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캐딜락 (문단 편집) === The standard of the world (1945 ~ 1973) === [[파일:1959년형 엘도라도 분홍색.jpg|width=500]] 이 시대의 캐딜락을 대표하는 차종은 [[캐딜락 엘도라도|엘도라도]]이다. 당시 [[아폴로 11호|인간을 다른 천체로 보낼 정도]]의 넘사벽의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엘도라도의 모델 변경 주기이다. 엘도라도는 1953년에 1세대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미국차들의 유행처럼) 1954년 바로 2세대가 출시되고 모델 주기가 길어봐야 4년 정도의 주기의 모델 변경 주기를 가졌다.[* 경영 분야에서 이러한 전략을 계획적 진부화라고 한다. 1955년에 나온 자동차 모델은 272개였지만, 1963년엔 429개로 늘었다. 이 중 GM은 1955년 85개 모델을 내놓았지만, 1963년엔 138개를 내놓았다. 역설적으로, 계획적 진부화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성능 경쟁력을 갉아먹어 이후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6129&cid=59017&categoryId=59017|#]] 이후 역사에서도 후술.] 특히 이때 GM을 이끌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인 할리 얼이 캐딜락의 디자인 전성기에 기여했고, 당대 야구계의 유명인사 랄프 카이너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높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1959년형 캐딜락 라인업은 [[임페리얼(자동차 제조사)|임페리얼]]의 1957년형 라인업에서 시작된 '포워드 룩'의 특징인 길고 낮으며, 넓은 차체와 대형 [[테일 핀]]을 주축으로 하는 디자인을 자신들만의 고유한 색으로 승화시켜 당대 최대 크기의 [[테일 핀]], 길면서도 낮고 넓은 차체, 분홍색 외장색상 선택사양이 잘 알려져 당대 [[미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가장 잘 알려진 캐딜락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파일:33K43Iaj5NWSP7476VJlpp0zyMY.jpg]] 1950년에는 캐딜락이 [[르망 24시]]에 참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담당자였던 브릭스 커닝햄(Briggs Cunningham)은 시리즈 61 쿠페를 바탕으로 제작된 차체에 캐딜락의 새로운 160마력 OHV 331ci V8 엔진을 탑재하여 참가했었는데 당시 섀시는 Frick-Tappett Motors가 [[포드]] 차량을 바탕으로 제작하여 Fordillac(포딜락)이라고 불렸다. 이 차를 보고 당시 프랑스인들이 Le Monstre라는 별칭을 붙여 유명해졌다.[* 하지만 당시 르망 24시 규정에 엔진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차를 레이스에서 불법으로 간주하여 참가가 불발될 뻔 했다. 그러나 브릭스는 멈추지 않고 쇼룸에서 전시되던 다른 시리즈 61 쿠페를 확보하여 다시 개발에 들어갔다. 규정에 따르면 엔진 교체는 허용되지 않지만 레이스 팀은 스톡 섀시의 차체를 수정할 수 있었기에 Briggs는 시리즈 61 쿠페 중 한대의 차체 라인을 조정하였다. 차체도 유선형으로 수정하며 Grumman Aircraft 항공사에 풍동 시험을 맡겨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가볍게 한 뒤 카뷰레터 매니폴드를 장착해 출력을 보탰고 당시 뮬산 직선 주로에서 130 mph를 기록했다.] 캐딜락의 Le Mans 1950은 당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캐딜락이 실제 스포츠카 레이스에 어울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 주행이었다. 결과적으로 르망 24시에서 순정 캐딜락이 10위, Le Monstre가 주행 실수로 모래밭에 빠져 순위를 잃어 11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더 이어서 1960년대에도 캐딜락은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특히 1965년 출시된 5세대 엘도라도는 현재의 Art & Science 디자인 랭귀지에까지 내려오는 캐딜락 디자인 헤리티지의 시작이 되는 기념비적 차종이며, 얼의 후임인 빌 미첼이 1960년대의 GM 및 캐딜락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크롬 도금의 비중을 대폭 줄여 그릴과 범퍼처럼 중요한 곳에 크롬 도금 사용을 집중시키는 등, 유럽 스타일을 일부 응용하면서도 미국적인 대범함을 결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에 힘입어 캐딜락은 1966년에 판매량 60%가 늘어난 약 19만 2천대를 팔 수 있었고, 1968년에는 20만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의 엘도라도는 [[FF(자동차)|세로배치 전륜구동]] 설계를 [[올즈모빌 토로나도]]에 이어 사용해 코드 L29 이례 최초의 전륜구동 미국차로 기록되었고, 나중엔 엔진 배기량도 8.2L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전성기 동안에는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트랜지스터 라디오(1957)와 '''세계 최초의 셀프 레벨링 에어 서스펜션'''(1957), '''세계 최초의 메모리시트'''(1957), '''밝기 자동 조절식 전조등'''(1953) 등의 수많은 전동 편의장비처럼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중저류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Dual-Reservoir Brake Master Cylinder)는 미국 법규에서 규정하기 6년 전인 1962년에 캐딜락에서 내놓았고, 자사의 "터보 하이드라매틱" 3단 자동변속기와 세계 최초의 '''완전자동 히터 및 에어컨''' 역시 캐딜락에서 선보였다. 당시 미국차의 특징이었던 [[테일 핀]] 역시 1948년에 프랭크 허쉬가 [[P-38 라이트닝]]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디자인을 할리 얼이 도입했고, 총알탄[* "다그마 범퍼"로도 알려져 있다.] 형상의 범퍼 가드도 캐딜락이 먼저 사용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차량이 채택하고 있는 '''곡면 유리'''도 캐딜락이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것이다.[* 다만 정면에 적용된 유리에만 해당된다. 측면에 적용된 곡면 유리의 경우 [[크라이슬러|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산하의 럭셔리 브랜드였던 [[임페리얼(자동차 제조사)|임페리얼]]이 1957년형 차량들에 적용한 것이 최초이다. 캐딜락이 측면 곡면 유리를 도입한 것은 1965년 부터였다.(캐딜락의 차량들은 1964년형까지 측면 유리가 평면이었다.)] 1965년식 플리트우드부터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열선시트'''도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최상급 모델에 한해서 [[메르세데스-벤츠|벤츠]], [[뷰익]], [[올즈모빌]]과 함께 '''자동차 에어백'''을 발 빠르게 도입하는 등 자동차의 안전이란 측면에 있어서도 앞서나갔다. 그러나, 이런 호황기를 누리고 있던 캐딜락에게는 '''1973년 [[오일 쇼크]]'''와 GM 내부의 회사문화 변화라는 마수가 다가오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