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미카제 (문단 편집) === 전술적 성과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카미카제는 얼마나 미국에 피해를 주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구 결과가 나왔고 미국과 일본 학자들 모두 이에 대한 자료를 내놓았으므로 교차검증도 잘 되어 있다. '''호위항모 3척[* 미군의 호위항모들은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거의 대부분 [[유조선]]이나, 화물선 같은 수송선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것이다. 그랬기에 전형적인 물장갑이었다. 어쨌거나 항모는 항모고, 탑재량이나 함재기의 스펙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따져봤을 때 작전 능력은 일본의 정규 항모급 이었으므로 일본에겐 대단한 성과인 거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걸 120척 가량 뽑아내는 미친 공업력을 가지고 있었다.--밑이 없는 독에 물 붓기-- 이것만 해도 문제인데, 미국의 산업역량은 전쟁이 장기화하면 더 뽑아서 굴릴 여력도 충분했다. 실제로도 24척을 뽑아낸 [[에식스급 항공모함|에식스급]] 조차 능가하는 성능의 [[미드웨이급 항공모함|신형 항공모함]]도 이미 설계하고 있었다.], 구축함 14척, 소해정 3척, 수송선 3척, 상륙정 14척, 화물선 9척, 탄약 수송선 1척. 합계 47척.''' [[http://wgordon.web.wesleyan.edu/kamikaze/background/ships-sunk/|출처]]. 전함이나 순양함은 물론이고 정작 '''일본 군부가 특공대가 잡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정규 항모는 단 한 척도 없다.''' 뭐 후술하다시피, 이미 수십 척의 항모전단을 굴리던 미국 앞에서는 정규 항모 한두 척을 격침시켜도 전황조차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카미카제로 격침당한 미 해군 정규 항모가 한 척도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운용한 정규 항모들은 전부 격납고가 개방식이다. '''즉 애초에 카미카제가 아니라 항공 폭탄이 비행갑판에 떨어져도 그 충격의 대부분이 함체 밖으로 다 새어나간다는 뜻이다.'''[* 격납고까지 뚫고 집중 방호구역까지 들어가서 터지면 말이 달라지기는 하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피탄당했을 때 유리하다는 것이지 호넷의 사례를 보듯 항공 폭탄을 맞아도 멀쩡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호넷은 폭격 말고 어뢰도 맞았다.] '''이 47척이 __비행기 3,800여기와 그만큼의 파일럿__을 100% 확률로 폭사시킨 __카미카제 전략에 의한 최종 성과__다.''' 이 피해는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만이 아닌 1944년부터 집계된 카미카제로 인해 격침된 모든 미 군함의 수를 포함한 숫자다. 참고로 일본 연구가인 나가츠카와 야스노부의 집계는 49척으로 미국측 집계보다는 2척이 많으나 큰 차이는 없다. 오키나와의 전투에서 카미카제로 격침된 군함으로 한정한다면 그 성과는 더더욱 초라해진다. 고작해야 '''구축함 11척, 화물선 3척, 소해정 2척, 상륙정 8척, 수송선 2척'''에 불과하다.[[https://wgordon.web.wesleyan.edu/kamikaze/background/ships-sunk/index.htm|#]] '''아예 호위항모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 정도 피해는 압도적인 미군이 아니라, 훨씬 전력적으로 떨어지는 영국군이라 해도 별 피해가 아니다. 그나마 의미 있는 건 상선을 개조해 임시땜빵으로 만든 호위항공모함 3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미해군은 '''항공모함만 100척을 넘었고 __정규 항모로만 한정해도 32척(요크타운 3자매+ 에식스 24자매+ 레인저+ 와스프+ 렉싱턴 2자매+ 랭글리 등)__'''이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는 개전시부터 종전시까지 잠시라도 보유한 경항모, 정규 항모를 모두 합쳐서 26척 정도였고[* 그 중에서도 50기 이상을 탑재 가능한 정규 항모는 11척 정도에 불과했다(쇼카쿠급 2척([[쇼카쿠]], [[즈이카쿠]]), 운류급 3척(운류, 아마기, 카츠라기), 히요급 2척 (히요, 준요), 히류, 소류, 카가, 다이호, 아카기). 여기에 시나노가 42기 정도 탑재 가능했고, 나머지는 20~30기 정도만 탑재할 수 있는 경항모였다. 그마저도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필리핀 해 해전]], [[레이테 만 해전]] 등에서 격침되고, 특히 필리핀 해 해전에서 미드웨이 해전 패배 이후 긁어 모았던 항모 항공 부대가 모조리 작살남에 따라 항공모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상황까지 되어 버렸다.] 그나마도 준공과 손실이 계속됐으므로, 일본군이 동시에 보유한 숫자는 보통 15척 이하 정도에 불과했으며, 카미카제가 본격적으로 행해진 1945년 초에는 6척 정도[* 호쇼, 카이요, 류호, 준요, 아마기, 카츠라기.]