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바 (문단 편집) == 정치 == [include(틀:쿠바 인민주권민족회의의 원내 구성)] |||||| 쿠바의 정치 정보 || ||[[부패인식지수]] || 45점 ||[[2022년]], 세계 65위 || ||[[언론자유지수]] || 29점 ||[[2023년]], '''세계 172위''' || ||[[민주주의 지수]] || 2.65점 ||[[2022년]], '''세계 139위''' ||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회인 '''[[인민주권민족회의]]'''(국회) 대의원들을 인민들의 투표로 선출하며 인민주권민족회의 대의원들이 최고통치기관인 '''국가이사회''' 성원들을 선출한다. 물론 해당 의석은 [[쿠바 공산당]] 당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건 당연한 사실이고.[* 심지어 공산당이 의석을 100% 독식하고 있으며 공산당 외의 의석은 하나도 없다. 같은 공산권 독재 국가로 유일 집권 정당이 철권 통치를 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도 [[중국공산당]]과 [[조선로동당]] 소속이 아닌 구색 정당(具色政黨), 즉 소수파 우당(友黨)의 의석이 형식적으로나마 있고 구색정당조차 없는 베트남도 무소속 국회대표가 존재하는데 2023년 현재 쿠바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없다.] 사실 1970 ~ 1980년대에는 그럭저럭 굴러간 편이기는 했지만 소련이 망한 후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다. 현재는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 편이지만 이 당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월급 수준이 낮은 데다가 물자가 상당히 부족하고 제때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편이다. 2011년 4월 19일, 쿠바 공산당 제6차 당대회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당 제1비서직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물려주면서 마침내 모든 공식 직책에서 은퇴, 사인(私人)으로 돌아갔다. 1959년 집권한 이래 무려 '''52년'''만이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미국에선 대통령이 무려 10명이 바뀌었다. 공식 직책에서는 모두 물러났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력, 현 쿠바의 1인자가 그의 동생이라는 점을 볼 때 국가 최고 원로로서 가장 권위 있는 조언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형의 자리를 물려받은 라울은 '''300여 개의 경제개혁안'''을 통과시켜 쿠바 체제의 일신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쿠바인의 해외여행 제한 완화를 결정해 의사를 포함한 고급 기술자의 정부허가 없는 국외 여행도 자유화시켰다. 그동안은 이런 고급 기술자는 해외 망명과 두뇌 유출 등을 우려해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생각보다는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막장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일단은 대놓고 기자 앞에서 나라 욕을 해도 안 잡아가는 것도 [[북한|윗 동네]]나 [[중국|왼쪽 동네]]와 비교해 본다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뭐 이미 [[http://en.wikipedia.org/wiki/Category:Cuban_hip_hop_groups|쿠바에 자본주의 음악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힙합 음악가들도 있고]], 쿠바의 [[펑크 록]]밴드들의 존재가 확인되어서 서방 국가에 [[충공깽]]을 선사한 바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LOIFYbrCEWk|#]] 심지어 [[안티파]] 쿠바지부도 있다. 대체로 하는 일이 해외 출장 뛰는 것이긴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목표는 대략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를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시키는 것이라 한다. 아무튼 이런 단체가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북한]]이나 [[중국]], [[에리트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같은 나라에 비하면 상당한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국가 그 자체와 공산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실제로 했다간 잡혀갈 각오를 해야 하는 일당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이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성조기 비키니를 입은 처자를 해안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서구 문물의 자유로운 수입은 보장되지 않지만 그래도 국영 TV 방송사에서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나 텔레노벨라, 유럽 애니메이션, 한국 드라마 등 다른 국가의 TV 프로그램들을 많이 수입해서 방영하고 있으며, 외국 음반도 대부분은 불법이기는 하지만 [[암시장]]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또한 가정집으로 외부의 영상물이나 게임 등을 복사한 다음에 일정액의 돈을 받고 각 가정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상상이상으로 잘 발달되어있으며 지하 인터넷망을 통해서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 각종 스포츠 경기, 뮤직비디오, 심지어 비디오 게임까지도 다운받아서 복제한다. 이를 빠케테라고 하는데 쿠바법상으로든 쿠바 외의 저작권법상으로든 합법은 아니지만 빠케테 운영자들이 쿠바 체제에 위협적으로 보일 시사-뉴스프로그램이나 영화, 선정적인 포르노물은 중간에서 적절하게 검열하는 노력을 하기에, 당국에서도 특별한 단속은 하지 않는다. 