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타콤 (문단 편집) === 로마의 카타콤 === [[파일:로마 카타콤.jpg]]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이다. 카타콤은 라틴어 단어들 "가운데"(cata)와 "무덤들"(tumbas)이 합성되어 "무덤들 가운데"(among the tombs)라는 의미이다. 원래 로마는 귀족이든 시민이든 화장을 한 후 뼈를 석관이나 단지에 담아 가족 산소에 모셨으나, 이후에는 인구 과잉과 토지 부족 등의 여러 문제로 화장율보다 매장률이 높아져서 시민들의 유해를 안치할 공간인 카타콤이 생기게 된다. 카타콤에서는 동굴이나 지하 갱도 벽에 수평으로 [[관(장례)|벽관]]을 파서[* 그 당시 로마 카타콤에서는 사람의 시신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벽감을 파서 시신을 안장하고는 석판으로 봉인하였는데 과거 1970~80년대 한국어로는 이를 번역하면서 벽관이라고 했다. 한 구의 시신을 안장하는 벽관은 Loculi로 통칭했으며 두 명의 시신을 합장하는 벽관은 Bisomus, 가족이나 공동체를 단체로 안장하는 넓은 벽관은 Cubicula라고 했다.] 시체를 안치한 뒤 벽돌이나 석회로 밀폐했다. 공간이 약간 넓은 곳에서는 장례식을 치른 후 안치했다. 로마부근 언덕에만 해도 카타콤은 50여 개나 되며, 일단 현재 발굴만 된 카타콤의 총 거리는 872㎞나 된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Catacombs_of_Rome|영어 위키피디어 참조]] / [[http://www.chpress.net/column-detail.html?cate=column&c_id=97&id=16102|일부 참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린 곳으로 유명해서 기독교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기독교인들이 만든 것은 아니다.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은신처로 이용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은신하면서 이곳에서 프레스코화 등 최초의 기독교 미술이 생겨나기도 했다. [[익투스]]도 이때 함께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암구호]]로 물고기를 그려서 알아들으면 예배당에 들여보내주는 식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특이하게도 뼛가루가 남아 있어 흙에 반짝거리는 성분이 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가톨릭의 본거지 로마에 있는 가톨릭 유적이니만큼 인근 국가에서 대규모 성지순례 등을 와서 어마어마하게 붐빌 때도 있으니 주의하자. 16~18세기경 한창 성유물 붐이 있을 적엔 여기서 아무 해골과 뼈다귀를 추려다가 귀금속과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다음 "이 유해는 옛적 로마 순교자들이 묻혀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가져왔으니 성인의 유해일 것이다. 아님 말고" 식의 논리로 그럴듯한 성인 이름을 붙여서 성유물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여전히 유럽의 몇몇 성당에는 이런 식으로 치장된 유해가 남아있다.([[https://en.wikipedia.org/wiki/Catacomb_saints|영어 위키피디어 참조(유골사진 주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