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캄차카반도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북아시아의 역사)] 캄차카 반도의 역사는 거의 알아볼 수 없다. 기록이 별로 없기 때문. 일단 [[제정 러시아]] 때부턴 기록이 조금 있다. 러시아의 코사크 용병대장이었던 데즈뇨프와 알렉세예프가 [[북극해]]의 콜리마 강 하구로 출발했다가 길을 잃고 [[1648년]] 아나디르 강 근처 해안에서 난파당했다. [[1697년]] 이곳을 [[코사크]] 용병대장 아틀라소프는 120명을 이끌고[* [[러시아인]], [[유카기르]] 보조병사 각각 60명.] 아나디르스크 요새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향했는데 요새들을 건설하고 영토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식량을 징발 혹은 약탈당한 원주민들에 의해 반란과 전투가 빈번했었다 한다. 당시 이 지역을 탐사하던 [[코사크]] 일부가 이 지역에서 복무 혹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현지 원주민 여자들과 만나는 일이 많았는데, 이들은 캄차카 반도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3606692&cid=56762&categoryId=56762|캄차달인]]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티길 강에 도착하여 등산하다가 알네이 봉우리 밑에서 캄차카 강 계곡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였다. 참고로 클류체프스카야 화산도 이때 코사크 원정대가 먼저 봤다. [[1714년]] [[표트르 대제]]는 캄차카로부터 모피 수송이 지연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을 급히 오호츠크에 파견하여 배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이후 [[야쿠츠크]]에서 캄차카까지 가는데 두 가지의 길이 생겼다. 하나는 먼저 육로로 아나디르스크를 경유해 가다가 남쪽으로 육로나 수로를 이용해 캄차카까지 도달하는 방법, 두번째는 코략족의 영토를 피해 오호츠크에서 바로 캄차카까지 항해할 수 있는 정규 해상통로가 개설되었다. 특히 이곳은 러시아의 몇 없는 부동항이었기에 크림 전쟁 당시 이곳의 주요 도시인 페트로파블롭스크가 영프 연합군의 표적이 되어 공격당해 함락당한 적도 있었다. [[러시아 제국]]이 [[1867년]]에 [[알래스카 조약|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치울 때]], 이곳도 함께 팔아치우려고 했었지만 무산되었다. [[2020년]] 동부 해안에서 해앙생물들이 대량으로 폐사하고 [[서핑]]을 하러 바다에 들어간 사람의 [[각막]]이 손상될 정도로 심각한 해양 오염이 발생했다.[[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932702_32524.html|#]] 환경단체에서는 유독성 물질이 흘러들어간것으로 추정하나 [[러시아 정부]]에서는 독성 [[조류(수중생물)|조류]]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20102503150009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