹획]]은 패배할 때마다 [[정신승리|핑계를 대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제갈량]]도 "그러면 어디 마음 내킬 때까지 덤벼보아라"하면서 그를 번번이 놓아주었다. * 1차전: [[제갈량]]의 유인에 넘어가서 '''패배'''. 맹획은 산길이 좁아서 실수로 잡힌 거니까 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형과 환경을 파악하고 전술, 전략을 짜는 건 장수로서 아주 기본인 부분이다.] * 2차전: 부하인 [[동도나]], [[아회남]]에게 배신당해서 '''패배'''. 맹획은 부하의 배신으로 잡힌 거니까 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하들의 인망을 잃고 매질까지 해서 배신하게 만든 건 결국 맹획 본인의 책임이다.] * 3차전: 동생 [[맹우#s-2]]를 이용한 내응작전이 실패해서 '''패배'''. 맹획은 동생이 술을 탐하다 실패한 거니까 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맹우의 실수라기보다는 제갈량이 이미 맹획의 계략을 간파하고 있었다. 애초에 항복한답시고 본인이 아니라 동생을 보낸 점에서부터 티를 냈고, 판본에 따라서는 화해의 선물을 들고 온 짐꾼들의 건장한 체격을 묘사해 내응작전의 일환이라는 식으로 약간의 [[복선]]을 뿌리기도 한다.] * 4차전: '''또''' 유인에 넘어가서 '''패배'''. [[맹획]]은 [[제갈량]]이 비겁한 계책만 일삼으니까 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쯤되면 억지에 가깝다. 당장 3차전에서 맹획 본인도 계략을 시도했다.] * 5차전: [[타사대왕]]의 근거지가 공략 당한 것도 모자라 [[양봉(삼국지)#s-2|양봉]]에게 배신당해서 '''패배'''.[* 여담으로 이 부분은 거의 유일하게 제갈량이 별다른 계책 같은 걸 내놓지 못하고 순수하게 타인에게 의존한 부분이라고도 하나, 애초에 제갈량의 목적이 맹획을 비롯한 남만인들의 '''교화'''가 목적이었다. 그래서 양봉이 투항 의사를 밝히자 제갈량이 드디어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며 기뻐하는 장면도 있다.] 맹획은 내부 쁘락치 때문이니까 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2차전과 비슷한 맥락으로, 인망을 잃고 남만인들이 등돌리게 만든 건 결국 맹획 본인의 문제다.] * 6차전: [[축융(삼국지)|축융부인]] '''패배''' & [[목록대왕]] '''전사''' & 처남인 대래동주의 잠입작전 '''실패''' 3종 세트. 맹획은 제발로 찾아와 잡힌 거니까 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스스로의 삽질로 잡혀버렸다는 건 결국 맹획 본인이 무능하다는 걸 입증해주는 꼴이다.] * 7차전: [[등갑군]]들이 호로곡에서 화공으로 죄다 괴멸당하고 본인은 이겼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찾아왔다가 사로잡혀서 '''패배'''. * '''[[스윕|통산 전적: 7전 7패]]'''. 그런데 내용을 보면 의외로 촉군도 꽤 고전한 싸움이다. 칠종칠금은 흔히 제갈량이 맹획을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되지만, 4차전까지는 몰라도 5차전 이후부터는 타사대왕, 축융부인, 목록대왕, 올돌골 등을 상대하면서 촉군도 [[장억]]과 [[마충]]이 사로잡히고, 천하의 조운이 맹수부대를 보고 기겁해서 달아났으며,[* 조운의 무용을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줄행랑을 쳤다기보다는 휘하 병사들이 놀라 달아나서 통제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퇴각했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비슷하게 연의 극초반에 유관장 삼형제가 [[장보]]와 싸울 때 장보가 부리는 도술에 겁먹은 병사들이 아무리 질타해도 움직이질 않아 어쩔 수 없이 퇴각했다고 나온다. 물론 그 직후 [[주준]]의 조언에 따라 양과 돼지의 피를 모아 괴물들에게 뿌려 인형임을 알아채는 식으로 퇴치했다.] 위연도 등갑군에게 격퇴당하는 등 힘든 싸움을 벌였다. 특히 5차전에서는 산신과 [[맹절]]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촉군은 그대로 후퇴하거나 아니면 독에 중독되어 몰살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그 제갈량조차도 [[https://wonsamkukji.appspot.com/readcn?no=89|이러면 한실 부흥이 물건너갔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괴롭다고 절망적인 넋두리를 할 정도였다.]] 결국 7차전이 끝나고 나서 [[제갈량]]은 포로로 잡힌 맹획 일가를 융숭하게 대접한 뒤, 자신은 자리를 떠난다. 이때 한 사람이 술자리에 들어와서 "승상께서는 너무 많은 이 땅 사람들을 죽여 공과 얼굴을 맞대기 부끄럽다고 하오. 그래서 저를 대신 보내시고 당신들이 다시금 싸울 수 있도록 풀어주라고 명령하셨소."고 하자 마침내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감복하며 마침내 진정으로 항복하고, 덕분에 촉군은 드디어 촉으로 돌아간다. 이후 제갈량이 편히 퇴각하려 하자 [[비의]]가 "왜 군사를 남기지 않으십니까?"라고 묻는데. 1. 군사를 남기면 군량도 남겨야 한다. 2. 관리들만 남기고 군사를 남기지 않으면 보복이 뒤따른다. 3. 설령 보복을 하지 않는다 해도 (남)만인들은 의심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큰 사건이 생길 것이다. 라고 답하여 남만을 믿는다는 뜻을 보였다. 사실 정사에서도 제갈량이 비슷한 말을 한다. 남중에 군사를 남기지 않아 서로 평안하게 하겠다는 식으로. 다음은 한진춘추에 기록된 제갈량 본인의 발언이다. >"만약 외인(外人-남중 바깥의 사람, 즉 중국인)을 남겨두면 응당 군사도 남겨야 하는데, 군사를 남기면 먹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첫 번째 어려움이요. 게다가 이인(夷人)들이 이제 막 상하고 격파되어 그 부형(父兄)들이 죽었는데, 외인들이 남아 있으면서 군사가 없으면 필시 재앙과 우환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어려움이요. 또한 이인들이 누차 폐살(廢殺)하는 죄를 지어 스스로 자신의 죄가 중함을 꺼림칙해 하는데, 만약 외인을 남겨두면 끝내 서로 믿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어려움이오. 지금 나는 군사를 남기지 않아 운량(運糧)할 필요를 없애고, 강기(綱紀-기강, 법령)를 대략적으로만 정해 이인과 한인들이 대체로 편안케 하려 하오.” 이는 정확하게는 중앙에서 간섭하기보단 적절하게 남만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부여하고 그 대신 남만 쪽에선 촉한 중앙정부에 안정적인 자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식으로 복속시킨다는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화양국지 등에는 이 당시 복속시킨 호족들에게 벼슬과 권한을 주고 재물을 풀어 민심을 안정케하여 한족과 만족이 뒤섞여서 평안해졌으며 이곳에서 나온 물자를 군국에 대고 정예군을 선발했다는 식으로 기록했다. 그 결과 반란이 빈번하던 남만이 제갈량 정벌 이후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후 촉한이 멸망하기 직전에도 남만으로 망명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삼국지 초주전). 이때 남만을 정벌하고 제갈량이 촉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물로 만두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만두]] 항목에 그 일화가 나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