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쿨리 (문단 편집) === 애니깽 === 중국인, 인도인뿐 아니라 [[한국인]]도 쿨리 인신매매의 타깃이 되었다. [[대한제국]] 시절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이 [[애니깽]]으로 불렸는데 이는 당시 이들이 일했던 농장에서 재배한 '에네켄(henequen)'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일본 회사에 속아서 간 것이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하와이 농장에 정착하자 일본인 노동 브로커가 더 이상 한국인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C%B4%EB%9D%BC_%EC%A3%BC%ED%83%80%EB%A1%9C|고무라 주타로]]에게 로비를 넣었다. 때마침 멕시코에서 일본에게 이주노동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일본에서 "너네 멕시코 농장과 광산에서는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마구 때린데메?"라면서 거부하려는 찰나였다. > 북미 묵서가(墨西哥·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水土)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나쁜 병질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바이다. 그 나라에는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광고 내용과는 다르게 당시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권 당시 멕시코의 1인당 국민 소득 수준은 미국, 영국의 10분의 1수준에다가 강도가 들끓어서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오지 못하던 막장 국가였다.] 근년에 일(日)·청(淸) 양국인이 단신 혹은 가족과 함께 건너가 이득을 본 자가 많으니,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 > 1904년 12월 17일부터 이듬해 1월 13일까지 [[황성신문]]에 7차례 실린 멕시코 한인 노동자 모집 광고 문구[[https://www.yna.co.kr/view/AKR20190404044500371|#]] 1904년부로 일본인들은 인천에서 문맹 농민과 품팔이꾼을 사기 계약으로 낚아서 멕시코로 보냈다. 제물포에서 영국 상선을 타고[* 영국 상선에서는 대우가 심각하게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1,033명 중 어린이 두 명과 성인 남성 한 명이 병환으로 죽고 아이 한 명이 더 태어나서 총 1,031명이 이주하였다.] 멕시코 태평양 항구에 상륙한 이후 다시 육로로 대서양과 면한 [[유카탄 반도]]로 이동했다. 당시 그렇게 목숨걸고 신대륙에 상륙해 멕시코로 간 한인 계약 노동자들은 체류기간 내내 급여보다 훨씬 많은 수수료와 체류비를 납부하는 사기 계약 때문에 죽도록 일만 하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뱃삯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집 광고 상으로는 분명히 "4년 계약, 주택 무료 임대, 높은 임금" "부녀자에게는 닭을 치게 하고 하루 노동 시간은 9시간이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너스로 은화 100원을 지급한다"이라고 명시가 되어있었으나, 실상은 광고와 정 반대였다.''' 한국인들은 새벽 4시부터 해가 질 때가지 40도나 넘는 날씨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으며 임금에서 수수료와 체류비를 덤테기 씌워서 돌아가지 못하게 묶어놓았는데 사실상의 농노 신세였다. 일본에서 "너네 멕시코 농장과 광산에서는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마구 때린데메?"라면서 정색했던 것 그대로 한국인들이 끌려간 농장들의 노동환경은 최악이었다. [[멕시코인]] 농장주들은 이들을 사소한 이유로 감금하거나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그나마 중국인 쿨리들은 청나라 조정의 개입 후 조금 처우가 나아졌는데, 망해가는 나라인 조선은 그렇지도 못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이들이 들고 온 [[대한제국]] 여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국적 문제가 꼬였다. 법적으로는 넓은 범주의 일본인이 되었는데 문제는 이들이 들고 온 여권은 망한 나라 대한제국 여권이었으니 무국적자 신세가 되어, 선택지는 멕시코에서 --일본계 멕시코인-- 멕시코인으로 사는 길밖에 없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멕시코에 완전히 눌러 살게 되었다. 하와이의 한인 단체들이 이들을 구제하려고도 시도했지만 당시 하와이 한인 단체가 돈이 충분했던 것도 아니고, 언어 장벽으로 펑크난 비자를 다시 뚫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근면성실한 민족성 덕에 스페인어도 배우고 조금씩 사는 요령을 익혀갔으며 나중에는 백인 농장주들도 이들을 인정해줘서 잘 지내기도 하였다. 한편 이 중에서 약 300여 명 정도가 1921년 멕시코에서 좀 더 그나마 살기 좋은 [[쿠바]]로 이주하여 [[한국계 쿠바인]]의 기원이 되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7211570201554|#1]][[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508245196g|#2]] 영화 [[애니깽]]과 [[1994년]] KBS 대하드라마 인간의 땅에서 이들 [[한국계 멕시코인]]들 이야기가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