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커피 (문단 편집) === 중동으로의 전파와 집대성 === 커피는 [[이슬람]] 세력이 확장하면서 함께 [[전세계]]로 퍼졌다.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전파된 시기는 [[오스만 제국]] 때다. 먼저 [[에티오피아]]의 홍해 건너편 [[예멘]]에서 14-15세기 무렵 [[수피즘|수피]]들에게 지크르[* 불교의 염불 비슷하게 이슬람에서 특정 종교문구를 계속 암송하는 수행의 일종] 시의 졸음 방지 목적으로 쓰이며 도입되었다. 그리고 [[아덴]]의 수피 출신 무프티(이슬람 율법학자) 자말 앗 딘 무함마드 알 자부하니가 까흐와, 즉 커피가 [[할랄]]이라는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렸다. 이로써 예멘 일대에서 커피가 공인되었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15세기 말엽 예멘 북쪽의 이슬람 성지 [[메카]]로 전파된 커피는 예배를 드릴 때 졸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 커피콩을 먹은 [[염소]]들이 졸지 않는데서 착안했다고 한다]으로 음용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예배 때문에 커피가 사랑받은 것은 아니다. 이들이 사는 사막은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목민들이 소, 양이 뜯어 먹을 풀이 떨어져 이주하려고 하면, 해가 떠있을 때는 그늘 주변에 조용히 있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기약 없이 이동했다가 사막에 하루종일 해가 뜬 채 노출되면 제 아무리 사막에 적응한 유목민들도 버틸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이 천문학이 발달한 것이다. 밤에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 이동해 낮에 쉴 그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야간 이동을 위해서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천문학이 발달한 것.] 커피도 결국 유목민들의 야간이동을 위해서이다. 밤에 이동하려면 깨어 있어야 되니까. 그런 이유로 커피는 이슬람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생존을 위한 식품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16세기 무렵에는 [[모스크|이슬람 성원]]의 주변에 카흐베하네(kahvehane), 즉 커피하우스가 생겼는데, 알콜을 금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카흐베하네는 여러 의견이 오가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한편 카흐베하네가 반체제 세력의 회동 장소가 될 것으로 우려한 [[메카]]의 시장 감찰관 카이르 베이가 카흐베하네를 폐쇄하고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일명 '메카 사건') 이후 그는 주군인 [[이집트]]의 [[술탄]]에게 커피를 불순한 음료라면서 유통 금지를 의뢰하였는데 커피를 마셔본 술탄은 술이 금지된 이슬람 세계에서 유용한 대체음료가 될 수 있고, 각성작용이 경건함을 일깨운다며 오히려 커피를 장려했다. 한편 1510년엔 [[맘루크 왕조]]의 수도 [[카이로]]에도 [[예멘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카흐베하네가 생겨났다. 그리고 1517년 이집트를 정복한 오스만 술탄 [[셀림 1세]]는 [[이스탄불]]로 귀환하며 커피를 가져왔다. 다만 원산지에서 매우 멀었기에 커피는 희귀품이자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는데, 같은 해(1517) 커피의 중심지 예멘이 [[오스만 제국]]령이 된 후로[* [[오스만 제국]]의 정복 전에 [[포르투갈 제국|포르투갈]]에 맞서 [[인도양]]에 파견되었던 맘루크 함대가 예멘의 항구에서 커피 보급이 거절되자 약탈을 벌였고, 기세를 몰아 타히르 왕조를 무너뜨렸다. 당시 맘루크 군은 총포가 있었고 예멘엔 없었기에 정복은 수월히 이루어졌다. 한편 그로부터 불과 12일 후 오스만 제국군이 카이로에 입성하며 맘루크 조를 무너뜨렸다. 그러자 예멘의 맘루크 장교들이 오스만 측에 복속하며 예멘이 오스만령이 된 것이다. 한편 타히르 조의 잔당은 아덴에서 저항했는데 그마저 1538년 오스만 군에게 함락되었다.] 점차 수급량이 늘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하에 예멘의 커피 생산이 1544년 당국이 기존의 주요작물이전 마약성 식물 [[까트]] 재배를 제한하고 그 부지를 외화벌이에 유용한 [[커피나무]] 제배에 할당하며 크게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에 16세기 중반 무렵부터는 이스탄불의 서민들도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멘 중에서도 북부의 내륙 도시 자비드 일대의 바이트 알 파키프에서 주로 생산되던 커피는 예멘의 주요 항구였던 [[모카]]와 아덴 항을 통해 이슬람권 전역으로 유통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이름 '모카' (المخا / Mocha)는 커피에 관련해서 수많은 뜻이 담긴 단어가 되었고 한때 커피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였다. 다만 술, 돼지고기 등 음식과 기타 비종교적 사교 활동에 규제가 많은 [[이슬람]]의 특성상 커피의 보급이 항상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511년의 메카 사건을 시작으로 1534년 카이로에선 커피 반대파가 카흐베하네를 습격하였고 이스탄불의 보수적인 학자들이 [[카페]]와 커피를 비난하였다. 이슬람에선 쿠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를 근거로 사리 판단을 하는데, 무함마드 사후 등장한 신문물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통인 순나를 중시하는 학자들은 커피를 비드아, 즉 일탈로 보았고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술과 같다 하여 비난하였다. 한 마디로 '선지자께서 계셨다면 거부하셨을 것'이라는 주장. 그럼에도 16세기 말엽에 이르면 '커피의 합법성 옹호'와 같은 논문 등이 발표되는 등,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서 대중적이 되면서 결국 종교적 비판 또한 수그러들었다. 다만 커피 자체 대신 카흐베하네는 계속 탄압하였는데, 메카 사건과 마찬가지로 정치 공작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투쟁과는 무관하게 커피 문화는 서민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권 대부분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각지에 퍼져나갔다. 원래 이슬람권에서 커피가 알려진 시점은 서기 9~10세기 경이었다. 당시 아랍인/페르시아인들은 커피를 분춤(Bunchum)이라고 부르며, 약재로 사용하였다. 문제는 당시 [[알 라지]] 같은 무슬림 의학자들이 커피가 [[정력]]을 감퇴시킨다고 오해하였고,[[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752886/|#]] 이 때문에 커피를 따로 음료수로 만들어 마시는 문화는 수백년 후에야 유행하게 되었다. 당시 아랍인들이 커피가 정력을 감퇴시킨다는 식의 잘못된 상식이 없었다면 커피 음용 문화는 훨씬 더 빨리 확대되었을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