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콤옴보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이집트 콤옴보 2.jpg|width=900]] [[콤 옴보 신전]] [[고대 이집트]] 시기에는 금의 도시라는 의미인 누브트로 불렸고, 상이집트 제1 노메의 주도였다. 아스완과 함께 이집트의 남부 방어 거점으로써 수비대가 배치되었고, 이는 [[로마 제국]]기까지 이어졌다. 고대 이집트 시기 단순한 채석장이자 변경에 불과했던 아스완과 달리 누브트는 이집트 문화를 간직한 최남단 도시였다. 전통적으로 이집트와 [[누비아]] 간의 교역 도시였고, 지금도 아스완 지대에 서식하는 악어를 신격화한 [[세베크]] 신앙의 중심이었다. 주민들이 악어 사냥을 즐기던 덴데라 ([[퀴나]]) 주민들과 종종 충돌할 정도였다. [[투트모스 3세]] 시기에 처음 세베크 신전이 세워졌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인 기원전 180년 ~ 기원전 47년에 걸쳐 병사들을 위한 거대한 신전이 세워지며 발전하였다. 로마 시대에 보강된 콤옴보 신전은 당시 신전들의 전형과 다르게 거대한 전면부가 없었고, 기둥 또한 짝수가 아닌 홀수개로 구성되었다. 또한 세베크가 주신이긴 했지만 다른 신들도 숭배되는 일종의 [[판테온]] (만신전)이었다. 다만 나일 강이 빠르게 흐르고 별로 범람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농경에는 불리한 편이었던 콤옴보는 [[로마 제국]] 시대에 들어 점차 쇠퇴하였다. [[그리스어]]로는 옴보이 (Ὄμβοι) 혹은 옴보스 (Ὄμβος), [[라틴어]]로는 암보 (Ambo)라 불리던 도시에는 [[가톨릭]] 주교구가 설치되어 5세기에 활성화되었고, 신전은 점차 버려졌다. 기독교 역시 [[이슬람 정복]] 후 쇠퇴하였다. 20세기 들어 명목상으로 가톨릭 주교구가 재설치되었고, 1958년에서 1963년까지 미래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옴비 주교를 역임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