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컬투 (문단 편집) == 삼총사 시절 == [[1994년]] MBC 공채 개그맨 5기[* 그 외 동기는 [[김가연]], [[김철민(1967)|김철민]] 등이며, [[박명수]]가 바로 윗 기수다. 박명수, 김태균, 정찬우 모두 [[가수]]와 사업가 직함을 가지고 있고 [[라디오]] [[DJ]] 경험이 있다는 점이 정말 비슷하다.] 동기 관계인 김태균, 정찬우, 정성한[* 컬트삼총사 해체 이전부터 뮤지컬계에 상당히 관심을 나타내어 쇼비티(ShowBT)라는 공연 기획사의 대표를 맡았으며, 2012년부터는 호서예술전문학교의 교수를 맡고 있다. 해피투게더에서 밀한 바로는 결별 직후 뮤지컬에 투자했다가 30억의 빚을 졌고, 10년에 걸쳐 상환한 뒤엔 공연 사업은 접었다고 한다. ]이 3인조 [[개그]] 그룹을 결성하여 방송을 시작했다. 원래는 컬트 트리플이라고 했지만 컬트삼총사로 명의를 변경했다. 이 3명은 개그맨이 되기 전에는 아예 일면식도 없었다가 개그맨 시험 합격 이후에 처음 만난 사이였다. PD가 김태균과 정찬우에게 코너를 짜 오라고 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러 가는데 정성한이 "어디 가냐?"라고 불러 세웠다가 아이디어 회의하러 간다니까 끼워달라고 한 것으로 시작해서 팀을 결성했다고 한다. 그때 만든 코너가 <컬트 개그>. 개그를 짰는데 뭔가 좀 애매해서 "야 이거 컬트스러운데?" 라고 했던 것에서 그냥 코너 이름과 팀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컬트의 뜻을 물어보는 기자가 많아서 사전을 찾아서 뜻을 외우고 다녔다고(…). 참고로 <컬트 개그>는, 발단이 되는 상황 설정은 주어지되 그 후부터는 특별한 개연성 없이 말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는 방식의 코너였다. 개그의 템포나 리듬이 상당히 빨라서, 시청자들이 미처 이해를 하기도 전에 한 꼭지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케이스. 또한 대중 매체들이 [[스타크래프트]]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을 때 개그맨으로서는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 소재를 언급했다. 이때가 브루드 워 발매가 된 지 좀 지난 1999년경의 한 명절 특집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스탠딩 개그로 등장했을 때의 일.[* 참고로 이 쇼에서는 간혹 가수의 공연도 있었는데 이때 공연한 밴드 중 하나가 레드플러스였다.] 한편 이 팀은 코미디 팀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활동해서 컬트 트리플 명의로 정식으로 음반을 낸 적이 있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사랑은 야야야, 눈썹 어딨니 등의 곡으로 가수 활동을 했다. [[서울예술대학|서울예술전문대학]] 예음회 출신인 김태균의 음악적 역량이 풍부한 편.[* [[유튜브]]에서 이 때의 영상을 보면 영어로 된 댓글이 많은데, 정성한이 설립한 쇼비티가 필리핀에 지부를 냈고, 그 곳을 통해 데뷔한 SB19라는 필리핀 보이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얻으면서 SB19의 팬들에게도 정성한의 과거 활동이 알려졌기 때문. 필리핀 현지에서 정성한은 Tatang Robin으로 불린다.] 이후의 컬투의 입지로만 보면 짐작이 안 될 수도 있으나 컬트삼총사 당시에는 정성한이 진행 능력, 입담, 순발력 등 여러 면에서 가장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다. 정성한은 삼총사 중 유일하게 4년제 대학교 출신[* [[국민대학교]] 기계공학과 중퇴.]인데 대학 시절에 [[학생운동]] 경력이 있다. 정성한이 대학을 다니던 시기는 운동권의 마지막 리즈 시대로 꼽히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태우 정부]]에 저항하려는 시위와 집회가 매우 잦았는데, 당시의 여러 집회에서 문화행사 사회를 전담하면서 내공을 키웠다고 한다. TV 출연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자신의 학생운동 경험을 방송에서 과감하게 드러내곤 했다.[* 예컨대 [[진실게임(예능)|진실게임]] 2003년 1월 3일 방송 [[https://programs.sbs.co.kr/enter/truthgame/vod/62996/22000301080|25분 6초부터]].] 게다가 컬트삼총사가 결성되기 전부터 강호동과 같이 한 옴니버스형 시트콤 소나기를 통해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도 랩만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센터로서 활약했다. 그러나 콩트 공연에서는 정찬우와 김태균이 결정타를 날려 빵 터뜨리고 정성한은 항상 진행하고 받쳐주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본업인 개그에선 항상 둘을 받치는 역할만 맡다 보니 불만과 열등감이 계속해서 쌓인 상태였고, 결국 공연 중에 다른 둘과 상의 없이 단독 개그를 선보여 파국이 되어 버렸다. 정성한의 출중한 진행 능력이 되레 본인에게는 큰 독이 된 듯하다. --[[유상무]]의 선배-- 컬트삼총사 시절에 미국에서 교민들 상대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CULT라는 공연명을 보고는 경찰들이 양 피 뿌리고 그러는 컬트 종교 집회 같은 것인줄 알고 사고 방지를 위해 몰려왔다가 공연 내용을 보고 대부분 돌아갔다고 한다(…). EBS의 초등학생 퀴즈 대결 프로그램이었던 [[퀴즈 천하통일]]의 초기 MC를 맡았다.[[http://ko.wikipedia.org/wiki/%ED%80%B4%EC%A6%88_%EC%B2%9C%ED%95%98%ED%86%B5%EC%9D%BC|위키백과]] 또한 은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많이 출연했다.[* 100회 특집과 크리마스 특집에도 출연했다.] --이때 [[이소라(가수)|이소라]]를 빵 터지게 한 적이 몇 번 있다.-- 1995년 12월 10일에 [[장학퀴즈]]에 [[https://www.youtube.com/watch?v=upgl1MUJ2HE|출연]]해 문제를 낸 적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