가격도 1시간 인터넷 사용하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으로 싼 편이라 정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먹고사는 수준의 집안이 아니라면 많이 애용한다. 정보에 대한 통제도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어차피 중남미에서 자주 교류하는 국가들도 선거로 정권을 창출하는 나라이고 국영 TV나 국영 매체를 통해서 중남미 국가에서 벌어지는 선거에 대한 보도는 하기에 사실 알건 다 알기는 하다. 외국인 관광객들 가운데서도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통제는 유명무실한 상황, 우리로 치면 거의 60~70년대에 남대문 시장에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법으로 금지된]] 수입품 사던 것, 80년대에 세운상가에서 [[포르노|빨간 거]] 사던 것을 생각해보면 되는 수준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놀라기 쉬울 텐데,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공산주의 국가'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이 하필이면 여러 퇴보한/기형적 노동자 국가들 가운데 독보적으로 막장인 북한이나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의 이미지로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소련, 동독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은 체제 유지만 잘 된다면 개인적인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았다. 사실 북한 역시 8월 종파 사건과 도서정리 사업을 통해 김일성 1인 독재 체제로 변질되기 전까지는 노동당의 경색된 모습과 간부의 전횡을 비판하는 사설이 '''[[노동신문]]'''에 올라올 정도로 리버럴했다.] 사회 시스템은 사실 성공적인 국유화 정책 덕분에 의외로 [[공공재]]가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편이다. 일단 시스템상으로는 그렇다. 일단 교육제도는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문화 전반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서인도제도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90년대 경제난의 후유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 수준은 보장하지 못한다. 정치 시스템은 일당제 인민민주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이긴 하지만 중국처럼 '''정치 없는 관료제'''의 특성이 크다. 그리고 중국보다 관료제의 폐해가 덜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제 우리도 슬슬 다당제 할 때 되지 않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일 잘 되어 있는 것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실시된 지방자치제로서, '''당과 사상에 관계 없이 지역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선출하는 선거로 유명하다. 물론 입법부, 행정부 선거는 결과적으로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는데 이는 공산국가를 표방하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 가운데 유일한 것이다. 중국은 8개, 북한은 2~3개의 위성정당이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의석을 차지하며 베트남과 라오스는 위성정당 없는 순수 1당제지만 무소속 의원도 엄연히 원내에 존재한다. 전 의석을 공산당에서 싹쓸이하는 사례는 쿠바가 유일하다. 소련조차도 초기 소비에트 러시아 시대에는 다당제였으며 이후에도 한동안 무소속 의원이 있었다!][* 정치 활동을 하려는 사람이면 대체로 공산당에 가입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지, 공산당원만 뽑히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방선거에서는 공산당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신문. 국제적으로도 정론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디플로마티크는 월간 국제뉴스 잡지로 르몽드가 28개 드언어로 75개국에서 발행하고 있다. 한국판도 발행 중.]의 편집인이자 유엔 자문의원인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 카스트로]]와의 인터뷰를 출간하며 덧붙인 서문을 읽으면 쿠바의 정치 현실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 올 것이다. 물론 걸러 들을 부분은 알아서 걸러 듣자. > 계속되는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카스트로 체제는 국내에서 필사적인 단합을 권장했다. 그래서 일당체제의 원칙을 유지했다. "포위된 성채에서 모든 이견은 배반이다."라고 외친 성인 로욜라 이냐시오(Loyola Ignacio)의 낡은 신조를 자기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엄한 제재를 가했다. 그래서 국제사면위원회의 연간 보고서는 자유분야(표현의 자유, 의견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서 쿠바 당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쿠바에는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이 수감됐다."