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쿤사 (문단 편집) === 몽타이 군의 설립 === 1982년경 미얀마로 밀려난 쿤사의 군대는 현지 공산 반군 및 지역 군벌을 격퇴하고 순식간에 미얀마-태국 국경지대 지역을 장악했다. 공산 반군들과 쿤사는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가 국민당 잔여 세력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미얀마나 태국 정부가 공산 반군들을 싫어하여 쿤사에게 공격을 사주했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사정부도 사회주의 독재 정부였지만 [[네 윈]]이 설립한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의 군사 독재에 맞서 공산주의자들 내부에서도 백기 공산당과 적기 공산당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정부가 공산 반군을 탄압하는 기묘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정부 입장에서 보기 좋은 행동을 했고 미얀마, 태국의 정부 인사들에게 뇌물도 많이 뿌렸기 때문에 그의 마약 사업은 상당수 묵인받을 수 있었다. 1985년 자신의 샨 연합군(SUA)과 또 다른 샨족 반군인 모헹의 타이 혁명회의(TRC)를 합병하여 정식으로 몽타이 군(MTA)을 세웠다. 이후 마약 무역을 재개하고 미얀마-태국의 정부 인사들과 다시 우호를 다졌다. 특히 한때 싸웠던 태국 정보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시 수립했다. 1987년에는 미국의 요구로 미얀마가 토벌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했다. 이미 쿤사는 미얀마 정부군과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돈으로 매수도 잔뜩 시켜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샨족 독립운동을 지휘했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독립은 어려운 상태였고 자치를 보장 받는 선에서 미얀마 정부와 협조하기로 한 것이다. 1988~89년경 호주 언론인이나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군대의 세력을 2개 사단급인 2만명이 넘는다고 자랑했다.[* 18,000명의 병력, 5,000명의 예비군, 8,000 명의 지역 민병대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약 밀매로 얻은 쿤사의 재산은 50억 달러에 달했고 헤로인 밀매 이권은 연간 60억 달러에 달했다. 이렇게 번 돈을 이용해 군대를 무장시켜서 장비도 좋았다. [[공습]]을 막을려고 대공 미사일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DEA]]는 쿤사의 목에 2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