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란 (문단 편집) == 상세 == 이슬람의 창시사인 선지자 [[무함마드]]가 23년간 신에게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현존하는 책으로 존재하는 쿠란은 사실 선지자 [[무함마드]]가 계시받은 순서와는 다르게 편집되어 있는데, 이는 선지자 무함마드 사후에 하나님의 계시가 잊힐 것을 두려워한 무슬림들이 합의를 보아 책으로 남기기로 결정하면서 현존하는 순서로 정착된 것이다.[* 오해가 많은 부분으로, 무함마드 자신이 쿠란을 집필하지는 않았다. 무슬림 다수는 무함마드가 [[문맹]]이었다고 믿으며, 학자들 사이에서는 약간 이견이 있다.] 이슬람 학자들에 따라 이러한 편집의 순이 무작위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에 따라 무슬림들의 손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편집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무슬림들은 이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서 아예 암송해야 한다. 물론 책의 두께가 어느정도되는 만큼 전부 암송하는 사람은 드물고 무슬림 대다수는 예배에 필요한 기초 부분과 중요한 부분만 골라 외우는 편이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과정으로 쿠란의 특정 챕터들을 배우고 암기한다. 과거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이슬람권에서는 지식인의 기본 소양이 쿠란을 여러 독법으로 통째로 암송하는 것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도 대학생들이 교과서를 여러 권 암송하는 게 기본이던 시절이니,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암기보다는 이해를 중요시하는 현대교육의 관점으로는 암기 교육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원문이 변질되지 않도록 아랍어 원문을 그대로 담은 판본만 정본으로 인정하며, [[윤]]도 허락되지 않는다. 흔히 번역이 금지되었다는 표현을 쓰지만, 번역 자체가 [[금기]]인 것은 아니고 단지 번역된 텍스트는 '신의 말씀'인 쿠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쿠란 한국어 번역의 경우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덕택에 원문이 왜곡되는 것을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원문이 왜곡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의 이해가 일원화되었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때문에 비아랍권 무슬림 대다수가 원문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입식으로 외우고 암송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아랍어 쓰는 지역도 일상생활에서는 [[아랍어 방언]]을 쓰고, 쿠란에 기초한 [[표준 아랍어]]는 타국인 혹은 타지인들과 의사소통이나 공무생활등에서나 쓰는 수준이기 때문에 표준 아랍어에 능숙하지 않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아랍어라서 비아랍권에 비하면 괴리는 덜하다.] 또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무슬림들은 라틴문자와 키릴문자를 쓰기때문에 아랍문자에 능숙하면 배운사람 취급받는다. 경전을 통째로 외우고 암송하기 쉽게 문장의 운율과 리듬이 강한 편인데, 이는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 고대 종교 경전[* [[베다]] 문서 참고.]들에서 흔히 취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쿠란의 전체 분량은 대략 신약[[성경]]의 80%정도의 분량으로, 그렇게 긴 책까지는 아니다. [* 신약의 분량이 대략 8000절 정도이며 쿠란은 6200절 정도이다] 코난 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가 [[아랍어]]로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무슬림]]이라면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체 분량은 114 수라(سورة, 장) 6,342 아야(آية, 절).[* 86개 장은 메카에서, 28개 장은 메디나에서 계시되었다. 다만 먼저 계시된 수라가 앞에 나오는 게 아니라 가장 내용이 많은 수라부터 분량 순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웬만큼 알지 않으면 메카와 메디나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이 중에서 제1 수라인 "알파티하(الفاتحة, '개경장')"의 7개 아야는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외워야 한다.