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콜롬비아 (문단 편집) == 역사 == 아랫나라 [[페루]]에서 기원한 [[잉카 제국]]에게 인지도가 묻히지만 콜롬비아 중남부 지역 역시 꽤 발전돼 있어서 화려한 [[황금]] 세공 유물들을 남긴 타이로나 문명과 무이스카 문명이 존재했으며 북부 지방에서는 범 [[카리브족]]에 속하는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 종족들이 거주해왔고 15세기 중후반 들어서 잉카 제국이 세를 떨치면서 남서부 지역은 [[잉카 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1508년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정복]]이 시작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여 저항동력이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베로 아메리카를 넷으로 쪼개 지배하던 스페인에 있어서 주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어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副王領)'으로 불리던 식민거점지역이었다.[* [[부왕]](副王, Viceroy)은 본국 군주를 대신하여 한 지역을 통치하는 직책으로 다른 나라의 [[총독]]에 해당한다. 그런데 [[부왕]]을 [[총독]]과 같은 지역 통치자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이해하긴 참 좋지만, 좀 다르다. 업무 내용은 비슷한데 부왕이 총독보다 더 높은 직급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실제로 스페인의 경우도 4개 부왕령보다 조금 격이 낮은 식민지(예를 들어, 칠레)의 지방관은 총독이라고 불렀다.] 스페인의 지배 당시에 [[스페인인]]들이 많이 이주 및 정착했다. 이중 [[바스크]] 출신들이 많았다. 19세기 독립 전 라틴아메리카는 누에바 그라나다와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 일대), [[페루]], 라 플라타([[아르헨티나]]) 부왕령 4곳으로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10년]] 들어 [[나폴레옹]]의 [[나폴레옹 전쟁|침략]]으로 스페인 본국이 뒤흔들리자 [[시몬 볼리바르]]의 [[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 전쟁|무장봉기]]가 발생, 그의 지도 아래 [[베네수엘라 독립 전쟁|독립]]을 [[누에바그라나다 독립 전투|쟁취한다]]. [[시몬 볼리바르]]는 콜롬비아 초대 대통령직에 올랐으며, [[1819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와 함께 [[그란 콜롬비아]] 연방을 구성했다. 하지만 [[1830년]]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의 통치를 거부하며 독립을 선포하여 독립하는 바람에 대콜롬비아 연방이 무너지면서 [[시몬 볼리바르]]의 통일국가에 대한 꿈은 꿈으로 끝났고, 다양한 시도 끝에 [[1886년]] 공화국을 선언, [[1903년]]에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파나마]]에 대한 국제적 [[외교]] 전략에 의하여 콜롬비아는 [[파나마]]를 상실하였고[* 미국이 헐값에 [[파나마 운하 지대]]를 매수하려고 한 것을 콜롬비아가 거부하자 [[파나마]] 분리주의를 후원하여 [[파나마]]를 분리 독립시켜버렸다. 파나마에는 현재까지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가 미국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파나마를 상실한 이후에는 [[브라질]]과 [[페루]]에게 남부 아마존 밀림 지대의 영토들을 각각 할양하면서 현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일전쟁]]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서 좌우파 분쟁은 더더욱 심해져 우익 [[콜롬비아 보수당]]과 좌익 [[콜롬비아 자유당]]은 원수처럼 싸워댔다. 1946년 집권 자유당 정부가 온건파, 급진파로 분열되면서 보수당에게 정권을 넘긴 이후, 자유당 급진파의 지도자격 정치인인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이 암살 당하고 자유당 내 급진주의 세력이 봉기하였으며, 이를 구실삼아 보수당이 자유당 온건파까지 싸잡아 탄압하면서 양당 간의 군사적 충돌이 가시화되며,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라 비올렌시아(La Violencia)라 불리는 대규모 분쟁과 폭력사태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라 비올렌시아의 기간을 1925년까지 올려보는 견해가 있다. 보수당 치하의 정권이 대공황 등의 여파로 인해 자유당에게로 정권이 넘어간 이후 보수당을 탄압하는 모양새가 위의 내용의 정반대꼴 모습이였기 때문. 보수당 정권에서의 자유당 탄압이 이전의 탄압 속에서 생긴 원한에서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일부 연구가 지적하고 있다.] 콜롬비아 전국에서 18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국은 콜롬비아에서 좌익의 발호를 원치 않았기에 우익 정부를 적극 지지했다. 결국 나라의 혼란이 심해지자 군부, 자유당과 보수당 온건파들이 일어나 강경 극우파 대통령인 보수당의 라우레아노 고메스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고 군사정권 아래 통합시킴과 함께 일시적으로 내전을 소강상태로 만들었다. 한 차례 더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군부는 문민정권에게 권력을 넘겼고 이후 양당은 화의를 통해 국민전선을 만들고 양당이 교대로 정권을 담당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경제난과 정정불안은 결국 좌파던 우파던 모두 무장봉기를 준비하게 했다. 결국 1964년 콜롬비아 분쟁이 폭발했다. 좌파는 [[FARC]]와 국민해방군(ELN) 같은 [[게릴라]] 조직을 만들어 봉기하고 우파는 무장 [[준군사조직]]인 ACCU 같은 조직을 만들어 좌익 게릴라와 치열하게 싸웠다. 이 와중에 1970년대에 가난한 범죄자들까지 뭉쳐서 거대한 [[마약 카르텔]]을 만들었는데 [[메데인 카르텔]]이나 [[칼리 카르텔]] 같은 조직들이 그때 탄생했다. 좌익 게릴라나 우익 무장조직도 모두 자금마련을 위해 마약 카르텔과 손잡고 [[코카인]] 같은 마약을 취급했다. 정부군 vs 극좌 게릴라 vs 극우 무장조직의 삼파전에 더해서 콜롬비아 마약상들까지 끼어들면서 그야말로 [[헬게이트]]를 열였다. 이들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나 외국의 [[마피아]], [[갱단]]과도 연합해 전 세계로 마약을 수출했다. 결국 콜롬비아의 대량 마약 수출로 고통 받는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정부군의 토벌이 계속되고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좌우파 분쟁도 점점 힘을 잃게 되었다. 결국 이념보다는 마약 이권을 두고 싸우는 마약 카르텔화 된지 오래인 지경. 계속된 분쟁으로 지지도가 점점 감소한 FARC가 무장투쟁을 포기하고, 정부와 협정을 맺었다. 다만 일부 이탈파가 마약 카르텔화 되어 마약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계속 날뛰고 있다. 또한 역시 마약 카르텔화 된 우익 무장 단체인 [[클란 델 골포]] 같은 거대 마약 카르텔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그런 [[범죄조직]]들을 하나하나 토벌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