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콩쥐팥쥐 (문단 편집) == 줄거리 == 조선시대 중엽 [[전라도]] [[전주시]] 서문 밖 30리에 '최만춘'이라는 이름의 퇴리(退吏, 퇴직한 관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아내로 조씨 부인을 두었으나 몇 년간 자식이 없어 근심하던 끝에 명산대찰[* 名山大刹. 이름 난 산에 있는 유명한 [[절(불교)|절]]이라는 뜻. 기타 전래동화나 전설에서도 자녀를 오랫동안 낳지 못한 부부가 불공을 드리러 가는 곳으로 자주 등장한다.]에 불공을 드렸고, 뒤늦게 딸을 얻어 아이 이름을 '콩쥐'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최(성씨)|최씨]]이므로 콩쥐의 풀네임도 자연스럽게 '''최콩쥐'''가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조씨 부인은 콩쥐가 태어난 지 백 일 만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아비 최만춘이 딸을 직접 업고 다니며 이웃집에 젖동냥을 다니는 등 홀로 콩쥐를 키웠고, 콩쥐도 건강하게 자라 두 부녀는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콩쥐가 14살 되던 해. 최만춘은 배씨[* 《[[장화홍련전]]》의 [[계모]] 허씨가 고전소설 중 제일가는 [[추녀]]이므로 《콩쥐팥쥐전》의 계모 배씨와 팥쥐도 추녀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데, 실제 원전에서 배씨는 [[미인]]까지는 아니라도 '''인물이 그리 추하지 않다'''고 묘사되어 있다. ~~팥쥐는 아마도 친부를 닮은 모양이거나 이야기가 내려오면서 팥쥐엄마가 자기 딸인 팥쥐만 예뻐하면서 콩쥐를 구박하는 악역이라 모전녀전을 보려줄려고 팥쥐모녀를 외모도 못생기고 성격도 개판이라고 각색했을 지도~~ 아이러니한 점은 장화, 홍련의 계모 허씨가 그렇게 괴롭히던 두 딸이 배씨였다는 것.]라는 [[과부]] 여인을 후처로 얻었는데, 배씨에게는 이미 전남편의 딸 '팥쥐'가 있었다. 또 팥쥐는 콩쥐보다 한 살 아래로 콩쥐의 의붓[[여동생]]이 되었다.[* 배씨의 전남편의 성씨가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아 팥쥐의 성은 불명. 현대에는 친양자 제도를 통해 의붓자식이 계부의 성을 따라갈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성종(조선)|성종]] 때 재가금지법을 만든 후로 과부의 재혼이 금기시되어 왔다 보니 계부와 의붓자식의 성씨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배씨 모녀는 성격이 매우 [[개차반#s-1|개차반]]이었는지라, 콩쥐네 한 식구가 된 이후로부터 부녀의 사이를 [[이간질]]해 최만춘이 콩쥐를 미워하고 구박하게 만든다.[* 콩쥐의 친아버지가 안 보이는 틈을 타 일방적으로 콩쥐를 구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혹은 재혼하고 친아버지가 얼마 후 죽었고 그 즉시 배씨 모녀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버전도 있다. 어쨌든 이런 계통의 동화에서 원래 아버지 포지션의 역할은 재혼하고 적당한 때에 퇴장하거나 병풍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 동화에서는 콩쥐의 아버지가 최만춘이란 정확한 성명이 나오지 않고 그냥 '아버지'로만 불리기도 하며, 계모 역시 배씨란 성이 밝혀지지 않고 '계모' 또는 '새어머니'라고만 나오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은 뒤 아버지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던지, 아버지도 얼마 후 