[* 다만, 외우기 그리 어렵지는 않다. 첫번째 수라를 이루고 있는 아야는 아야 하나에 여러 문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이 여러 아야로 토막토막 잘려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에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하듯이 매번 암송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예배는 하루 5번이다. 참고로 수라의 명칭에 붙는 "알(ال)"은 아랍어의 [[정관사]]이며 정관사가 붙는 명사의 첫 자음에 따라 [[자음동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자음동화를 일으키는 14자음을 태양 문자라고 부른다. 몇몇 수라(장)을 알이 아닌 "안", "앗"등으로 읽는 이유도 이 음편현상의 영향이다. 다만 문자상으론 ال을 그대로 표기한다.] 예배 때 쿠란을 [[아랍어]]로 낭송하지 않으면 무효이다. 쿠란을 아랍어로 낭송하지 않으면, 그냥 '기도'한 것이지 '제대로 된 예배'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슬람 수니파의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하나피파|하나피 학파]]의 개조 '아부 하니파(أبو حنيفة)'가 어느 날 이란에서 이란 무슬림들을 위해 쿠란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여 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다. 이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예배가 무효화됩니다"하고 따졌고, 아부 하니파도 이를 인정했다. 파티하 장이나 쿠란의 다른 장을 낭송하기 전에 '아우-두 빌라-히 미낫샤이타-니르라지-임(أَعُوذُ بِاللهِ مِنَ الشَّيْطَانِ الرَّجِيمِ, 저는 저주받은 사탄으로부터 하느님께 가호를 구하나이다)'이라고 말한다. 쿠란을 읽을 때, 삿된 것으로부터 부정타지 않게 하려는 간구문. 그 외에 더럽거나 부정한 곳에서 쿠란을 낭송하면 안 된다는 규칙도 있다. 다만 튀르키예에서는 [[아타튀르크]]가 추진한, [[튀르키예어]]를 살리기 위한 언어순화 운동의 일환으로 예배할 때도 튀르키예어로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일부 개혁 성향 무슬림 중에서도 영어 번역을 대신 낭송하는 경우가 있긴 하나,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쿠란은 소리내어 낭송하기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것만이 쿠란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선행이 쌓인다 생각하기 때문. 당시 문맹이 많고 [[아랍 문자]]가 완성되기 이전 아라비아 사회에서 신의 말씀을 전하는 방법은 오로지 말밖에 없었다. 그래서 쿠란을 낭송하는 다양한 방법이 생겨났는데, 이를 다 싸그리 묶어서 타지위드(تجويد)라고 칭한다. 타지위드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며, 낭독자마다 모두 낭독법이 다르다. 그뿐 아니라 쿠란 낭독을 하는 날짜마다 역시 또 낭독법이 달라진다. 똑같은 낭독자가 쿠란을 낭독할 때에도 살라트 아타라위흐(صلاة التراويح, [[라마단]] 금식기간에 행하는 특별예배)와 하지(حج, 성지순례) 때 낭독법이 서로 다르다. 쿠란을 만지거나 읽을 때는 어느 정도 예법이 있다. 깨끗한 곳에서 손을 씻고 단정한 자세로 책을 봐야한다. 물론 번역서나 주해서는 정식 쿠란이 아니므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번역된 쿠란에도 신의 말씀이 적혔으므로 막 대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자가 [[월경]] 때 맨손으로 쿠란을 만지기를 금하며, 휴지나 수건으로 쿠란을 넘기게 한다. 한국에 꽤나 오래 전부터 전파된 책이다. [[신라]] 후기 아랍인이나 페르시아 상인들이 신라에 정착한 데다가, [[고려]] 때도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위구르인 상인이 오고 갔으니 당연히 쿠란도 전파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신라나 고려나 국교는 [[불교]]였기에 이때의 이슬람교는 비주류 종교 정도의 위상이었다.] 특히 고려 말 원 간섭기 당시에 원나라의 무역로를 타고 많은 위구르인이 고려에 정착하였고 이 과정에서 쿠란이 고려 왕실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까지도 이어져서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궁중에서도 특정한 날마다 무슬림 원로가 왕과 신하 앞에서 쿠란 낭독을 하면서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였다. 