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콜로세움 (문단 편집) == 활용 == [[파일:콜로세움복원도1.jpg]] 예로부터 가장 재밌는 3대 구경이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투기장은 그 세 가지 구경거리를 충족시켜 주는 장소였다. 특히 로마의 [[정치인]]들은 [[빵과 서커스]]로 국민들의 불만을 억제하려 했기 때문에 콜로세움의 운영은 정치인들에게도 꽤 중요한 일이었다. 수용 규모에 대해서는 입석의 형태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5만은 상회하고 최대 8만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결과. 매우 효율적으로 지어져, 각층, 각 섹션별로 현대의 경기장마냥 입, 퇴장 게이트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자신이 어느 구역에 있느냐에 따라 그 게이트를 이용하면 대규모 인원이 관람함에도 불구하고 크게 붐비지 않고 입장, 퇴장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땡볕이 심한 낮에 경기가 벌어질 때는 후술하듯이 콜로세움의 천장에 미세노에서 파견 나온 [[해군]] [[수병]]들이 범포를 덮어서 그늘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내벽 가장 위층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것들을 일종의 와이어(밧줄)로 연결해 접어놓은 천으로 덮었다. [[파일:4C99FDC7000-35_15271943746273.jpg]] 요즘으로 말하면 [[3S 정책]]과 유사한 것이기 때문에, 입장료가 없는 건 물론이고 관객들을 위한 점심 도시락과 포도주까지 공짜였다.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는 대결을 하기도 하고 [[바바리사자]], [[카스피호랑이]], [[아틀라스불곰]], [[유라시아불곰]], 코끼리, 하마, 코뿔소 등 같은 [[VS놀이|맹수들을 싸움에 붙이거나]] 심지어는 검투사들이나 사형수들이 맹수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 대 황소의 투우 경기 또는 경기장에 물을 채워서 가상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항상 치고 박는 싸움만 한 건 아니었고,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거나 하는 등 현대의 [[서커스]]와 같은 공연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코끼리를 훈련시켜 코끼리가 걸어가다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한다거나...] 코끼리, 호랑이, 악어, 하마, 기린, 코뿔소 등등 로마 시민들이 평소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 콜로세움 안을 한 바퀴 돌아 행진하는 [[사파리]] 같은 공연도 있었다. 다만 [[기독교]] 신자들을 묶어놓고 맹수를 풀어 사형집행을 하는 행사도 있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는 경악할 내용이지만, 볼거리로 제공되는 이른바 '수간 쇼' 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미소녀]] 혹은 [[미소년]]들이 관중들 앞에서 동물들과 [[수간]]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리스 문화[* 수간을 종교적인 행위로까지 인식하였다.]의 영향을 받은 고대 로마에서의 문화는 여성들이 성적인 목적으로 뱀을 애완동물로 길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을 정도였다.[* 수간이 유럽에서 죄악시된 건 기독교가 압도적인 지배적 위치를 가진 중세 무렵이다.] 물론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검투를 보고 환호하던 로마인들이었기에 아마 지금으로 치면 스트립쇼 같은 개념이었을 수도 있다. 맹수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물들을 어느 정도 길들이고 조련할 사람이 필요했다. 개중에 가장 유명하고 능력이 좋았던 인물은 로마 역사상 최고의 베스티아리[* 동물과 싸우는 사람을 "베스티아리(Bestiarii)"라고 불렀다. 사실 엄밀히 말해 글래디에이터는 사람과 싸우는 직종만을 가리키므로 베스티아리는 글래디에이터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들은 대개 수입해온 흔치 않은 동물들과 싸웠다. 제국 각지에서 잡아오기도 했고, 심지어는 카스피호랑이, 코뿔소, 시리아코끼리, 아틀라스불곰, 유라시아불곰, 아시아사자 같은 희귀한 맹수들도 잡아 왔다. 모두 위험한 맹수들이기에 이들은 활과 창, 횃불, 갑주 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스코틀랜드산 사냥개들을 대동한 채 맹수들과 대결했다. 대개 베스티아리가 유리하지만 동물이 이길 확률도 약간 있었다. 이 때문인지 관중들은 짐승을 죽이는 장면 못지않게 베스티아리가 죽는 장면을 보고 싶어했다고 한다.]로 꼽히는 카포포루스(Carpophorus)였다. 카포포루스는 기원후 1세기 경의 인물로 원래는 가난한 하층민 계급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경기장에서 불타는 짚단 한 움큼으로 곰을 물리친 걸로 유명세를 얻었고, 이후 타고난 재능으로 사자, 여우, 코끼리, 표범 등 사나운 동물들과 맞서 싸우는 법을 익혔다. 