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를란트-젬갈렌 (문단 편집) === 공국의 성립 === 공국이 성립되기 전까지 라트비아는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과 여러 주교령을 합쳐 구성된 [[리보니아]] 연맹이 폴란드 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의 통치 하에 있었다. 16세기 중반 [[루스 차르국]]이 팽창하고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주변국들에 의해 리보니아 전쟁(Livonian War)이 발발하였다. 루스 차르국 외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등이 참전한 이 전쟁의 결과 리보니아 기사단의 영토는 주변국들에게 분할되었다.[* 에스토니아 북부는 스웨덴이, 에스토니아 남부와 라트비아 북부 비제메 지역은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분할되었으며, [[사레마]]는 덴마크에게 분할되었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할당된 라트비아 남부는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의 사령관이었던 고트하르트 케틀러(Gotthard von Kettler, 1561~1587)에 의해 쿠를란트-젬갈렌 공국으로 성립되었다. 그러나 [[리보니아]] [[지역]]은 봉건제가 확고하여 중앙집권화된 군주제를 경험한 백성이 적었고, 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살았던 발트 독일인들은 케틀러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국 초기에는 권력층의 내부 다툼이 끊이질 않았으며, 주변강국 스웨덴과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쿠를란트-젬갈렌이 수립된 초기에는 여러 영토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로빈(Grobin, 혹은 그로비냐)은 [[프로이센 공국]]의 [[조차지]]였다. 또한 벤타 강 인근의 필텐(Pilten, 또는 필테네)은 덴마크의 영지로써 덴마크 왕자 외셀의 망누스(Magnus af Øsel)[*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3세]]의 차남으로 [[프레데리크 2세]]의 동생.]가 리보니아 왕의 자격으로 관할하고 있었다. 그로빈은 [[1609년]] 빌헬름 케틀러 때 쿠를란트에 편입되었고, 필텐은 [[1583년]] 통치자 망누스가 죽고 2년 뒤인 [[1585년]] 덴마크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거래로 쿠를란트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덴마크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유권 분쟁으로 인해 [[1656년]]에야 쿠를란트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편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