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츨루크 (문단 편집) == 생애 ==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성장하자, 칭기즈 칸의 숙적이자 의형제(안다)였던 [[자무카]][* 이 당시의 자무카는 토그릴 칸에게 패배한 후 나이만 족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의 부추김을 받아 몽골 초원의 패권을 둘러싸고 그들과 다투지만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참패하고 아버지 타이양 칸마저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쿠츨루크는 몽골군의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도주했는데 서요에서 그를 받아주어 서요의 망명객 신세가 된다. 서요의 황제였던 [[야율직로고]]는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딸을 시집보냈을 정도로 우대해줬지만 도리어 쿠츨루크는 야율직로고를 폐위시키고는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쿠츨루크는 야율직로고의 목숨을 곧바로 뺏진 않았고, 야율직로고는 2년 동안 명목상으로 태상황 대접을 받으며 살다가 사망했다.] 한편 그는 원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지만 서요에 망명한 후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요의 국교였던 불교로 개종했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교를 끔찍히도 싫어했고 황제가 된 후 이슬람교를 탄압하고 이슬람교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인심을 잃은데다가 그가 불교로 개종하자 그와 함께 서요에 귀화했던 나이만인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 당시 나이만인들은 모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이때 [[제베]]가 이끄는 몽골군이 서요에 쳐들어오자 그의 폭정에 불만이 폭발한 서요의 백성들이 수도 발라사군의 성문을 열어버렸고, 몽골군은 손쉽게 발라사군을 접수하면서 결국 거란족 최후의 국가였던 서요는 멸망하고 말았다. 한편 쿠츨루크는 간신히 탈출해 [[파미르 고원]] 쪽으로 도망갔지만 결국 [[바다흐샨]] 주에서 몽골군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다.[* 쿠츨루크는 몽골에 붙잡혀 목숨을 잃었기에 '결제'로도 불린다.][* 사실상 이 시점에서 거란족의 국가는 모두 멸망했다. [[동요(국가)|동요]]는 이미 1215년 몽골 제국에 복속되어 명목만 유지하는 상황이라 자립성이 없었고 쿠츨루크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후요]]의 야율함사도 자결하여 멸망하기 때문. 애초에 동요와 후요는 제대로 된 국가라기보단 [[금나라]]에 대항해 일어난 [[요나라]] 부흥운동에 가까웠다.] [[분류:1156년 출생]][[분류:1218년 사망]][[분류:요나라의 황제]][[분류:망국의 군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