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렘린 (문단 편집) === 탑 === 크렘린의 탑은 19개이지만, 성벽에서 분리되어 지어진 쿠타프야 탑까지 합쳐서 20개라고도 한다. 탑들의 꼭대기에는 본래 러시아 제국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달려있던 것을 [[이오시프 스탈린]] 시절에 오늘날과 같은 색유리로 만든 [[붉은 별]] 모양으로 대체했다.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이건 그대로 두고 있다. || '''사진''' || '''설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passkaya0.jpg|width=100%]]}}} ||'''스파스카야 탑(Спасская башня)'''[br]스파스카야 탑은 크렘린에서 가장 유명한 탑으로, 1491년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높이는 71m이다. 탑에 붙어있는 시계는 1491년과 1585년 사이 즈음에 등장하였으며, 모스크바의 공식 시간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으며 지름만 6m가 넘는다. 스파스카야 탑 아래의 문은 보통 대규모 외교 행사 때에만 주로 사용되었으며, 한때 크렘린 궁전의 정문이기도 해서 이 문을 통과하는 모든 이는 경의의 표시로 모자를 벗고 말에서 내려와야 했다. 한편 소련 시기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러시아 제국 시절의 구유산을 청산한다는 의미로 꼭대기의 쌍두독수리를 없애고 그 자리에 거대한 붉은 별을 달았으며, 이 별 장식은 360도 회전할 수 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들어선 이후, 한시적으로 자동차가 탑 아래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 허가되었으나 문화유산 보호를 위하여 지금은 도보통행만이 가능하다. 다만 대통령 공식 행사, 신년행사 등 중요한 행사에는 가끔씩 자동차 통행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passkayaclock.jpg|width=100%]]}}} ||'''크렘린 시계(Кремлёвские часы)'''[br]지름만 6m가 넘고 시침 2.97m, 분침 3.27m인 이 거대한 시계는 스파스카야 탑과 뗄 수 없는 상징으로, [[표트르 대제]] 시절인 [[1706년]] 설치되었고 [[네덜란드]]에서 수입해왔다고 한다. 3백 년 넘는 세월을 거치며 당연히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시각을 알리는 타종 소리는 15분마다 울리는데, 매시간 15분에는 1번, 30분에는 2번, 45분에는 3번, 정각에는 4번 타종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NUF3mMSnSI|#]] 0시, 6시, 12시, 18시에는 [[러시아 국가]]의 일부 소절 멜로디가, 3시, 9시, 15시, 21시에는 [[미하일 글린카]]의 영광(Славься)의 멜로디가 울린 후에 시보의 타종 소리가 울린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는 12시와 6시에 <오브라첸스키 연대 행진곡>, 3시와 9시에 보르트니안스키의 이 타종되었으나,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은 이후 [[1938년]]까지는 [[정오]]에 당시 소련 국가이기도 했던 [[인터내셔널가]]를 타종한 후에 시보를 알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XMiMuGOmSdA|1936년 음원]]) 1944년 새로 채택된 [[소련 국가]]를 타종하게 하려는 시도는 종의 기술적 문제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1938년 이후 58년 동안 멜로디 없이 시보만 타종해오다가, 1996년 [[보리스 옐친]]의 재취임을 맞아 정오와 자정에 [[애국가(러시아)]]의 멜로디가 흘러나온 후 시보를 타종하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c3LmSi_4UI|1996년 음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orovitskaya1.jpg|width=100%]]}}} ||'''보로비츠카야 탑(Боровицкая башня)'''[br]보로비츠카야 탑은 크렘린 서벽에 위치한 탑으로, 1490년에 스위스 건축가가 설계하여 지어졌으며 1812년에는 후퇴하는 프랑스 군대의 포격을 맞고 훼손되기도 했다. 이후 1815년에 복구하였으며, 1935년에는 소비에트의 상징인 붉은 별을 꼭대기에 달았다. 스파스카야 탑으로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되자, 지금은 이 보로비츠카야 탑을 통하여 자동차들이 주로 드나들고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vodovzvodnaya.jpg|width=100%]]}}} ||'''보도프즈보드나야 탑(Водовзводная башня)'''[br]보도프즈보드나야 탑은 크렘린 남서부 성벽에 위치한 탑으로, 1488년에 처음으로 지어졌다. 1633년에 물공급기가 설치되면서 '물을 끌어올리다'라는 뜻의 '보도프즈보드나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1812년에 프랑스군의 포격을 맞아 사라졌다가 1817년에 복구되었다. 높이는 약 61.85m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ikolskaya.jpg|width=100%]]}}} ||'''니콜스카야 탑(Водовзводная башня)'''[br]니콜스카야 탑은 크렘린 동쪽 벽에 위치한 탑으로, 이 탑을 통하여 [[붉은 광장]]에서 크렘린으로 들어올 수 있다. 1491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1806년에 신고딕 양식으로 개건하였으나 1812년에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1816년에 복구된 것이 또 1917년 혁명 당시 대포로 인해 훼손되었으며, 1935년에는 꼭대기에 붉은 별이 달렸다. 