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또 계모 배씨가 콩쥐를 구박할 때도, 콩쥐에게 산비탈 자갈밭의 김을 매라고 하며 나무호미를 주거나[* 반대로 모래밭을 매는 팥쥐에게는 쇠호미를 주었다.][* 결국 콩쥐의 [[호미]]는 밭을 매는 과정에서 그만 두 동강이 나 버렸고, 어쩔 줄 몰라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구멍 난 큰 독에 물 채우기]] 등 사실상 불가능한 일들을 시키지만, [[소]]와 [[두꺼비]]가 각각 콩쥐를 도와줘서 위기를 넘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0MNJkrT_vE|못 돕기도 한다]].~~ 소가 일을 다 마친 후에 온갖 맛있는 과일, 과자, 떡(혹은 그냥 사과들)을 주며[* 이 다과들이 '''소의 [[항문|그 곳]]'''에서 꺼낸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소가 콩쥐에게 강으로 가서 손을 씻으라고 말한 다음 자신의 그곳으로 손을 넣으면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 잡힐 거라며 일러주는 버전이 있다. 온갖 다과들이 들어간 광주리를 등에 지고 와서 주는 경우도 있으며, 사과를 줬다고 나오는 경우에는 사과가 들어간 바구니를 입에 물고 와서 주었다고 나온다.] 콩쥐에게 먹으라고 하지만, 콩쥐는 이를 안 먹거나 혹은 자기 몫만 먹고 나머지를 팥쥐 모녀와 같이 나눠먹으려고 가져갔다가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리고 중을 유혹하며 얻었다느니 등의 험한 소리만 들으며 다 뺏긴다는 줄거리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콩쥐가 소에게서 온갖 간식을 얻은 것을 알아챈 팥쥐가, 다음 날 콩쥐처럼 소의 [[항문|밑부분]]에 씻지도 않은 손을 넣고 간식을 한꺼번에 잔뜩 쥐고 꺼내려다가 놀란 소에게 들이받혀 몸만 다치자 샘이 나 콩쥐가 거짓말로 속인 게 분명하다며 계모에게 이르고, 콩쥐가 계모에게 대판 꾸중을 듣는 대목도 있다.] 몇 년 뒤, 콩쥐네 외갓집 조씨 가문에서 큰 잔치가 열려 외삼촌 내외가 콩쥐를 불렀는데, 정작 배씨는 콩쥐를 보내기 싫어서 골려먹기 위해 콩쥐에게 베짜기와 겉피 석 섬 찧는 일을 맡기고 팥쥐와 함께 잔치에 가 버린다. 이 염치없는 행각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기가 막혀했고,[* 판본들 중 아버지 최만춘이 퇴장하지 않은 버전에서는 최만춘이, 혹은 그 외에도 몇몇 버전에서는 마을 사람 하나가 "콩쥐네 외가에서 콩쥐를 부른 건데 왜 팥쥐랑 당신이 가는 거요?"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거 지적하기 전에 집안에서 벌어지는 친딸 학대는 왜 눈치를 못 챘을까?~~] 작중에서도 '''"후처가 염치없이 친딸을 데리고 전처 친정 잔치에 가다니..."'''라고 적시할 만큼 한없이 뻔뻔한 짓을 보였다고 묘사된다. 한편, 동화책 버전에서는 '''원님의 고을잔치'''로 각색되어 나온다. 다행히 [[선녀]][* 대체로 그냥 선녀로 나오지만, 어떤 책에서는 이 선녀가 [[직녀]] 혹은 콩쥐의 죽은 친모라고도 나온다.]가 나타나서 베 짜는 것을 도와주고 [[참새]]들이 겉피 석 섬을 찧어줘서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었고, 콩쥐는 선녀가 건네준 아름다운 비단 옷과 꽃신[* 구전설화 또는 다른 책을 보면 검은 암소가 나타나서 콩쥐에게 비단옷과 꽃신을 주었다고 한다.]을 신고 외갓집에 가게 된다. 그런데 콩쥐가 강을 건너던 도중 뒤따라오는 감사(監司) 행차에 놀라 실수로 꽃신 한 짝을 시냇물 속에 빠트려버리고 만다. 이 꽃신을 본 감사는 나중에 신의 주인을 찾아줄 생각으로 주워 간직한다. 어찌어찌해서 콩쥐는 무사히 외삼촌 내외의 잔칫집에 도착했는데, 배씨는 콩쥐를 보고는 외삼촌이 안 보는 데서 괜히 콩쥐를 꼬집고 구박하며 마구 욕을 했다. 