카포포루스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맨손으로 야수들의 목을 꺾어 죽일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심지어 한 경기에서 20마리가 넘는 맹수들을 무기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싸그리 죽여버렸다는 말도 있었다. 카포포루스의 인기는 엄청나서 시인 마르티알리스가 그를 찬양하는 시를 써주기까지 했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그가 경기장에 떴다하면 25만 석의 경기석이 꽉꽉 들어찼다. >[[파시파에]]가 황소와 접했던 일을 오늘에야 보았노라! 우리가 그 것을 오늘에야 보았노라! 고대의 전설이 사실로 드러났노라. 전설이 무엇을 노래하든,[* [[파시파에]]는 [[미노스]] 왕의 왕비였다. 하지만 파시파에는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하얀 황소를 사랑하게 되었고, 장인 [[다이달로스]]를 시켜 나무로 된 암소의 형상을 만들도록 했다. 형상이 완성되자 그 안으로 들어가 발굽에 치이거나 깔려죽을 걱정 없이 황소와 마음껏 사랑을 나누었다. 이 사랑의 부산물이 반은 사람 반은 황소의 모습을 갖춘 괴물 미노타우로스였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네로]]는 이 전설을 실제로 경기장에서 공연하도록 했다. 여성을 암소 모습의 특수 제작 틀 안에 집어넣고 황소가 덮치게 했다고.] 이 경기장이 그 것을 보여줄 것이라. >---- >시인 마르티알리스의 글. 카포포루스는 타의추종을 불가하는 동물 조련 능력, 그리고 싸움 능력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또다른 쪽으로도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바로 '''동물들이 인간을 수간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 사실 함성이 빗발치고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한 경기장 한복판에서 극도의 흥분과 공포 상태에 싸여있는 동물이 인간을 덮치도록 만든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동물들에게 성적 흥분을 교묘하게 불러일으키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최적의 상태로 흥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워낙 까다로운 작업이라 콜로세움에서조차 이런 쇼가 벌어지는 건 상당히 힘들었는데, 이걸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카포포루스였다. 카포포루스는 [[사자]], [[멧돼지]], [[얼룩말]], [[종마]] 등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을 덮치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동물이 종 자체가 다른 인간을 처음부터 교미 상대로 생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카포포루스는 일부러 암컷의 페로몬이나 냄새를 경기장에 들어갈 여성들에게 묻히는 편법을 썼다. 일부러 발정기에 다다른 암컷에게서 냄새나 향을 채취한 다음, 그걸 여자들에게 묻힌 뒤 오랫동안 교미하지 않은 수컷 동물들과 함께 경기장에 들여보내는 방법이었다. [[수간]]을 하기도 전에 여자를 죽여버리면 곤란하니 일부러 소음에도 놀라지 않고 상대적으로 온순한 수컷들을 썼다. 관중석 아래에서 여자가 거적떼기를 뒤집어쓰고 웅크린 채로 있으면 동물이 여성을 덮치는 방법이었다.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이 수간 쇼에 동원되었는데 개중에서 [[황소]]나 [[기린]] 같은 거대한 동물들과 짝지어진 여성들은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동물들이 교미 도중 지나치게 흥분해 발톱을 여자의 목에 박아넣는 경우도 있었고 지나치게 격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아예 여성의 [[척추]]가 부서지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개]]와 짝지어진 여성은 평생 쓸 운을 그 한 방에 다 썼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행운아였다. 하지만 이 끔찍한 쇼에 지원하면 돈을 지급했던 터라 스스로 자원하는 빈곤층이나 노숙자 여성들이 많아 여성의 수요는 딱히 부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카포포루스가 주최한 첫 수간 쇼의 희생자는 5명의 남성을 [[독살]]해 죽인 여성이었다. 그 죄로 전 군중이 보는 앞에서 수당나귀에게 강간당했는데, 군중들이 그걸 보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열기가 엄청났다는 후문이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경악할 만한 내용이지만, 잘 생각해보자. 만약 고대 로마인이 현대인만큼 수간을 죄악시하고 역겨워했다면, 이런 '수간 쇼'는 충격 받은 관중들에게 호응은커녕 야유와 지탄을 받고 없어졌을 확률이 높다. 애초에 사람들끼리 죽이는 걸 보면서 박수치는 관중들인데, 이런 건 팝콘거리였을 것이다.] 여자가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하자 결국 야생동물들을 풀어 여자의 고통을 끝내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 [[침팬지]]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다음 말뚝에 묶여있는 소녀들을 강간하게 만드는 쇼도 있었다. 