라고 보고했다. > > 어떤 이유든간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이 선진국에서 철폐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민주주의자도 견해 차이로 구속된 사람들이 있으며, 최고형인 사형제도를 아직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 >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이런 비판적 보고서는 쿠바에서 육체적 고문이나 정치범의 실종, 정치적 암살이나 공권력으로 진압된 시위가 있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또한 쿠바 체제에 반대한 그 어떤 민중 봉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난 후 46년이 지났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 > 반면 '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인근 국가들-이를테면 콜롬비아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과테말라,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심지어 멕시코까지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 반체제인사들, 기자들, 신부들, 시장들,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일상 범죄는 국제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 >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국가들이나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수천만 명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놀라운 사망률, 문맹률, 무주택자, 실직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거지들, 거리의 아이들, 빈민가, 범죄율, 온갖 종류의 범죄... 쿠바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 >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는 특정 개인을 공식적으로 숭배하지는 않는다. 비록 피델의 모습은 언론과 방송,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공식적인 초상화나 동상은 없으며 동전도 없다. 피델 카스트로를 기념하는 거리나 건물 혹은 기념탑도 없다. 아직 살아 있는 혁명의 지도자들에게 헌정된 것도 없다. > > 외부의 압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주권을 고집하는 이 조그만 섬나라는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 추방,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 일반적인 문화 수준의 향상 등 인간 차원의 진보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얻었다. 교육과 건강, 의료와 스포츠 연구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그룹에 속할 정도이다. > > 외교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능동적이고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카스트로 체제는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과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또한 쿠바 군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큰 규모의 전쟁, 특히 에티오피아와 앙골라 전쟁에 참가했다. 쿠바는 앙골라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엘리트 사단을 격퇴했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체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쿠바 혁명 이후 미국과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끊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교류를 위해 아바나와 워싱턴 D.C에 상대의 이익대표부를 두고 있었다. 아바나 주재 미국대표부 청사의 경우 쿠바 정부에서 묘한 꼼수(?)를 썼다고. 청사 건물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 줬다거나 대표부 직원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미국대표부 건물 주위에 미국 CIA에게 암살당한 쿠바 인사들의 사진을 걸어 놨다고. 지난 [[2013년]] [[2월 24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이사회 위원장이 아바나에서 열린 제8기 인민주권민족회의 1일차 회의에서 TV로 전국에 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 24일]]에 퇴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 동지인 호세 라몬 마차도 국가이사회 제1부위원장, 라미로 발데스 위원장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의 은퇴 공약인 만큼 형 피델과 다른 원로들과의 정치적 합의도 이미 끝난 것으로 판단되며, 동시에 차기 지도자로 라울 카스트로 본인보다 거의 30살이나 어린 미겔 디아스카넬 전 고등교육상을 지명했다. 이로써 공전의 3대 세습을 이뤄낸 [[북한]]과 달리 쿠바는 카스트로 형제의 60년에 걸친 치세가 끝남과 동시에 권력 이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한 셈이다.[* 애초에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에, 형제 사이의 권력이양이라 해서 북한의 권력세습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힘들다. 따라서 [[북한]] 김씨보다는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등과 비교해야 맞다.] 