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바/역사 (문단 편집) === [[쿠바 미사일 위기]] === 카스트로는 이런 행보를 강화해 소련과 급속히 친밀해졌으나, 소련은 소련대로 쿠바를 이용해 미국을 엿먹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소련은 쿠바에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에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미국의 정찰에 걸려들면서 [[영화]]에도 나왔던 지금까지도 그 유명한 쿠바 핵위기가 시작된다. 1962년 10월의 일이었다. 당시 케네디 정부는 쿠바를 해상봉쇄하고 마침 쿠바로 향하던 소련 선박이 쿠바 영해에 접근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우발적 핵전쟁|소련 측이 이를 무시하자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강국이 순식간에 정면 충돌할 위협에 봉착했으며, 전세계는 쿠바를 주목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막판에 소련이 한 발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협은 줄어들었다. 소련은 미국이 [[터키]]에서 미사일 탄도탄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파가 다른 요인과 겹쳐서 2년 뒤 [[니키타 흐루쇼프]]는 실각하게 된다. 그런데 쿠바 위기의 진앙이 된 쿠바 국내의 중거리 미사일 기지 자체는 설치 및 통제 면에서는 소련의 관리를 받고 있어 카스트로는 크게 비위가 상했던 모양이다. 카스트로는 결판을 내자고 해 소련에 전쟁을 주문했으나 평화협상으로 끝나자 실망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 사건 이후 쿠바 혁명에 동참했던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1967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당해 사살된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는 1962년 이후에도 계속 쿠바에 남아 쿠바의 공산화 사업을 계속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