여자만 수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도 수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남성 죄수들을 수탕나귀에게 수간당하도록 한 뒤 그 앞에 [[표범]]을 풀어버리는 등 상당히 끔찍한 처형 방법들을 쓰기도 했다. 반대로 죄수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암염소와 죄수들을 수간시키기도 했다. 수간이라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사티로스]]로 분장한 남자들이 경기장에서 어린 미소년들을 덮치도록 하는 행사도 있었다.[* 로마인들은 하반신은 염소,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인 신화속의 동물 [[사티로스]]가 성욕이 왕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동성애]]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적 기질이 있었던 로마인들이 일부러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그당시에는 나름 보기힘든 특급 행사였다고. 현대인들이 생각하면 수간 자체가 완전히 미친 짓이지만 색다른 유희를 즐겼던 로마인들에게는 그저 한낱 오락거리일 뿐이었다. 수간 쇼가 로마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도 있었다. 주신 [[제우스]]는 여러 동물들의 형상을 하고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이걸 재현하겠답시고 수간 쇼를 공공연하게 보여줬던 것이다. 행사 주최자들은 이 수간 행사가 단순한 여흥거리일 뿐만 아니라 제우스를 경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포장해서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당연히 군중들은 열광했고 수간 쇼는 고대 로마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행사들 중 하나였다. 카포포루스의 맹수들이 항상 수간이나 성적 용도로 사용되는 건 아니었다. 수간보다는 맹수들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찢어죽이는 게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행사였다. 그 잔인함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들이 경기장에 끌려가는 게 싫어 화장실 스펀지[* 고대 로마에서는 해면 비슷한 걸로 만든 스펀지를 막대기에 달아 물을 묻혀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닦았다. 일종의 휴지 대용품이었던 셈.]를 목구멍에 찔러넣어 자살하거나 바퀴살 사이에 고개를 집어넣어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세네카]]는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오히려 '''이 죄수가 경기장에서 죽었다면 얼마나 명예로운 죽음이었을까!'''하고 한탄했다.] 하지만 죄수들의 고통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던 카포포루스는 일부러 맹수들이 사람을 공격하고 피 냄새를 좋아하도록 훈련시키는데 공을 들였다. 아래는 당시 카포포루스가 맹수를 조련하는 법에 대하여 남긴 글들 중 하나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본능을 직접 자극하지 않는 한 동물이 사람을 잡아먹도록 훈련시키는 건 놀랍도록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인간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 새끼 시절부터 훈련을 시켜야만 합니다. 고양잇과 맹수의 본능을 발현해야만 합니다. 맹수가 무해한 어린 새끼에 불과할지라도 노예들에게 그 앞에서는 일부러 겁먹은 척하라고 하십시오. 새끼 맹수가 한 번 툭쳐도 엄청나게 아파하는 것처럼 연기하라고 하십시오. 노예들을 생고기로 덮어, 사람을 공격할 때마다 즉각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게 하십시오. > >맹수가 자라나면 살아있는 노예들을 먹이로 주십시오. 이때 노예의 팔을 부러뜨리고 이빨을 모조리 뽑아 절대 맹수를 해칠 수 없도록 하십시오. 명심하십시오. 맹수는 언제나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합니다. 맹수가 자신감을 기를 수 있도록 어린아이, 여자 순서로 살아있는 노예들을 먹이로 던져 주십시오. 노예들에게 칼을 쥐어주고 공격할 지점을 알려주되, 노예가 이길 것 같으면 당장에 쳐죽이십시오. 절대로 노예가 이기게 두어서는 안됩니다. >---- >카포포루스(Carpophorus)의 맹수 조련법. AD 1세기 경. 맹수들을 이용한 행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정교해졌다. 군중들이 더 자극적이고 더 새로운 쇼를 원했기에 베스티아리와 검투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새로운 죄수 고문 방법들을 개발해냈기 때문이었다. 행사 주최자들은 죄수들에게 [[희망고문|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경기장에 정교하게 만든 구조물과 미로 따위를 만들어놨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에 구조물이 무너지게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있던 죄수들이 맹수들 사이로 떨어져 죽게 만들었다. 