이 공약에 대해 일단 외국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 다만 피델 카스트로 위원장이 퇴임한 뒤에도 형처럼 어느 정도 '섭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며, 라울 카스트로 의장 자신도 "개혁은 계속하겠지만 나는 자본주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위원장이 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카스트로 형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쿠바의 개혁은 체제 유지를 위한 선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2014년 12월 17일 미국과 국교를 재개함에 따라 큰 변화는 예고되고 있으며,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 2013년 12월 10일, 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추모식에서 만난 라울 카스트로 위원장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악수를 나눈 것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주로 미국에서 말이다. 2014년 들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2014년 크림 위기]]로 러시아와 유럽-미국의 동서 갈등이 고조되자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4월 28~29일 러시아 외무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크림 문제와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데, 러시아가 쿠바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쿠바는 그 대가로 러시아의 행동을 지지해줄 것으로 보인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16&aid=0000486572|#]] 2014년 7월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년 만에 쿠바에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위원장과 만나고 양국의 산업, 에너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정을 맺고 쿠바가 소련에 진 부채 352억 달러의 '''90%'''를 탕감해주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7007860|#]]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맞서 러시아와 쿠바는 2001년 폐쇄된 아바나의 루르데스 감청기지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2&aid=0002692069|관련기사]] 2015년 7월 1일, 마침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 이후 2016년 3월 11일, EU와 쿠바는 관계정상화를 하기로 합의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2&aid=0003030604|#]] 그리고 12월에 '''정치적 대화·협력 협정'''에 서명함에 따라 완전히 복귀하게 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12/0200000000AKR20161212165451098.HTML?input=1195m|#]] 그리고 2018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인민투표를 통해 개정될 예정이다. 인민투표 날짜는 2019년 2월 24일에 치뤄진다. 통과 시에는 2019년 8월 13일에 발효되며, 이 날은 피델 카스트로의 생일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따르면 쿠바 헌법개정 과정은 주민참여가 최대한 보장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36]] 최종 개헌안은 공산당 일당 체재 유지를 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체질로 변화할 예정이며,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첫 인정,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과 인터넷의 역할 인정, 중임(총 10년)만 허용하는 국가이사회 위원장(국가주석)의 임기 제한 및 연령 제한(60세 이하로 첫 임기 시작), 권력 분산과 정부 운영 감독을 위한 총리직 부활, 인민주권민족회의를 모델로 한 지방인민회의 폐지 등 지방 정부 개편, 성 정체성에 기반을 둔 차별금지 원칙 명문화, 무죄 추정 원칙 도입, 결혼은 남녀 간 결합 문구 삭제 등이 담겨있다. 최종적으로 투표율 84%, 찬성 90%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http://www.granma.cu/reforma-constitucional/2019-02-25/cuba-dijo-si-por-la-nueva-constitucion-25-02-2019-16-02-47|결과]], [[https://en.m.wikipedia.org/wiki/2019_Cuban_constitutional_referendum|#]] 2019년 10월 10일부로 새 헌법 발효에 따라 국가이사회 성원이 종전 31명에서 21명으로 줄어들면서 쿠바혁명 당시 사령관이던 라미로 발데스와 기예르모 가르시아 프리아스는 이사회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로써 쿠바혁명 세대들은 막 내리게 된다. 2021년 4월 18일에 쿠바 공산당 대표단은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선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2&oid=421&aid=0005298142|#]] 2021년 7월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심각하며 정부와 쿠바 공산당이 해결하지 못하는것에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유례없는 반정부 시위가 나왔다.[[https://m.yna.co.kr/view/AKR20210712012100087?section=international/all|#]] 재미있는 것은 이 때 나온 구호가 '''조국과 삶'''(Patria y vida)인데, 음악가들이 쿠바 공산체제의 표어이자 카스트로가 외친 구호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을 패러디한 노래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1/02/175044/|조국과 삶]]"[* 당연하게도 쿠바 공산당은 이 노래에 대해 펄펄 뛰었다.]에서 나온 것이다.[[https://www.etoday.co.kr/news/view/2043820|#]] 새 헌법에서 공언하였던 결혼은 남녀 간 결합 문구 삭제와 관련된 가족법 개정안의 인민 투표를 진행하였으며, 찬성률 66.87%로 통과되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464335?sid=104|#]] 이로써 쿠바는 사회주의권 국가 중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나라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