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칸나다어 (문단 편집) === 고대 칸나다어 === 9–10세기 [[라슈트라쿠타 왕조]] 시대에 본격적인 문학어로서 고대 칸나다어가 정립되었다. 9세기 중반경에 성립된 칸나다어 문법서 《카위라자마르가》(Kavirājamārga, ಕವಿರಾಜಮಾರ್ಗ)가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칸나다어 서적으로, 고대 칸나다어의 규범이 되었다. 《카위자라마르가》는 당대 산스크리트 언어학 및 시학에 큰 영향을 받았고, 인도 언어학 전통을 따라 고대 칸나다어의 문법 외에도 음운론, 시학, 수사학 등을 함께 다루었다. 《카위라자마르가》 이후 10세기에 저술된 《찬돔부디》(Chandōmbudhi, ಛಂದೋಂಬುಧಿ)로 칸나다 고전 운율론이 정리되었다. 라슈트라쿠타 이전 [[찰루키아 왕조]] 시대인 7–8세기에도 칸나다어로 많은 시가 쓰이고 서적이 작성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당대 제지술의 미발달로 장기 보존이 어려운 [[패엽]] 등에 문서가 기록된 등의 이유로 오늘날 찰루키아 시대 칸나다어 서적은 후대 문헌에 발췌 인용된 일부 내용을 제외하면 모두 실전되었으며 찰루키아 시대나 그 이전[* 《카위라자마르가》에 따르면, 6세기 중반 서강가 왕조의 국왕 두르위니타(Durvinita)가 칸나다어 산문을 썼다고 하지만 이는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의 칸나다 문학은 추정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찰루키아와 라슈트라쿠타 시대에 칸나다 고전 문학의 기반이 형성되었으며, 뒤이은 [[호이살라 왕국]] 시대에도 고대 칸나다어 문학의 융성이 지속되었다. 라슈트라쿠타 시대 후기인 10세기에는 여러 산스크리트 고전 문학이 칸나다어로 번역·번안되며 칸나다 문학을 풍성하게 하였다. 특히 이 시대 팜파(Pampa, ಪಂಪ)가 《[[마하바라타]]》를 번안한 《위크라마르주나 위자야》(Vikramārjuna Vijaya, ವಿಕ್ರಮಾರ್ಜುನ ವಿಜಯ, '[[아르주나]]의 승리')가 칸나다 고전 서사시로 유명하며, 팜파를 비롯한 라슈트라쿠타 시대 시인들의 작품 및 문체는 이후 칸나다 문학의 모범이 되었다. 산스크리트 및 프라크리트의 영향을 문학 스타일에서 얼마나 인정할 것인가는 드라비다어권 대언어(타밀, 칸나다, 말라얄람, 텔루구) 모두에서 논쟁적인 주제인데, 대체로 타밀어가 가장 드라비다어 고유의 어휘와 스타일을 보존하는 편이고, 텔루구어와 말라얄람어는 외래 영향에 개방적인 편이며 칸나다어는 이 두 그룹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본다. 9세기 중반 라슈트라쿠타의 [[아모가와르샤 1세]]는 산스크리트 스타일(어휘, 통사 구성면에서)의 칸나다 문체를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했으나, 칸나다의 고유성을 살리는 통속 문학도 여전히 존재했고 향유자가 많았으므로 이 사건은 논쟁을 끝내기보다는 오히려 촉발하게 되었다. 한편 1112년 시인 나야세나는 "칸나다어를 산스크리트와 섞는 것은 깨끗한 버터와 기름을 뒤섞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펼치며 거의 순수한 칸나다어만 사용한 논설문을 썼다(불가피한 경우 극소수의 산스크리트 외래어를 쓰기는 했다). 1235년에는 시인 안다야가 비로소 순수 칸나다어로 장문의 문학 작품들을 써내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로써 순수 칸나다어 문학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이래로 산스크리트 스타일, 고유 칸나다 스타일, 혼합 스타일 모두 다양한 작가군을 보유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