적어도 고관대작들 정도 되는 고위직들에게는 상당히 알려진 책이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 위구르인들이 조선 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데다가 명나라가 상당기간 폐쇄적인 정책을 펴고, 무엇보다도 아랍인과 페르시아 상인 대신 유럽인 상인들이 남중국해 재해권을 장악하며 교류가 오랜 기간 끊어지게 되었으며 결정적으로 이슬람교가 기술직 관료나 상인 등 일부 계층들이나 믿는 종교였고 하층민들도 믿을 정도로 대중화 되지는 못했기 때문에 통일신라와 조선초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무슬림들이 공존해 있었음에도 결국 조선 중후기 들어 잊혀지게 되었다. 아랍권과 교류가 늘어난 현대에 와서도 쿠란에 대한 수요는 별로 없기 때문에 번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번역이 되더라도 물량이 소수만 풀리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거나 알려지더라도 일부 부분만 발췌되거나 왜곡되는 일이 자자하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2121575&PAGE_CD=&CMPT_CD=|이슬람의 13교리]]라는 날조 게시글이 널리 퍼진 일 등이 그 예이다. 그 만큼 쿠란이 별로 퍼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이미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직후에 바로 인쇄본이 나왔던 [[성경]]에 비해서 인쇄본이 나온 시기가 1923년으로 몹시 늦은데 이는 아랍 문자의 특성상 인쇄하는 비용이 많이 들었던데다가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에 걸쳐 손으로 정성들여 쓰는 필사본 쿠란을 높게 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교]]에서도 [[사경#s-2]]이라고 비슷한 개념이 있는 등, 경전 필사에 의미를 두는 문화는 여러 종교에서 널리 존재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오스만 제국]]의 법령 때문인데, 쿠란을 비롯한 [[성경]], [[토라]]를 감히 인간이 손으로 쓰지 않고 찍어낸다는게 불경하다고 생각해서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 법령은 오스만 제국 안에서만 유효했지만 당시 무슬림들 대부분을 지배한 나라이기도 하고, [[칼리파]]라는 지위 때문에 오스만 제국 밖에서도 지켜졌다. 또한 이 법령으로 인해 그리스 정교회에서의 성경 인쇄 또한 상당히 늦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유대교]]에서도 필사한 토라만을 [[코셔]]로 간주하고, 인쇄본은 코셔가 아니므로 예배에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건 1920년대 이전의 일이고 그 이후로 발간되는 쿠란은 대부분이 인쇄본이다. 직접 쿠란을 필사하거나 필사본 쿠란을 구하는 것보다 값이 싸고 편한 데다가 사람들에게 쿠란을 나눠주는 데 인쇄본 쿠란만한 것이 없기 때문. [[튀르키예]]에서는 아직도 필사 쿠란을 높게 치는 관습이 남아 있어, 쿠란을 출판할 때는 먼저 서예가가 투명 필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 부 필사를 하고, 그것을 인쇄하는 방식으로 출판되고 있다. 유명한 명필이 쓴 쿠란은 가격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다. 물론 주석은 [[튀르키예어]]로 되어있고, 장식 서체가 필요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기존 출판물과 다르지 않다. 이슬람의 한 분파였던 [[무타질라 학파]]에서 쿠란이 '완벽히 신의 말씀을 베낀 것'이 아니라 '신께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임의로 창조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며, 쿠란에 쓰여 있는 당시의 일부 관습법을 옮긴 부분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후 [[알 가잘리]] 등에 의해 논박당한 후 비주류 해석으로 전락하였다. 이븐 와라크 등 무신론 이슬람 비판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게 들었던 신약 [[성경]]이나 유대교 경전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되 메카의 혼란상과 난맥상을 보고 회의를 하며 15년 가량 명상을 하다 깨달음을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쓰인(직접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무함마드는 문맹이였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비판에 대해 쿠란에서는 이러한 쿠란을 유사하게 쓰려고 했던 사람들이 성공한적이 없다면서 대응하고 있다.] 서적이라 볼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