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야 (문단 편집) ==== [[카라만 왕조]] ==== 이후 카이카우스 2세의 다른 아들 메수트 2세가 옹립되었는데, 일 칸국은 카이쿠스라우 3세의 아들들을 콘야에 봉하며 룸 셀주크를 양분시켰다. 이에 1286년 메수트 2세가 콘야를 점령하고 그들을 처형하며 재통합하였고, 이후 일 칸국에 복속하여 관계를 회복하였다. 다만 1308년 메수트 2세가 사망한 후 카라만 왕조의 바헤레딘 마흐무트 베이가 콘야를 점령하며 룸 셀주크는 멸망하였고, 그는 차남 야흐쉬를 콘야 총독에 봉하였다. 1312년 후일 [[추판 왕조]]를 세우는 몽골 장수 초반이 콘야를 점령하였다. 그러다 1360년경 세이페딘 쉴레이만 베이가 재차 콘야를 점령하여 [[카라만]]을 대신 수도로 삼았고, 이후 카라만 군주들은 메블라나 영묘에 매장되었다.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이 성장하자 카라만 조의 알레에딘 알리 베이는 주변의 제후들과 연합하에 그에 맞섰고, 1389년 [[코소보 전투]] 시에 오스만 조의 후방을 공격하였다. 따라서 신임 술탄 [[바예지트 1세]]는 1390년 콘야를 포위하였다. 비록 주변 국가들의 압력에 바예지트 1세는 현상 유지의 휴전을 맺고 철수했지만 알리 베이가 [[티무르]]와 동맹을 맺고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 당시 재차 오스만 조의 후방을 공격하자 대군을 모아 남하하였다. 알리 베이는 뒤늦게 휴전을 제안했지만 거부되었고, 1397-98년의 공성전 끝에 콘야는 함락되었다. 알리 베이는 처형되고 항복한 그의 두 아들들은 [[부르사]]에 감금되며 카라만 조는 일시 멸망하였다. 다만 오스만 조의 콘야 지배는 4년에 그쳤고, 1402년 [[앙카라 전투]] 이후 티무르에 의해 카라만 조가 복구되었다. 15세기 중반, 국력을 회복한 이브라힘 베이는 [[킬리키아]]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전통적인 동맹 맘루크 조와의 전쟁이 벌어졌고, 1457년 맘루크-[[라마잔 왕조]] 연합군이 콘야와 카이세리를 포위하였다. 전투 끝에 이브라힘 베이는 1458년 이집트로 사절을 보내 휴전을 맺고 킬리키아를 반환하였다. 1464년에는 이브라힘 베이의 아들이자 [[실리프케]] 총독 이샤크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샤크는 콘야를 장악, 베이로 즉위하였고 이브라힘 베이는 도주하여 객사하였다. 다만 동생 피르 아흐메트가 [[메흐메트 2세]]의 지원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이샤크 베이는 [[우준 하산]]의 도움으로 맞섰지만 1465년 결국 전자가 승리하였다. 하지만 피르 아흐메트가 약속한 대로 오스만 측에 넘겨줬던 영토를 메흐메트 2세의 원정을 틈타 재점령하자 분노한 술탄은 1466년 남하하여 콘야와 카라만을 점령하고 일대를 병합하였다. 1471년 오스만 군이 실리프케 등 남은 해안 영토까지 점령하자 피르 아흐메트와 동생 카슴은 우주 하산에 의탁하였고, 이듬해 후자의 아나톨리아 원정 당시 콘야를 수복하였다. 하지만 1473년 오틀루크벨리 전투에서 우준 하산이 패배하자 피르 아흐메트는 부흥 운동을 포기하였고, 카슴만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움으로 해안을 수복했으나 1475년 완전히 축출되었다. 정복 직후인 1474년 메흐메트 2세의 차남 젬이 콘야 산작베이 (총독)으로 봉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