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퀘벡주 (문단 편집) == 퀘벡인 == 퀘벡인은 [[크리족]], [[이누이트]] 등 퀘벡 [[원주민]], [[프랑스계 캐나다인]], [[아일랜드계 캐나다인]], [[이탈리아계 캐나다인]], [[한국계 캐나다인]] 등으로 구성된 퀘벡에 살고 [[프랑스 불어]]가 아닌 [[캐나다 불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전세계의 여러 지역을 뿌리로 둔 이민자들과 이민자들의 후손인 퀘벡인을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사실도 아닐 뿐더러, 프랑스계 캐나다인 외 집단을 제외하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의 [[프랑스/문화|문화]]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프랑스인|프랑스 사람]]들과는 차이가 많다. 퀘벡에서는 다른 캐나다 지역과 비슷하게 [[아이스 하키]], [[캐나디안 풋볼 리그|캐나디안 풋볼]], [[라크로스]]의 인기가 많고 [[프랑스]] 본토에서는 [[축구]], [[럭비]], [[테니스]]의 인기가 많다. 그리고 프랑스에 비해 영어권과 더 비슷한 측면도 많다. 퀘벡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다 [[프랑스계 캐나다인|프랑스계]] 조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여느 이민사회가 그렇듯이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등도 섞여있기 때문에, 혈통이 아닌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지가 '''퀘벡인'''을 결정짓는다. 즉, 퀘벡인은 퀘벡에 살며 [[퀘벡 프랑스어|캐나다식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다. 퀘벡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하고 물어본다면 [[퀘벡 프랑스어|캐나다식 프랑스어]] 화자의 십중팔구는 캐나다인이 아닌 '''Québécois(e)'''라고 답할 것이다. 반면에 [[영어]] 화자에게 묻는다면 거의 모두 [[캐나다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성(姓)이 딱 봐도 [[프랑스계 캐나다인|불어계]]인 사람이라도 다른 주에서 영어를 쓰며 살고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를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영어권 캐나다인이 [[영국인]]이 아니듯 퀘벡인들 역시 [[불어]]를 쓴다고 해서 [[프랑스인]]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전 [[프랑스|프랑스 본토]]로부터 방치된 이후 퀘벡인들중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퀘벡의 '''Canadien(ne)'''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이해하자면 [[프랑스]]나 [[영국]], 더 나아가 [[캐나다]]로부터도 죄다 독립한 퀘벡인 정도이다. 통계도 제각각인 측면이 있는데, 한 통계에 따르면 28.9%의 퀘벡인이 스스로를 프랑스계라고 답했으나 스스로를 [[캐나다인]]이라고 답한 퀘벡인은 60.1%이었다. 한편 2010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불어]]의 퀘벡 불어 화자들의 3분의 1은 자신을 오롯이 '퀘벡인'(Québécois, 케베쿠아)이라고 지칭하고, 39%는 '[[캐나다인]]'이라고 인식은 하나 그 전에 앞서 '퀘벡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고 한다. 약 20% 미만이 자신을 '퀘벡인이자 동시에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하며, 7%는 자신을 '퀘벡인' 전에 '캐나다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오직 '캐나다인'이라고만 소개하는 사람들은 1%에 그쳤다.[[https://www.ctvnews.ca/quebecers-less-likely-to-say-they-re-canadian-poll-1.591062|#]][* 이런 식으로 두 개의 정체성을 놓고 어느 쪽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지 물어서 설문 대상자들의 정체성 인식에 관해 통계를 내는 것을 모레노 설문(Moreno Question)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사회학]]자인 루이스 모레노 페르난데스(Luis Moreno Fernández)가 1986년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처음 시도했기에 모레노 설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퀘벡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에도 소수나마 살고 있다는 것[* 반대로 퀘벡 주에도 영어를 쓰는 [[캐나다인]]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몬트리올]]이나 [[퀘벡시]]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불어가 일상적이긴 하지만 [[영어]]도 통용된다. 다만 시골에선 불어가 압도적이다. 아래 [[글렌 포드]]가 퀘벡 주 출신 영어계 캐나다인이다.]이다. 