그런데 손님들은 이를 뻔히 보고도 도와주거나 일가 친척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배씨 모녀 뒷담만 까느라 바빴다. 이후 잔치 도중 관가의 사람들이 꽃신 한 짝을 들고 와서 누구의 것인지 찾는데, 배씨와 팥쥐가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서로 신으려다가 발이 너무 커서 맞지 않아 [[물먹다|물만 먹는다]].[* 발에 안 맞는 게 탄로나 거짓말했다는 죄로 [[곤장]]을 맞았다고도 하며, 팥쥐가 어제 잃어버린거라고 하자 사또의 신하가 배씨와 팥쥐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이 꽃신 한 짝은 조금전에 발견한 건데 어제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냐고 꾸짖는다.] 콩쥐는 그때까지 선뜻 나서지 않고 있었지만 손님으로 온 어떤 노부인이 콩쥐의 발에 신발 한 짝이 없는 것을 눈치채 콩쥐의 것이라 말해주고, 그제서야 콩쥐가 낯을 붉히며 신을 신어보는데 역시나 딱 맞았다. 그렇게 해서 콩쥐는 감사한테로 가게 된다. 새로 도임한 감사는 종일품의 승지(承旨)와 참판(參判)을 지낸 '''나이 많으신'''[* 이 직급까지 거칠 정도면 아주 빨라야 45살, 대개 나이 오십은 넘긴다. 물론 예외도 찾아보면 있긴 하지만...] 김 감사로, 부인이 별세한 이후 첩도 안 들인 쓸쓸한 홀아비였지만 콩쥐를 보더니 첫눈에 반해 자기랑 혼인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콩쥐도 김 감사에게 호감을 느껴 그의 재취자리로 [[시집]]을 갔다. 다른 버전, 특히 아동용 동화책에서는 나이 많은 관리에게 시집갔다는 내용을 싣기가 영 껄끄럽다 보니 김 감사가 재취로 들이는 대신 [[며느리]]로 들이거나, 나이 많은 감사 대신 방금 한양에서 장원급제하고 꽃가마 타고 금의환향하는 젊은 청년 관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덧붙여 젊은 관리 버전에서는 전승되는 과정에서 [[춘향전]]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 사람이 과거 급제하기 전에 콩쥐를 좋아했던 양반댁 자제라는, [[상피제]](相避制)[*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관청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로, 이 때문에 수령직을 받아 지방으로 내려가는 관리는 자기 고향에는 내려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게 원칙이었다. 이 때문에 급제하기 전에 이 고을 출신으로 콩쥐와 썸을 탔다면 이 고을 감사로 내려온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무리라는 것. 토관제(土官制. [[여말선초]] 때 [[평안도]]·함경도·[[제주도]]에 설치한 특수 관직으로, 이민족 등과 결탁하는 것을 예방하고 지역 통치의 편의를 위해 토착민을 포섭하여 관리로 임명하는 제도)를 시행했던 지역이라면 또 모르지만, 위에서도 나왔듯 콩쥐팥쥐 이야기의 배경은 전라도라 그럴 리도 없다. 여담으로 [[춘향전]]의 이몽룡도 남원에서 춘향과 썸을 탔으면 상피제 때문에 남원에는 못 내려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이몽룡은 남원에 부임한 아버지 따라서 온 것이지 고향이 남원인 것은 아니라서 괜찮다.] 따위는 무시하는 전개도 있다. 동화 버전은 보통 여기에서 배씨와 팥쥐도 콩쥐와 화해하고 개과천선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원작에서는 이제부터 본격 '''[[동심 파괴]]가 시작되는 스토리가 이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