죄수들이 경기장 밖으로 살아나갈 가능성은 애초부터 아예 없었다. 죄수들은 상자에 묶이고, 말뚝에 묶이고,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맹수들에게 갈갈이 찢겨나갔다. 그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는 군중들은 어떤 죄수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을지 돈을 걸며 내기했다. [[파일:6234234234.jpg]] 해전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고대 기록에 남겨져 있는데, 정말로 이루어졌느냐에 대해서 그동안 현대 학자들이 의문을 표했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어떻게 물을 채우고 수밀 구조를 유지했을지와, 물을 채워서 전함을 띄워 돌아다닐 만한 공간이 되기는 하느냐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모의 해전은 로마 시내의 대형 저수 시설에서 시행했다는 설이 이 설의 다수설이다. 실제로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지은, 모의해전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대 저수지도 있다. 물론 평상시에는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였고 특별한 경우에만 모의 해전장으로 사용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특별한 경우라고 해도 아우구스투스의 그 긴 치세에도 모의 해전은 한 번밖에 없었다. 그냥 '저수지'보다는 '모의 해전장'이 간지 나서 그렇게 붙여 놓은 것 뿐이다. [[파일:R2773.jpg]] 연구에 따르면 콜로세움 내부의 석재 구조물은 [[도미티아누스]]가 확장공사를 할 때 세워졌었고, [[티투스]] 당대엔 나무 판자와 기둥으로 임시 무대를 설치하는 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위 사진은 좀 과장되었지만 무대를 치우고 물을 채우는 식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콜로세움에서는 신화나 전설, 역사적인 사건들을 재연하는 공연도 펼쳐졌다. 구체적인 예로는 자신을 화장하는 장작더미 위에 '''산 채로 타 죽은''' [[헤라클레스]],[* 참고로 불에 타 죽기전에 히드라의 독에 의해 옷이 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자신의 살까지 함께 뜯어내 버리는 장면'''도 있다.] 리라를 연주하다 술 취한 여인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은''' [[오르페우스]], 로마 초기에 '''자신의 팔을 태워서''' 로마에 충성심을 보인 전설적인 영웅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도시국가 시절의 로마를 침략한 적국의 왕 포르센나를 암살하려다 사로잡히자 포르센나의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오른손을 집어넣고 손이 다 타버릴 때까지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버텨 로마인의 용기를 증명해 보였다는 애국자.]의 이야기 등이었는데, 모두 분장한 노예들이 '''완벽하게''' 그들의 운명을 재연해 냈다고 한다.[* 유명한 영화인 [[글래디에이터(영화)|글래디에이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검투사 노예들과 [[로마군]]을 섭외하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한니발]]의 [[자마 전투]]를 재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여기선 막시무스의 주인공 보정으로 로마군이 끔살. 근데 무장 상태를 보면 막시무스와 동료 검투사들이 [[글라디우스]], [[필룸]], [[스쿠툼]] 등 로마군의 표준 무장을 했고 로마군이라고 나온 패거리는 [[채리엇]]을 타고 활을 쏘는 등 전혀 로마군답지 않다... ] 또한 크레타 왕비 파시파에(미노타우르스를 낳은 여성) 역을 맡은 여자 죄수가 황소에게 수간을 당하고, 다이달로스 역을 맡은 남자 죄수가 날개를 잃고 경기장 바닥에 추락해 온몸이 뭉개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출처 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p300-302.] 이러한 공연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16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도''' 관람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네로의 교회 탄압 당시에도 크리스천들을 콜로세움 한 가운데에 묶어놓고(세워놓고) 사자를 풀어놓아 뜯어먹히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네로 시절에는 콜로세움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 네로가 죽은 뒤 내전을 거쳐 황제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가 시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네로가 세운 개인 궁전터에 짓기 시작한 것이 콜로세움이고, [[티투스]] 황제를 거쳐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에 개장했다. 