특히 영•불어 양쪽이 공용인 [[뉴브런즈윅]] 주에 살고 있는 아카디앵(Acadien)들이 있으며, 이들은 스스로를 퀘벡인들과 완전히 남남이라고 인식한다. [[온타리오]]에도 스스로를 프랑코옹타리앵(Franco-Ontarien)이라 칭하는 소수의 [[프랑스계 캐나다인|프랑스계]]가 있으며[* 주로 온타리오주의 핵심경제영역에서 벗어난 북부 중앙지역 일대에 거주한다. 대표적으로 서드버리(Sudbury)와 수세인트마리(Sault Ste. Marie) 등의 도시들에서 온타리오 프랑스계 커뮤니티가 소수 명맥을 잇고있다.], 한국에도 《내 생애의 아이들》 등의 작품이 번역된 퀘벡 소설의 대모 가브리엘 루아(Gabrielle Roy)도 [[매니토바]] 주 [[위니펙]]의 불어권 동네 생보니파스(Saint-Boniface) 출신이다. 아카디앵들과 프랑코옹타리앵들은 각각의 불어 억양이 또 퀘벡 불어와는 다르다. 게다가 이렇게 대서양 연안 북미 전반의 프랑스계 커뮤니티는 국경 건너 [[미국]]에도 있다. New England French라 부르며 역사적 기원은 퀘벡, 아카디아인들과 마찬가지지만 익히 알려진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 상실, 미국 독립 전쟁, 영미간 국경 확정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 측에 살게 된 불어 모어 커뮤니티는 [[메인 주|메인]], [[버몬트]] 주와 [[뉴욕 주]] 북쪽 끝자락에도 전통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이들은 역사적 기원과 문화적 맥락은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공유하지만 법적 의미로 '[[캐나다인]]'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으니 굉장히 복잡미묘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보자면 [[7년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퀘벡과 [[카리브 해]] 식민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는데, 이때 프랑스는 [[아이티]] 대신 돈도 안되고 골치 아픈 퀘벡을 버린다. 그렇기에 이후 [[샤를 드 골]]이 속죄한답시고 자유 퀘벡 만세를 외친 것이다. 이들에게 [[프랑스]]는 그냥 같은 말을 쓰는 나라 정도다. 게다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랑스]]와의 유대감은 크지 않다. 언어만 공유할 뿐이다. 오히려 [[뉴욕 주]],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문화적으로 [[미국]]에 당연히 더 가깝다.[* 다만 미국에서 퀘벡 접경 지역들은 퀘벡의 영향을 받아 역으로 불어를 자주 볼수 있는 동네다. 뉴욕 주의 플래츠버그 시만 해도 영불어 사인을 공용한다. 여기는 사실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몬트리올]]이라서 [[몬트리올]]의 영향이 크다.] 한 예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것에 영 관심이 없는 퀘벡인들을 꼬시기 위해 당시 보수당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프랑스]]를 도웁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벌였는데 퀘벡인들의 반응은, '''"우리가 왜 남인 [[프랑스]]를 도와야 하나요?"'''였다. 사실 그럴 만도 한게 퀘벡인들이 불어만 쓸 뿐 프랑스계만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이때만 해도 벌써 프랑스와 [[7년 전쟁|주종의 연이 끊어진 지]] '''150년도 더 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영국계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 흑인]], [[미국]]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이 영국에 전혀 동질감이 없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이에 보수당 정부는 징병까지 실행했으나 도리어 역효과로 항쟁까지 불러오고, 그러다 전쟁이 1년 뒤에 끝나자 이 일은 흐지부지 마무리가 되어 더 큰 사건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향후 70년간 퀘벡 주 연방총선에서는 1958년을 제외하면 모두 [[캐나다 자유당]]이 승리하게 된다.[* 캐나다는 연방국가로 국회 선거와 주의회 내 선거가 따로 행해지며, 주의회 내 당도 연방정당과 따로 존재한다. 이러다 보니 지역 제휴정당이 없는 주도 있거나 지역정당 이름에 진보가 들어가는데 정작 실제 이념이 보수당과 가까운 경우도 생기는 편. [[매니토바]], [[온타리오]] 주의 보수정당 이름이 '''진보'''보수당이다. 다만 주 내에서는 보수당 출신의 모리스 뒤플레시가 새로운 보수정당인 국가연합당을 창당, 연방 보수당과의 관계를 단절 후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해 퀘벡의 암흑기(Grande Noirceur)를 이끌게 된다. 심지어 카톨릭 교회와의 유착이 심각해 대놓고 "천국은 파란색(국가연합당), 지옥은 붉은색(자유당)" 식의 [[색깔론]] 드립을 치기도 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사정이 좀 달라져서, 이때는 [[연합군]]을 도와 [[추축국]]과 싸우기 위해 퀘벡인들이 상당히 협조적으로 나오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