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미카제 (문단 편집) ==== 수준 미달의 조종사 ==== 카미카제에 투입되었던 조종사는 긴급 양성된 신참 조종사가 많았다. 카미카제 대원들은 속성으로 훈련받아 고급 전술은 당연히 구사할 수 없었고, 초보 조종사들이 바다[* 바다의 경우, 육지와 다르게 사방이 물이라 방향 감각을 유지하기 힘들다. 기준점이 되는 사물이 없기 때문에. 한마디로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을 수도 있다. 항해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대양을 횡단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왜 연안을 끼면서 뱃길이 나있는지 그리고 배가 되었건 비행기가 되었건 왜 나침반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니는지 생각해보자.]에서 방향을 잡고 항로를 유지하는 고난이도의 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리도 없고, 1회용 전력에 일본군이 그 정도의 노력을 투입할 리도 만무하였다. 거기다 유럽과 달리 태평양은 엄청난 제트기류로 인해 숙련된 조종사들도 상당히 힘들어하는 비행 경로다.[* 194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한 [[일본 본토 공습]] 당시 [[커티스 르메이]]가 일명 ''''[[도쿄 대공습|예배당 작전(Operation Meetinghouse)]]''''을 짜면서 주간에 하던 고고도에서의 고폭탄 위주 정밀 폭격이 아니라 야간에 소이탄을 이용한 저공 융단 폭격으로 폭격 방침을 잡은 이유도 이것이 원인을 제공했다. 실제로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가 헤이우드 셰퍼드 핸셀의 전술을 비판한 배경이 이것이었다. 백날 정밀 폭격한답시고 공장만 노려서 폭탄을 떨궈봤자 그 당시 기술력으로 '''바람을 무시하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때리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사례도 있다. 단적인 예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원자폭탄이 실전 최초로 떨어질 때]]. 일반적인 [[항공폭탄]]들마냥 kg단위도 아니고 무려 4톤짜리 [[원자폭탄]]도 바람에 휘말리면서 조준점을 벗어나서 엉뚱한 곳에 떨어질 정도인데 오죽하겠는가? 실제로도 [[JDAM]] 같은 정밀 타격 무기가 나오게 되는 원인도 이것이다.] 목표까지 가는 길을 못 찾으면 끝없는 태평양 수면에 착수하는 결말이 된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소련]]의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1945년]]), 12년이 지난 [[1957년]]이었다. 현재 위성항법 측위 시스템은 [[GPS]]와 [[GLONASS]]밖에 없는데 저 둘을 각각 [[미국|어떤]] [[소련|나]][[러시아|라]]에서 주도하여 개발했는가를 생각하자. 항공우주 기술 1위는 미국, 2위는 러시아이다. 다만 일본은 그래도 현재 GPS 링크에 물려있는 위성 항법 위성이 열 개 정도 있긴 해서 궤도 변경 등을 해서 태평양에 다 투입하는 식으로 제한된 지역으로나마 위성 항법 시스템을 급조할 수 있긴 하다. 물론 S/W(링크망)를 급조하든 따로 개발했다는 전제하이다. 문제는 GPS든 GLONASS든 전파가 쓰인다는 건데 당시 [[야기-우다 안테나#s-3|일본의 전파에 대한 사고방식]]을 보면 저것도 못하게 막았을 확률이 높다.] 태평양의 망망대해 위에서 나침반의 방향과 몇 가지 측량법만 의지해서 목표물을 찾는다는 건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했다.[* GPS가 대량으로 활용되는 현대에도 이런 고전적인 항법술은 해군과 상선에서 여전히 활용되는데, 전자전의 [[EMP]] 발생으로 전자장비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유사시를 대비하고, 또는 GPS 외 복수 항법으로 교차 검증해서 오차를 더욱 줄이려는 의도이다. 사례를 보면 게임 [[배틀필드 4]]의 싱글플레이 미션 초반에 주인공들이 중국 [[상해]]에서 해상 탈출할 때 EMP가 발생했고, 곧 군함에 탑승했을 때 그로 인해 함내의 각종 고장이 묘사되고 특히 항법 장비의 고장으로 견시 임무중인 승조원이 증가하고 개리슨 함장이 해도(바다용 지도)를 꺼내서 직접 항법을 재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후반에는 카미카제용 양성 조종사도 대단히 귀한 존재였다. 결국 선도기로 '''숙련된 조종사'''의 선도가 미군의 촘촘한 초계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필수였다. 즉, 카미카제를 시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대원들을 선도해서 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까지 선도해야 했는데 비숙련자들을 이끌면서 자폭하러 가는 비행이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쉬운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전후에 선도기 조종사가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을 보거나, 인터뷰에 응하여 밝힌 바에 따르더라도, 카미카제 작전에 동원된 대원들이 배에 뛰어들 때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친 경우는 없었으며, 모두 "어머니"를 불렀다고 한다. 자폭하지 않는 선도기 조종사들은 무전을 통해 수많은 죽음을 전해 들었고, 악몽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숙련된 조종사도 회피 기동하는 군함을 명중시키기 어려운데[* 군함 자체가 빠르게 기동하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미군의, [[탄막]]이라고 해야 할 수준의 무지막지한 대공포화를 회피하면서 명중하는 게 더 어렵긴 하다.], 신참 조종사들이 폭격에 성공하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닥돌]]하게 만들면 비슷한 수준의 조종사가 폭격하는 것보다는 명중률이 더 나왔다. 통상적으로 급강하 폭격시 미 해군의 초계기들과 방공망을 뚫고 유효타를 낼 확률은 4% 정도였으나, 자살 공격은 14% 정도였다. 그러나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공습]] 후에 본격적으로 가동된, 연합국 군인들에게 무기를 제공한다는 [[무기대여법]]에 [[과달카날 전역|1942년 말]]부터는 한술 더 떠서 [[Operation CWAL|더는 기다릴 수 없다]]까지 치면서 물자를 쏟아내고 압도적인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던 [[미국]]과 정상적인 대결을 펼쳐서는 이렇게 해도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