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테시폰 (문단 편집) ===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왕조]] 시대 === 크테시폰이 처음 도시로 형성된 것은 아르사케스 왕조의 파르티아인들이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메소포타미아를 빼앗은 기원전 2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스트라본에 따르면 파르티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이자 셀레우코스 왕조의 옛 수도였던 셀레우키아를 정복했지만,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인 그곳에 자신들이 들어가 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 티그리스강 건너편에 캠프를 치고 주둔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국의 새로운 지배층인 파르티아인들이 머무는 이 캠프 지역에 인구가 몰리기 시작하여 점차 신도시로 발전한 것이 크테시폰이다. 그리하여 기원후 1세기경에 크테시폰은 아르사케스 왕조의 행정 중심지이자 겨울 수도가 되었다. 아르사케스 왕조는 이전의 [[아케메네스 왕조]]와 마찬가지로 더운 여름에는 서늘한 고지대인 [[엑바타나]]와 히르카니아 등으로 왕실 거처를 옮겼다가 추운 겨울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저지대로 내려오는 관습을 유지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도시를 감싸는 성벽이 건설되었고, 이후 인구 밀집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점점 규모가 확장되면서 주변 도시들과 합쳐져 거대한 도시권을 이루게 되었다. 개중 유명한 것들로는 상술한 셀레우키아, 그리고 [[볼로가세스 1세]]가 조성한 교역 중심지 볼로게소케르타(Vologesocerta. Vologesias 혹은 Valakhshabad, Valakhshgerd) 등이 있다. 부유하고 규모가 커진 크테시폰은 아르사케스 왕조와 대립했던 [[로마 제국]]의 주된 공격 목표가 되었다. 로마는 인구와 국력에서 파르티아를 크게 앞섰으며, 파르티아는 중앙집권이 되지 못한 [[봉건제]] 사회였기 때문에 로마의 강력한 공세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크테시폰은 116년에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165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휘하의 장군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에게, 197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게 연이어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 역시 크테시폰을 점령한 뒤 길게 유지하지는 못했으며, 점령할 때마다 파르티아인들에게 도로 내주기를 반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