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케이드 (문단 편집) === 미국독립혁명 === 미국 독립혁명 당시 식민지 민병대가 주축이 된 대륙군은 여건상 통일된 제복을 갖추기 어려웠다. 1775년 여름, 대륙군 사령관인 조지 워싱턴은 해결책으로 코케이드 색상으로 부족한 군복이나 계급장을 대체하기로 했다. 영관급 장교는 적색 또는 분홍색 코케이드를, 대위는 황색 또는 담황색을 소위 및 중위는 녹색의 코케이드를 모자에 부착할 것을 명령했다.[* 사실상 자율적 복장규정이라 철저히 준수되지는 않았다.] 특기할만한 점은 대륙군은 독립선언문을 결의하기 이전까지 심지어는 1777-8년까지도 --세금 때리는 영국의회가 나쁜 놈들이지-- 영국 국왕인 조지 3세의 신민이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정작 조지 3세가 식민지 문제에 강경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워싱턴이 계급별 복장 수칙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하노버 왕가의 흑색 코케이드가 널리 사용되었고, 복장 수칙 제정 이후에도 얼마지나지 않아 대부분이 흑색 코케이드를 계속 사용했다.--총사령관 명령도 쌩까는 대륙군의 패기-- ||[[파일:george-washington-samuel-king.jpg|width=100%]]||[[파일:cocade1-1.jpg|width=100%]]|| ||<-2> 독립 전쟁기 대륙군의 'Alliance cockade' || 한편 1778년 프랑스가 미국의 동맹으로 독립전쟁에 개입하고 이듬해인 1779년에는 프랑스 왕국 육군이 미 본토에 상륙했다. 프랑스군의 협력에 대한 우호의 표시로 대륙군은 기존의 흑색 코케이드에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백색 코케이드를 합쳐서 흑백 코케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륙군의 흑백 코케이드는 소위 'Alliance cockade'라 불렸고 독립전쟁에 참여한 프랑스 병사들도 흑백 코케이드를 사용하기도 했다. 대륙군의 흑백 코케이드는 독립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독립전쟁의 상징으로 남아 민간사회에서도 널리 사용되었고 1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남북전쟁 시기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