한편 중세 시대에 콜로세움의 공간을 이용해서 민가로 불하하기도 했고, 이탈리아의 프란지파니 가문은 콜로세움을 사들여서 요새화해 성채로 삼기도 했다. 바위를 빼다가 건축자재로 써버리는 일도 잦았다. 순교자가 생긴 장소에 대해 보여 주는 기독교적 숭배와는 영 딴판인 취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건 콜로세움만이 아니라 로마가 유지되던 시대의 건축물 중 현재까지 원래모습인 건축물은 [[판테온]]뿐이다. 다른 건축물은 모두 석재공급장 취급을 받았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의 포로 로마노와 비교하면 성지지정 때문에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한 편이라는 주장도 있다.] 콜로세움이 종교적 성소로 여겨지게 된 것은 1749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콜로세움을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가 난 성소[* 로마가 교회를 탄압하면서 초기 신자들을 사자에게 물어죽이게 한 장소.]라고 선포하면서였다. 하지만 남아있는 구체적인 기록은 네로 황제 때 타키투스의 기록인데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이 시기에 콜로세움은 지어지지도 않았다. 거기에 16세기 이전에 기독교 기록을 뒤져봐도 그런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갑자기 베네딕트 14세가 이런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 [[C.M.B. 박물관 사건목록]] 4권에서는. 베니틱토 14세가 콜로세움 지하에 묻혀 있는 제2신전의 유물의 존재를 알아채곤, 유적 훼손으로 그 존재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순교지로 지정했단 가설을 내세운다.] 물론 죄인들을 이용해 콜로세움에서 베스티아리를 한 것은 사실이다. [* 콜로세움이 없었을 때에도 수용인원이 5배가 되는 대경기장이 있었다. 로마가 제국이 되기 전 공화정이었을 때부터 범죄자들의 처형을 이런 식으로 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2대황제 [[티베리우스]] 때부터 산적, 도적의 수괴를 기둥에 묶어두고 사자에게 잡아먹히게 했다고....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도 콜로세움에서가 아닌 다른 경기장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네로 황제 당시에는 콜로세움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파일:4C99FDC700000578-0-image-a-35_15271943746273.jpg]] 그러나 역사적 신빙성이 낮다는 것은, "'''네로'''가 콜로세움에서 박해하였다"는 명제에 관한 것이다. '''로마가 원형경기장에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것은 엄연히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상기했듯 콜로세움은 도미티아누스 시기에 정식으로 개장했는데, 도미티아누스는 네로 이상으로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탄압한 황제였다. >이 놀라운 행위(순교)는 어느 로마 도시에서나 가장 중요한 공공장소 가운데 하나에서 아주 암울하게 진행되었다. 순교는 원형경기장의 구경거리라는, 로마인들의 생활을 특징짓는 폭력과 질서가 복잡하게 뒤얽히는 축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기독교도들의 순교가 유혈이 낭자한 구경거리였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177년 리옹에서 한 무리의 기독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군중은 기독교도들이 고문대에서 찢기고, 철판 의자에서 그을려지고, 황소 뿔에 받히고, 굶주린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며 갈채를 보냈다. 원형경기장에 질서 있게 앉은 잘 차려입은 군중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도들을 사자에게 던져주는 행위는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로마 다수파의 권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 >Christopher Kelly,[* 케임브리지 대학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교수. 로마 제국사(고대 말기) 전공.] 「The Roman Empire」 '''즉 콜로세움에서의 기독교 박해는 주체가 네로가 아니었다 뿐이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다.''' 베네딕트 14세가 콜로세움을 성소로 삼은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반영한 듯, 오늘날에는 [[가톨릭]]의 의례 장소로도 사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년 [[파스카 성삼일]] 중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열리는 [[십자가의 길]] 행사로, [[교황]]이 순례자 행렬을 이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