만 남아있었으며 이마저도 연료 부족과 함체 손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은 대부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격침이 아닌 연합군의 전체 피해를 집계하면 300~400척 정도, 피해자는 1만 명 정도 된다고는 하지만''', 대다수가 수송선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중소형 함정이었고, 정규 항모를 격침시켜도 전황을 뒤엎기도 모자를 판이므로 사실상 카미카제로 격침시킨 호위항공모함 3척은 [[새발의 피|별다른 피해조차 아니었다는 소리다]]. 카미카제의 명중률이나 피해도가 통상 공습보다는 높았고, 전술적으로 미군에 더 큰 피해를 입히고 미 해군의 진격을 지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후술하다시피 전략적으로는 무의미했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군이 이러한 일련의 자살 공격으로 입힌 미 해군에 대한 피해는 미 해군 입장에서는 충분히 복구가 가능한 피해였으나, 일본은 그런 피해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어떠한 수도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군이 이러한 일련의 공격으로 이루려고 했던 목적들은 모조리 실패하였으며, 오히려 대국적으로는 자기 자신들의 목을 더 강하게 옥죄어드는 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일본 군부는 당시 미군에 기술적으로도, 인력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이었다. '''그 병력과 인재들을 아껴서, 지속적으로 방어 위주의 전술로 저항하는 방향으로''' 주 전략을 구성했으나, 이마저도 미군에게는 부수적인 피해에 불과했을 뿐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미 해군 상대로는 총체적으로 봤을 때 그 어떠한 유효한 타격도 주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일시적인 효과에 고무되어 지연책에 불과한 자살 공격인 '''카미카제를 정식으로 편제했을 뿐만 아니라, 대대적으로 홍보한 시점에서''' 일본 군부가 [[일회용|국민들의 생명]]을 [[소모품|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이전에 카미카제 따위를 정식 전술로 채택할 정도였으면 이미 그 전쟁은 진 거나 다름없는 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얼른 항복하고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 파일럿 같은 고급 인력은 보존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이것에 대조되는 것이 [[P-51 머스탱]] 떼가 독일 상공에 날아다니는 걸 본 [[헤르만 괴링]]의 말이다 > '''"졌어. 우리는 이미 전쟁에 진 거야."''' 유럽 전선의 나치 독일도 패망에 가까워지자 [[국민돌격대]] 따위를 구성하여 노인들과 산업 인력마저 사지로 내몰고,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인력들이 후퇴하거나, 피난하는 민간인이나, 자살적인 작전을 거부하는 것을 Greifkommando(그라이프 코만도)라는 헌병 특임대까지 만들어가며 학살하였다. 결국 국가가 국민이 아닌 체제 보전을 위해 이성을 상실하고 당장의 효율에만 집착하여 나오는 광기라는 점에서 나치 독일의 말로나 카미카제를 포함한 일본군의 말로는 그 궤를 같이한다. 영국 해군 항공모함들도 전쟁 후반 시기에 카미카제 공격을 당했는데, 영국 항모는 목재 비행갑판을 쓰던 미군 항모와 달리 아예 활주로를 장갑판으로 떡칠해 놓은 덕분에 대부분 이를 버텨냈다. 장갑판 덕에 급강하폭격에 대한 내성도 있었고, 폭격 후 비행기가 충돌하더라도 잔해 치우고 파인 부분을 메꾸는 정도만으로도 바로 비행기를 띄울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장갑 갑판은 카미카제 같은 약한 공격을 막을 때는 좋지만 대신 더 큰 타격을 받아 아예 장갑판이 박살나면 꼼짝없이 도크 신세다. 그러나 카미카제로는 장갑 갑판을 파괴할만한 공격을 하지 못했다는 게 현실(...). 반면 미군 항모는 카미카제가 비행갑판에 처박히는 정도로도 바로 전투력을 상실하지만 대신 피해가 크든 작든 나무판만 충분하면 현장에서 갑판을 복구할 수 있다. 단, 엘리베이터가 부서지면 망하지만.] 그러나 이런 성과들도 반복하지만 카미카제의 특성상 이번 전투에 한정된 효율과 전과일 뿐이었다. 만약 카미카제로 당장의 교전에서 성과를 내더라도 일본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장기적인 관점과 승리에 대한 길이 있을 때에는 지연책을 쓰면서 비장의 수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조건 항복 외에는 선수가 없다. 이기지도 못할 개죽음에 효율성이 있다 해도, 결국 결과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을 끌고 타격을 줘도 무조건 항복 외의 길은 일본에게 남아있지 않았고, 적의 공격에 반격을 해도 진정한 의미의 반격인 미국에게 할 공세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도 없었다. 결국 전략적 의미 단락에서 후술하겠지만 일본 방위성의 연구 자료에서조차 공격이 아닌 전투기에 의한 방공이 차라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지적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