입구에 붙어있던 성 니콜라스의 모자이크 성화는 소련 시기에 회칠되었다가 2010년에 복원되었다. 높이는 약 70.4m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utafya.jpg|width=100%]]}}} ||'''쿠타프야 탑(Кутафья башня)'''[br]쿠타프야 탑은 크렘린 요새의 초소탑으로, 1516년에 네글리나야 강변의 다리를 방어하기 위하여 처음 세워졌다. 원래는 해자로 둘러싸야 도개교로만 건너갈 수 있었으나, 현재는 해자가 메워졌고 그 자리에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이 조성되었다. 크렘린에서 가장 낮은 탑으로, 높이는 13.5m이다. 관광객들이 크렘린에 입장할 때 가장 먼저 지나치는 건물이기도 하며, 쿠타프야 탑을 지나면 트로이츠카야 탑으로 들어갈 수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roitskaya.jpg|width=100%]]}}} ||'''트로이츠카야 탑(Троицкая башня)'''[br]트로이츠카야 탑은 크렘린 북서쪽 벽에 위치한 탑이자 성문으로,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1495년에 처음으로 건립되었으며, 1658년에 '[[삼위일체]]라는 뜻의 '트로이츠카야'라는 이름을 받았다. 16세기와 19세기 사이에는 시계도 달려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졌고,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황궁 감옥으로도 쓰였다. 트로이츠카야 탑은 소련 시절 러시아 공산당 간부들의 주 출입로로 사용되면서 그나마 성화 위에 회칠을 한 니콜스카야 탑보다 더 과격한 조치를 취하여 아예 모자이크 성화가 갈려 나갔다. 현재는 쿠타프야 탑을 지나면 바로 볼 수 있으며, 크렘린 궁전으로 통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요 출입구다. 크렘린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높이는 80m 정도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eklemishevskaya.jpg|width=100%]]}}} ||'''베클레미세프스카야 탑(Беклемишевская башня)'''[br]베클레미세프스카야 탑은 모스크바 강변의 동쪽 모서리에 자리한 탑이다. 1487년에 모스크바 강의 선박들을 감시할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높이는 약 46.2m 정도이다. 1917년 [[10월 혁명]] 시기에 지붕이 일부 파손되었으나 이후 복구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onstantinoleninskaya.jpg|width=100%]]}}}||'''콘스탄티노-옐레나스카야 탑(Константино-Еленинская башня)'''[br]콘스탄티노-옐레나스카야 탑은 크렘린 동쪽 성벽의 탑으로, 1490년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이후 성당으로 사용되었다가 소련 시절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본디 총안과 해자, 그리고 도개교 등이 있었으나, 19세기에 총안은 벽돌로 덮였고 해자는 메워져 사라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abatnaya.jpg|width=100%]]}}} ||'''나바트나야 탑(Набатная башня)'''[br]r]나바트나야 탑은 크렘린 남동쪽 성벽에 있는 탑으로, 1495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높이는 약 38m이다. 전통적으로 종을 걸어놓아 크렘린이나 황실에 슬픈 일이 있을 때에 울렸으며, '나바트나야'라는 이름 자체도 '알리다'라는 뜻의 러시아어 '나바트'에서 따왔다. 1771년에는 이 종소리를 기점으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기에, 반란이 진압된 이후 [[예카테리나 대제]]는 이 종의 클래퍼[* 종 안의 작은 방울로, 흔들리면서 종소리를 낸다]를 떼어버리도록 명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종 자체가 옮겨져 무기고로 이관되었기에 현재는 종을 찾아볼 수 없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enatskaya.jpg|width=100%]]}}} ||'''세나트스카야 탑(Сенатская башня)'''[br]세나트스카야 탑은 [[붉은 광장]]과 인접한 동쪽 성벽에 자리한 탑으로, 1491년에 순수한 방어용으로 지어졌으며 1787년까지 이름이 없다가 인근에 상원 궁전이 지어지면서 현재의 '세나트스카야'라는 이름을 얻었다. 높이는 약 34.4m이며, 이 탑을 통하여 귀빈들이 크렘린 궁전에서 붉은 광장으로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ornerarsenal.jpg|width=100%]]}}} ||'''아세날나야 탑(Арсенальная Угловая башня)'''[br]모서리 무기고 탑은 149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인근에 무기고가 지어지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Arsenal'은 무기고를 의미한다.] 탑 안에는 비밀 우물이 존재한다고 하며, 1707년에는 [[대북방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좁았던 총안을 대폭 확장하여 대포도 수용할 수 있도록 개축하였다. 1812년에는 후퇴하는 프랑스 군대의 포탄을 맞고 파손되었다가 1815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높이는 약 60m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