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쿵더청 (문단 편집) == 이모저모 == [[화독|대만 독립파]]들의 세력이 커질수록 이들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극렬 독립파들 입장에서 공자와 그 후손은 [[대만인]]이 아닌 [[중국인]], 즉 '외국인'이기 때문. 이들은 진정한 대만인은 [[본성인]](민남인, 객가인)과 [[대만 원주민]]이고 외성인은 '중국'이라는 외국에서 이주한 이민자라고 여긴다. [[대만취청]]의 4민족(원주민, 민남인, 객가인, 외성인) 중 하나도 외성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극렬 독립파의 극단적인 시각으로 일반적이지는 않다. 앞으로 공씨의 종가는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랄 것이며, 독립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몇 대째 대만에서 살아온 현재의 외성인들을 [[대만인]]으로 인정해주는 추세이므로 이들을 대만인으로 인정해주기는 할 것이다. 때문에 연성공 가문이 대륙으로 추방당하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연인'으로 대만에 사는 것과 '우리나라(중화민국)가 낳은 위대한 선현의 후손'으로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대만이 중화권으로부터 독립하거나 중화권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의 옅어진다면 이 직책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리덩후이]] 총통 시절인 1998년에 정부 조직에서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의 업무를 보좌하는 부서가 사라지고 봉사관이라는 직책만 남았다가, 쿵더청이 사망한 2008년에는 무급직으로 바꿔버렸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중국에서 그와 유사한 직책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또는 이들을 중국 대륙으로 데려오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남종 출신으로 하여금 공묘에 제사를 지내게 하고 있고, 과거 역사에서도 북종이 정통이 된 것은 공묘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므로 이렇게 되면 남종 출신이라고 해서 정통성이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해외에서도 한 나라의 귀족 가문이 전쟁 등의 이유로 타국으로 이주해서 이주한 나라 사람이 되는 경우는 많다. 조선 왕족 중에도 일본으로 귀화한 [[모모야마 켄이치]]가 있다. 누나 쿵더마오는 문혁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유교가 다시 대륙에서 대접받는 지금은 정협위원을 3차례 지내고 영화 공자의 시사회에 초청받기도 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계속 했다. 2001년 정협중앙위원 자격으로 안동에서 열린 유교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하였고, 동생보다 장수하여 2018년 101세 나이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유림과 만나기도 했다. 생전에 베이징에 거주했는데, 2019년에는 한국공자문화센터 사람들이 베이징으로 찾아가서 문안을 올리기도 했다. 11월 15일 105세 나이에 병환으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